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을 기어 다녔다. 지혁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먼지가 코를 찌르는 와중에도, 그의 후각은 오직 ‘살 만한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한때 번성했을 상업 지구의 건물들. 이제는 빛바랜 벽지 위로 엉겨 붙은 덩굴들이, 앙상한 팔처럼 뻗어 나와 유리창을 부수고 내부를 잠식하고 있었다. 창문은 깨지고, 가구들은 뒤집혀 부패한 시체처럼 널려 있었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콘크리트 파편들이 밟히는 대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소리조차 이곳에선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소리를 들을 만한 생명체는 이미 사라졌거나, 아니면 자신과 똑같이 숨죽인 채 먹이를 찾아 헤매는, 또 다른 그림자일 뿐이었다.

배 속에서는 거대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이 언제였더라? 흐릿한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말라비틀어진 빵 조각과 흙탕물뿐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에 익숙해진 시선으로 낡은 선반 위를 훑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틈새로, 녹슨 캔 하나가 보였다. 손전등은 아껴야 했다. 배터리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젠장…”

나지막이 욕설을 읊조리며 손을 뻗었다. 캔은 차갑고 묵직했다. 희미한 글자들이 육류 통조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둡고 축축한 상표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과연 내용물이 아직 먹을 만한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사치였다. 그는 캔을 품에 안고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당장이라도 캔을 따서 먹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캔을 따는 ‘쉭’ 하는 소리에 불청객이 몰려들 수도 있었다. 이곳은 언제나 그랬다. 희망적인 발견은 언제나 더 큰 위험을 동반했다. 생존의 사슬은 언제나 더 큰 사슬로 이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슥삭.

아주 미세한 소리. 마치 쥐가 바스락거리는 것 같은, 혹은 발밑의 잔해가 바람에 움직이는 소리일 수도 있는, 그런 종류의 소리였다. 지혁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뛰어올랐다. 녹슨 쇠 파이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낡은 파이프 하나가 그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눈은 어둠 속을 꿰뚫으려 애썼다. 멀지 않은 곳, 부서진 벽 너머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는 작고, 가늘었다. 마치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지혁은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관찰했다. 그림자는 벽을 더듬으며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부서진 창문 아래,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곳에 멈춰 섰다.

그것은 한 소녀였다.

갈색으로 변색된 후드티에 찢어진 바지 차림. 마른 몸은 위태로워 보였다. 소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오직 희미한 빛을 피해 벽에 기대선 채, 주변을 살피는 듯했다. 불안한 눈동자는 계속해서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창백했다. 굶주림에 지쳐 보였다. 지혁은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약해 보이는 존재일수록 더 위험할 수 있었다. 때로는 극도의 굶주림이 인간을 짐승보다 더 사납게 만들었다. 지혁은 수없이 많은 잔혹한 장면들을 봐왔다. 선의가 가장 큰 약점이 되는 순간들을.

소녀는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주저앉았다. 작은 돌멩이였다. 소녀는 그 돌멩이를 집어 들고는 벽에 대고 긁기 시작했다. 무의미한 행동. 긁는 소리는 귓가에 거슬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굶주림에 지쳐 무언가에라도 집중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지혁은 숨을 참고 소녀를 지켜봤다. 소녀는 돌멩이로 벽을 긁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혁이 숨어 있는 방향으로 돌아왔다.
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더 깊이 참았다. 그녀의 눈은 어둠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듯, 그를 똑바로 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분명 지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었다.
“누… 누구 있어요…?”
소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가늘고 약해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바람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지혁의 심장을 날카롭게 꿰뚫었다.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존재를 들킨 이상, 더 이상 숨어있을 의미는 없었다.

지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소녀에게 닿았다. 낡은 쇠 파이프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적막을 갈랐다. 소녀는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 속에는 절망과 함께, 미약한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잡힌 작은 동물처럼.
“뭘 하고 있지?” 지혁은 일부러 낮고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였다.
소녀는 몸을 움찔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손은 주워든 돌멩이를 놓지 않고 있었다. 그 돌멩이가 마치 그녀의 유일한 무기라도 되는 양 움켜쥐고 있었다.
“먹을 걸 찾고 있나?” 지혁은 캔 통조림이 든 품을 무의식적으로 감쌌다. 캔의 묵직한 무게가 그의 손안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 캔 하나면 자신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통조림을 든 지혁의 품을 스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혁은 그 눈동자 속에서 굶주림이라는 날것의 감정을 읽어냈다. 그것은 지혁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하는, 생존 본능에 잠식당한 추한 초상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머리 위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천장에서 굵은 흙먼지 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젠장!” 지혁은 급히 소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런 낡은 건물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다름 아닌 건물 자체였다.
소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의 손에 이끌려 휘청거렸다. 굉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쿵, 쿵! 연이어 터지는 소리는 마치 거인이 이 건물을 두들겨 부수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무너지고 있었다. 균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천장이 갈라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있다간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깔려 죽을 수도 있었다.
지혁은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벽 틈새로 보이는 희미한 외부의 빛. 그곳으로 나가야 했다. 생존의 본능이 그를 지배했다.
“이쪽으로!” 지혁은 소녀를 잡아끌었다.
소녀는 주저하는 듯했지만, 지혁의 강한 힘에 이끌려 움직였다. 그들의 뒤편에서 건물의 일부가 거대한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끔찍한 진동이 발밑을 흔들었다. 발밑에서 무너져 내리는 잔해들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지혁은 소녀를 거의 던지듯이 틈새로 밀어 넣고 자신도 그 뒤를 따랐다. 좁고 날카로운 파편들로 가득한 틈새를 기어 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때렸다. 살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들이 나온 곳은 완전히 폐허가 된 거리였다. 금이 가고 부서진 아스팔트 위로 앙상한 가로등만이 삐뚤게 서 있었다. 멀리 보이는 건물들은 기울어져 있었고,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공포는 사그라들었지만, 이제 또 다른 불안이 그들을 감쌌다.

지혁은 소녀를 내려다봤다. 소녀는 잔뜩 웅크린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경계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괜찮아?” 지혁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 ‘괜찮냐’고 묻는 것은 사치였다. 질문이 아니라, 어쩌면 그저 자신의 인간성을 확인하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소녀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지혁이 품에 안고 있는 캔 통조림을 향했다. 굶주림. 그건 숨길 수 없는 원초적인 갈망이었다. 짐승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도움을 갈구하는 미약한 빛도 있었다.

지혁은 그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니,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인간성이 남아있다면.
하지만 그는 동시에 확신했다. 저 캔 하나로 이 소녀와 자신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눠 먹으면 둘 다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만 연장할 뿐이었다. 하지만 혼자 먹는다면? 소녀는 어떻게 되는가? 버리고 가는 것은 너무나 쉬운 선택이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지혁은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멀리 떨어진 잿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오직 살아남기 위한 선택만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묵직한 캔 통조림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안에는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인간성의 마지막 조각이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생존을 위한 잔혹한 거래의 시작일지도.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굶주린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이 소녀가 그 그림자 중 하나가 될지, 혹은 자신의 그림자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생존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는 갈수록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