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새벽
**에피소드 제목:** 핏빛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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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폐허가 된 도시 외곽 – 새벽
(차갑고 푸른 새벽빛이 무너진 빌딩 숲 위로 번진다. 도시는 뼈대만 남은 채 고요하다. 바람 소리만이 삭막하게 귓가를 스친다. 화면은 낡은 방독면을 쓴 한 남자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의 손에는 녹슨 철근 조각이 단단히 쥐여 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한 건물 잔해 옆을 지나간다. 그의 발걸음은 묵직하면서도 어딘가 숙련된 사냥꾼의 그것과 흡사하다.)
**내레이션 (이서준):**
세상이 무너진 지 3년.
사람들은 잿더미 속에서 짐승처럼 변해갔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길은…
단 하나의 이름만을 향하고 있었다.
(서준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낡은 통조림 캔을 향한다. 캔은 이미 내용물이 비워진 지 오래된 듯 녹슬어 있다. 서준은 조용히 캔을 발로 툭 찬다.)
**이서준:**
(낮게 읊조리듯, 쉰 목소리)
강민혁.
(그의 눈빛이 방독면 렌즈 너머로 차갑게 빛난다. 렌즈에 비친 도시의 모습은 절망적이지만, 그의 눈빛은 꺾이지 않는, 날카로운 무언가를 품고 있다.)
# 2. 건물 내부 – 낡은 사무실
(서준은 무너진 건물 내부로 진입한다. 먼지가 가득하고, 천장은 곳곳이 뚫려 하늘이 보인다. 과거 사무실이었던 곳에는 뒤집힌 책상과 부서진 컴퓨터들이 널려 있다. 그는 벽에 걸려 있던 낡은 달력을 떼어낸다. 찢어진 달력 뒤에는 누군가 매직으로 쓴 지도가 숨겨져 있다.)
**이서준:**
(지도를 펼치며, 한숨 섞인 목소리)
‘붉은 구역’… 젠장.
(지도는 복잡한 미로처럼 얽힌 도시의 주요 거점들을 표시하고 있다. 그중 한 곳에 붉은색 펜으로 큼지막하게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그곳은 지도상 ‘구 발전소’라고 적힌 곳이었다. 지도 곳곳에는 피와 흙이 묻어 있어 얼마나 오랜 시간 이곳을 뒤지고 다녔는지 짐작게 한다.)
**내레이션 (이서준):**
민혁의 흔적은 항상 가장 위험한 곳에 있었다.
그 자식은 죽음조차 이용해 먹는 놈이니까.
(서준은 지도를 조심스럽게 접어 품속에 넣는다. 그때, 밖에서 무언가 긁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철근이 긁히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
(서준은 즉시 몸을 무너진 책상 뒤에 숨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주시한다. 잠시 후, 사무실 입구 그림자 너머로 짐승 같은 실루엣이 나타난다.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몸 곳곳에 기형적인 돌기가 돋아난 변종 쥐였다. 크기는 일반 쥐의 두 배가 넘으며, 눈은 붉게 빛난다.)
(변종 쥐가 킁킁거리며 먹을 것을 찾듯 주변을 살핀다.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채운다. 서준은 숨을 죽인 채 움직이지 않는다. 쥐가 서준이 숨어 있는 책상 쪽으로 다가오자, 서준은 재빨리 튀어나와 녹슨 철근으로 쥐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친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쥐는 한 번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축 늘어진다. 기형적인 몸뚱이가 바닥에 뒹굴다 멈춘다. 서준은 쥐의 시체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본다.)
**이서준:**
(낮게 읊조리듯)
쯧. 썩은 고기조차 아깝군.
(그는 쥐의 시체를 대충 발로 밀어 구석으로 치우고 다시 갈 길을 간다. 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일상인 것처럼.)
# 3. 플래시백 – 3년 전, 깊은 숲 속
(3년 전, 세상이 막 무너졌을 때의 기억. 아직은 푸른색이 남아있는 숲 속. 서준, 민혁, 그리고 또 다른 친구 ‘지영’이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들은 낡은 군용 비상식량을 나누어 먹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지만,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듯했다.)
**지영:**
(지쳐서 한숨을 쉬며, 울먹이는 목소리)
이러다간 정말 다 굶어 죽겠어. 식량도 거의 바닥이고, 약도 없고… 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못 찾았어.
**민혁:**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서준과 지영을 번갈아 본다)
괜찮아, 지영아. 내가 저번에 지도에서 본 곳이 있어. 폐쇄된 보급창고인데, 거기 가면 뭔가 있을 거야. 서준이, 네 생각은 어때?
**이서준:**
(말없이 식량을 씹으며, 심각한 표정)
너무 멀어. 그리고 그곳은 ‘경고 구역’으로 표시되어 있었어. 무슨 위험이 도사릴지 몰라. 괜히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민혁:**
(웃으며 서준의 어깨를 툭 친다. 그의 눈빛에 한순간 섬광이 스치는 듯하다.)
걱정 마. 내가 누구냐? 강민혁 아니냐? 너랑 나랑 같이 가면 못 해낼 일이 없지. 안 그래? 지영이도 같이 가자.
**지영:**
(약간의 희망을 찾은 듯, 불안한 눈으로 민혁을 본다)
정말… 괜찮을까? 또 아무것도 없으면…
**민혁:**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
그럼! 우리는 같이 살아남아야지. 가족이나 다름없잖아!
(민혁의 말에 서준은 살짝 미소 짓는다. 당시에는 민혁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었다. 세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지영은 민혁의 말에 겨우 안도한 듯 작게 미소 짓는다.)
# 4. 플래시백 – 폐쇄된 보급창고 내부 (같은 날)
(어둡고 음침한 보급창고 내부. 서준과 민혁, 지영은 손전등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녹슨 선반 위에는 낡은 박스들이 쌓여 있고, 바닥은 먼지로 가득하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기분 나쁜 침묵이 흐른다.)
**지영:**
(두려운 목소리로, 민혁의 팔을 잡으며)
여… 여기 정말 아무도 없는 거 맞지?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서워.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민혁:**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조심해. 분명 뭔가 있을 거야. 서준아, 너는 이쪽으로 가봐. 나는 지영이랑 저쪽을 확인할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지.
**이서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어. 조심해. 소리 나면 바로 알려.
(서준은 한쪽 복도로 들어가고, 민혁과 지영은 다른 쪽으로 향한다. 서준이 어두운 복도 끝, 선반 뒤쪽을 손전등으로 비추자, 먼지 쌓인 구호품 박스들이 나타난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드디어 희망을 찾았다는 안도감.)
**이서준:**
찾았다! 여기 구호품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춘다. 그의 표정에서 기쁨이 사라진다.)
(그때, 뒤에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창고 전체가 흔들리는 듯하다. 서준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닫힌 쇠 문 너머로 민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안함 대신 냉정한 계산이 담겨 있었다.)
**민혁 (목소리):**
미안하다, 서준아.
(서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충격과 배신감으로 얼룩진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문을 응시한다.)
**이서준:**
민… 민혁아? 이게 무슨 짓이야! 문 열어! 지영이는?! 너 혼자서 뭘 하려는 거야!
**민혁 (목소리):**
(점점 멀어지는 듯한 목소리, 비웃음 섞인 어조)
이 정도 식량으로는 우리 셋이서 살아남을 수 없어. 너무 부족해.
지영이는… 내가 데려갈게. 여자는 어디든 쓸모가 많으니까.
너는… 여기서 살아남아 봐. 네 실력이라면 가능할 거야.
네가 살아남으면… 다시 만나자. 하하하!
(민혁의 마지막 웃음소리는 서준의 귀에 비수가 되어 박힌다. 그 웃음은 서준의 영혼을 찢어 놓았다. 서준은 닫힌 쇠 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리지만, 문은 굳게 닫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서준:**
(절규하듯, 목이 터져라 외친다)
강민혁!!! 이 개자식!!! 돌아와!!! 지영이 데리고 돌아오라고!!!
(서준은 온 힘을 다해 문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내리친다. 그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눈은 절망과 분노, 그리고 지영에 대한 걱정으로 이글거린다.)
# 5. 현재 – 폐허 속을 이동하는 서준
(현재의 서준. 그의 얼굴에는 과거의 순진함은 찾아볼 수 없다. 굳게 다문 입술과 차가운 눈빛만이 남아 있다. 그는 황량한 도로를 따라 걷는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지평선 너머로는 붕괴된 도시의 실루엣이 펼쳐져 있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지친 기색보다 강철 같은 의지가 엿보인다.)
(서준은 허리춤에 찬 낡은 물통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물통은 거의 비어 있다. 그의 발밑에는 마른 나뭇가지와 유리 조각들이 밟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앞만을 향한다.)
**내레이션 (이서준):**
그날 이후, 나는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혼자였다. 철저하게 혼자였다.
살아남기 위해, 짐승보다 더 짐승처럼 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의 끝에는… 너를 향한 복수만이 존재했다.
지영의 행방도 알 수 없게 만든 너의 죄는…
(멀리서 희미하게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낡았지만 강력한 엔진의 굉음. 서준은 즉시 몸을 수풀 속에 숨기고 소리가 나는 쪽을 경계한다. 주변의 잡목과 흙먼지가 그의 몸을 가린다.)
(낡은 장갑차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장갑차의 옆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양과 함께 붉은색 해골 마크가 그려져 있다. 그들의 깃발에는 찢어진 천 조각으로 만든 해골 문양이 휘날린다. 장갑차 위에는 총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그들의 눈빛은 살벌하다.)
(장갑차는 서준이 숨어 있는 곳을 지나쳐 ‘구 발전소’ 방향으로 이동한다. 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그는 장갑차의 뒤를 조용히 쫓아가기 시작한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민첩하고 소리 없다.)
**이서준:**
(이를 악물며, 작게 읊조린다)
결국… 구 발전소였군.
강민혁. 네가 뭘 꾸미고 있든…
내가 반드시 찾아낼 거야.
(서준은 장갑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폐허 속을 유령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황량한 땅 위를 스친다.)
# 6. 구 발전소 외곽 – 해질녘
(붉은 노을이 구 발전소의 앙상한 철골 구조물 위로 쏟아진다. 발전소는 거대한 흉터처럼 도시 한가운데에 박혀 있다. 서준은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발전소를 관찰한다. 그의 얼굴에는 결코 잊지 못할 증오가 서려 있다.)
(발전소 주변에는 임시 바리케이드와 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무장한 경비병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발전소 내부에서는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온다.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 같았다.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은 이곳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서준:**
(망원경을 통해 발전소 내부를 훑으며, 턱을 단단히 조인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군.
저 정도 병력을 이끌다니…
네가 대체 뭘 손에 넣은 거지, 강민혁.
(서준의 시선이 한 감시탑에 멈춘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경비병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 강민혁이었다. 그의 얼굴은 예전보다 살이 붙었고, 교활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다.)
(민혁은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과거의 누더기 옷과는 달리, 말끔하고 고급스러운 가죽 재킷이었다.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젊은 여성 몇 명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서 있었다. 그 중 한 명의 뒷모습이 지영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이서준:**
(이를 갈며, 망원경을 꽉 쥔 손에 힘줄이 솟아오른다)
강민혁…! 그리고… 지영?
(서준의 손이 주먹을 꽉 쥔다. 그의 눈빛은 핏빛으로 물든 노을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지영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희미한 실루엣에, 그의 복수심은 한층 더 격렬하게 폭발한다.)
(민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경비병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 그의 눈빛은 권력과 탐욕으로 가득 차 보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세상을 지배하는 왕인 양 행동하고 있었다.)
**내레이션 (이서준):**
내가 너를 다시 만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나의 고통은… 너에게 갚아야 할 빚이다.
그리고 그 빚은… 피로 갚게 될 거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 때까지…
(서준은 망원경을 거두고, 발전소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의 뒤로는 붉은 노을이 지고, 어둠이 서서히 깔린다. 그의 실루엣은 결연한 복수의 화신처럼 보인다. 그의 손에 쥐인 녹슨 철근 조각이 마지막 붉은 빛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빛난다.)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