스팀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부유하는 폐허, 첫 번째 톱니바퀴

세상은 숨을 멎었다. 적어도 아인이 기억하는 한, 늘 그랬다.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이 비틀린 대재앙 이후, 푸른색이란 찾아볼 수 없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 인류는 기계의 심장에 매달려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삐걱이는 톱니바퀴와 쉭쉭거리는 증기 소리가 도시의 유일한 활력이자, 동시에 생존을 위협하는 굉음이었다.

“젠장, 또야.”

아인은 마른 기침을 토하며 마스크 안의 공기 필터를 거칠게 두드렸다. 벌써 세 번째다. 폐허가 된 메트로폴리스의 서부 구역,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철골 가교 위를 걷고 있던 그녀의 산소 마스크가 또다시 경고음을 울렸다. ‘에테르 재’라 불리는 잿빛 미립자들이 호흡기를 막는 건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심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가시거리도 부옇게 변해, 한때 도시의 웅장함을 자랑했을 마천루들은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든 거대한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아인은 허리춤의 공구 주머니에서 소형 에어 브러시를 꺼내 필터 그릴에 쏘았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잿가루가 흩날렸다. 잠시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지만, 경고음은 여전히 불안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녀의 증기 구동식 방독면이 완벽히 고장 나기 전에, 반드시 ‘에테르 응축기’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녀의 유일한 생존 보금자리인 지하 은신처의 공기 정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핵심 부품인 응축기가 필요했다.

고글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건물 사이를 잇는 부유 가교 역할을 하거나, 스스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조립하고 해체하는 듯 보였다. 에테르 재앙 이후, 이 도시의 많은 기계들은 주인을 잃고도 제멋대로 돌아가며, 때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위협으로 변모했다. 아인은 그 사이를 쥐처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낡고 녹슨 철골 구조물은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렸고, 아래는 아득한 나락처럼 느껴졌다. 간혹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굉음을 내며 회전하는 모습도 보였다.

“목표 지점까지, 약 50미터.”

손목의 소형 기압계와 나침반을 확인하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어제 밤, 폐기된 정보 단말기에서 간신히 복원해낸 자료에 따르면, 이 폐허 구역 깊숙한 곳에 버려진 옛 ‘에테르 연구소’가 있었다. 그곳이라면 희귀한 부품인 응축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토록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는 생존자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발아래 금속판이 삐걱이며 균형을 잃을 뻔했다. 아인은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난간을 움켜쥐었다. 금속 장갑을 낀 손가락이 차가운 쇠붙이를 쓸었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아찔했다. 거대한 증기 배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그 사이로 자취를 알 수 없는 유독 가스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쿵!

거대한 쇳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동은 가교 전체를 울렸고, 아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고글 너머로 주위를 살폈다. 부옇던 시야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녹슨 강철 팔다리를 가진 짐승 같은 실루엣.

“젠장, 고철 거미…!”

고철 거미. 에테르 재앙 이후 오작동하며 생명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폐기된 산업용 로봇이었다. 주로 지하 시설에서 활동했지만, 가끔 이렇게 지상으로 올라와 폐허를 배회하기도 했다. 그들은 한때 건설 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나르던 로봇이었으나, 지금은 날카로운 갈고리와 드릴을 이용해 무엇이든 부수는 파괴자가 되어 있었다.

끼이이잉-!

금속성 비명과 함께 거대한 고철 거미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 개의 다리가 톱니바퀴처럼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가교 위로 기어 올라왔다. 붉은 빛을 내는 광학 센서가 아인을 향해 번뜩였다. 그들의 동작은 비록 녹슬었지만,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다리 중 하나는 압력 실린더가 터져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일찍 만날 줄이야!”

아인은 등 뒤에 맨 배낭에서 ‘압력 분사기’를 꺼냈다. 손잡이를 비틀자 작은 증기 엔진이 굉음을 내며 가열되기 시작했다. 이 소형 분사기는 고압의 증기를 발사하여 적을 잠시 무력화시키거나, 약한 금속을 녹일 수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다.

고철 거미는 거대한 몸체를 앞세워 돌진했다. 다리 하나가 마치 창처럼 휘둘러졌다. 아인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옆으로 피했다. 콰앙!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있던 철판이 깊게 찌그러졌다.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거미의 움직임은 느리고 예측 가능했다. 과거 이 로봇을 해체하고 조립했던 경험이 그녀의 직감을 날카롭게 했다.

‘약점은… 압력 실린더 아니면 구동 축이야!’

아인은 분사기를 고철 거미의 녹슨 관절을 향해 겨눴다. 쉬이이익-!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갔다. 거미의 다리 관절 부분이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뒤로 움찔거렸다. 하지만 완전히 무력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거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동시에 두 다리를 휘두르며 그녀를 가교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크윽!”

아인은 급히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거미의 아래로 파고들었다. 육중한 기계의 몸체 아래로 들어서자, 기름때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과열된 금속 냄새가 뒤섞여 그녀의 폐를 짓눌렀다. 이곳이라면 거미의 광학 센서가 그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인은 배낭에서 작은 ‘태엽식 충격 망치’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이 망치는 태엽의 힘을 이용해 강력한 충격을 전달하는 휴대용 공구였다. 그녀는 거미의 가장 취약한 부위, 즉 압력 실린더가 연결된 구동 축의 이음새를 발견했다.

탕! 탕! 탕!

망치를 내리찍을 때마다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거미는 몸을 격렬하게 흔들며 아인을 털어내려 했다. 가교가 심하게 흔들리고, 발아래 금속판들이 뒤틀렸다. 아인은 온몸의 힘을 다해 망치를 휘둘렀다. 몇 번의 공격 끝에, 구동 축의 이음새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거대한 톱니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끼이이이이익- 쿠구궁!

고철 거미는 비명을 지르며 한쪽 다리를 축 늘어뜨렸다. 균형을 잃은 거미는 결국 가교 위에서 비틀거리다 아래로 추락했다. 굉음과 함께 잿빛 연기가 아득한 아래쪽에서 피어올랐다.

아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망치를 떨어뜨렸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다시 전방을 향해 걸었다. 폐허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약간의 긴장감마저 섞여 있었다. 살아남았다. 또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녹슬었지만, 여전히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문이었다. 문 위에는 닳아버린 글씨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E.R.L. 001’. 에테르 연구소 001.

“드디어….”

아인은 문에 바싹 다가갔다. 희미한 냄새가 났다. 금속 특유의 냄새와 함께, 아주 오래된 전자 회로에서 나는 듯한 미약한 에테르의 기운. 문은 잠겨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미 낡은 잠금장치의 구조가 그려졌다. 공구 주머니에서 소형 만능 렌치를 꺼내며,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아인의 발아래 금속판에서 섬뜩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폐허 너머의 잿빛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구름을 뚫고 나타난 그것은, 온몸에 녹슨 강철과 증기 기관을 달고 있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 ‘요새’였다. 그것의 육중한 선체에서는 희미하게 붉은빛이 깜빡였다.

아인의 마스크 안에서, 공기 필터 경고음이 더욱 격렬하게 울렸다.
마치 거대한 공중 요새가,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은 한 조각의 깨끗한 공기마저 탐내듯.
그녀의 눈동자에 불안과 함께, 새로운 미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더 깊은 폐허 속으로, 그녀는 과연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