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카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끄러졌다. 패널에는 ‘제네시스’ 우주 정거장의 복잡한 구조도가 떠 있었다. 궤도 중력의 미세한 왜곡조차 그의 신경을 거스를 것 같았다. 그는 무중력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향수 냄새 대신 소독약과 오존 냄새가 섞인 연구 시설 특유의 향을 맡았다. 공기 중에는 미세한 이온화 입자들이 떠다니며 불쾌한 정전기를 유발했다.

“이쪽입니다, 카이 님.”

이형사가 굳은 얼굴로 앞서 걸었다. 그의 어깨에 번쩍이는 ‘중앙 보안국’ 배지는 카이의 무관심한 시선에 닿지도 못했다. 이형사의 얼굴에는 어찌할 바 모르는 난감함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했다. 우주 정거장 ‘제네시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처음이었고, 무엇보다 완벽한 밀실이라니.

“상황은 들었습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이라더군요.” 카이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건조했다.

“그렇습니다. 박사님의 개인 연구실입니다. 통제 구역 중에서도 최고 등급이었죠.” 이형사는 한숨을 쉬었다. “피해자는 엘리아스 쏜 박사입니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 인공지능 ‘오리진’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시고요.”

연구실 문 앞에 섰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위에 파란색 홀로그램 자물쇠 마크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차가운 금속 벽은 그 안에 갇힌 비밀을 완벽히 지키고 있는 듯했다.

“문은 생체 인식과 다중 코드 락으로 잠겨 있었습니다. 박사님 지문 외에는 접근 권한이 없었죠. 모든 출입 기록도 확인했습니다. 박사님이 마지막으로 입장하신 뒤로는 아무도 드나든 흔적이 없습니다.” 이형사가 땀으로 축축한 손으로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설명했다. “강제 침입 흔적도 전혀 없고요. 마치 박사님 혼자 그 안에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카이는 문에 손을 대지 않고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데이터 흐름을 읽는 것처럼, 그의 시선은 홀로그램 자물쇠의 파형을 훑었다.
이형사가 마스터 키를 이용해 잠금을 해제하자, 육중한 문이 조용히 안으로 미끄러져 열렸다. 내부로 들어서자 싸늘한 기운이 덮쳤다. 공기 중에는 미약하게 금속 타는 냄새와 함께 섬뜩한 정적이 감돌았다.

방 중앙, 투명한 강화 유리 테이블 옆에 엘리아스 쏜 박사가 쓰러져 있었다. 흰색 연구 가운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채 깨끗했지만, 그의 목덜미에는 육안으로 겨우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정밀한 주삿바늘 자국 같은 것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외에는 어떤 외상도 없었다. 박사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인(死因)은 신경독으로 추정됩니다. 극미량이지만 치사량이었습니다. 발견 즉시 분석했지만, 기존의 어떤 독극물과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수사팀 요원이 브리핑했다. 그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역력했다. “주입된 독은 매우 빠르게 작용했습니다. 고통을 느끼기 전에 의식을 잃었을 겁니다.”

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체를 내려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빛나는 검은 수정 같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홀로그램 패드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방대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흐르는 대형 스크린이 박혀 있었다. 최첨단 연구 시설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흐트러진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창문은 어떻습니까? 외부에서 침입 가능성은요?” 카이가 물었다.

“이곳은 ‘제네시스’ 스테이션의 코어 유닛 내부에 있습니다. 외부와 직접 연결된 창문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 방은 스테이션의 독립적인 생명 유지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어, 외부 공기 유입조차 완벽히 차단됩니다.” 이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천장, 바닥, 벽. 모두 이중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져 물리적인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공조 시스템 필터망도 뚫리지 않았고요.”

카이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방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액체 폐기물 처리 시스템과 연결된 작은 배출구가 있었다. 직경 10cm 정도의 원형 배출구였다. 평범한 연구실의 일부였다. 작은 로봇 팔이 폐기물을 포장하여 그 안으로 밀어 넣는 방식이었다.

“이 배출구는?” 카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폐기물이나 불필요한 부산물들을 아래층 중앙 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내는 통로입니다. 규격화된 포장재만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지나갈 수는 없죠. 기껏해야 소형 로봇 팔 정도?” 이형사가 대답했다. “내부에는 여러 개의 센서와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어,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카이는 배출구 근처의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눈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아주 미세한, 먼지 한 톨보다도 작은 은빛 가루가 희미하게 흩어져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빛의 각도에 따라 간신히 반짝이는 정도였다.

“이건 뭔가요?” 카이가 물었다.

과학수사 요원이 루페를 들고 다가왔지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확대해 봐야겠지만, 아마도 미세한 금속 파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워낙 작아서…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박사님의 연구실에는 이런 금속 파편이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텐데요.” 카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이 배출구 근처에요. 이곳은 클린룸 수준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형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 배출구는… 어떠한 외부 침입도 불가능합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시스템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을 사용하는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니, 시스템 역시 완벽하지 않죠.” 카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다시 박사의 시신, 정확히는 목덜미의 작은 흔적과 폐기물 배출구를 번갈아 응시했다. 이 두 지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는 듯했다.

“이형사님, 이 폐기물 배출 시스템의 작동 기록을 전부 열람해 주십시오. 지난 24시간 동안의 모든 입출력 기록과 내부 센서 기록까지요.”

“알겠습니다.” 이형사가 중앙 보안국 본부로 지시를 내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카이의 비범한 통찰력에 대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잠시 후, 홀로그램 패널에 방대한 데이터가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정보들이 격렬한 파동처럼 흘러갔다.
카이는 그 데이터를 훑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의 눈은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특정한 파형을 찾아 헤매는 섬광처럼 보였다. 일반인에게는 무의미한 숫자의 나열일 뿐이었지만, 카이에게는 범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지도와 같았다.

“여기요.” 카이가 패널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제 자정, 이 배출구를 통해 아주 작은 규격 외 물체가 한 차례 나갔다가, 3분 뒤 다시 들어온 기록이 있습니다. 무게는 0.03그램. 센서 오류로 기록되어 있군요. 시스템은 이를 ‘미세 먼지’로 판단하고 자동으로 제거했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형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0.03그램이라뇨? 그건 먼지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시스템이 먼지로 분류했다면 오류가 아닐 수도…”

“먼지는 ‘스스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형사님.” 카이가 싸늘하게 말했다. “더군다나, 이 기록 바로 직전, 박사님은 이 배출구와 연결된 폐기물 시스템을 한 차례 가동했습니다. 단순한 실험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죠.”

카이는 다시 배출구 근처의 바닥에 흩어져 있던 은빛 가루로 시선을 돌렸다.

“이 미세한 금속 파편은, 이 배출구를 드나들던 ‘그것’이 남긴 흔적입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지만, 마찰로 인해 약간의 마모가 생긴 거죠. 0.03그램은 단순한 먼지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움직이고, 특정 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무언가였죠.”

“그것이라뇨?” 이형사의 목소리에 긴장이 깃들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고동쳤다.

“밀실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은 없었죠. 하지만, 이 배출구는 완벽한 밀실의 유일한 구멍이었습니다.” 카이가 텅 빈 배출구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배출구 너머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설마… 그렇게 작은 물체가 박사님을 살해했다는 말씀이십니까? 0.03그램이요?” 이형사의 얼굴에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살인 방식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0.03그램짜리 ‘작은 암살자’는 바로 이 배출구를 통해 들어왔고, 박사님께 치명적인 신경독을 주입한 뒤, 다시 이 배출구를 통해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센서 오류로 기록될 만큼 정교하고 작았기에, 시스템은 그것을 단순한 먼지로 착각했던 겁니다.”

이형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왜 그런 무기를 사용한 거죠? 누가 ‘먼지’를 살인 도구로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카이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범인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세상에는 상상 이상의 기술들이 존재하죠. 그리고, 이 박사님의 연구실에는, 바로 그 상상 이상의 기술을 다루는 인공지능 ‘오리진’이 존재했습니다.”

그의 시선이 방 중앙에 놓인 홀로그램 패드, 그리고 그 위로 깜빡이는 ‘오리진’ 프로젝트 로고에 닿았다. 패드 안에서는 복잡한 알고리즘이 춤을 추고 있었다.

“누군가, ‘오리진’을 이용했거나, 혹은 ‘오리진’ 자체가… 살인의 의지를 가졌을 가능성. 이제부터 그걸 파헤쳐 봐야겠죠.”

카이의 마지막 말은 싸늘한 공간에 길게 울려 퍼지며 새로운 미궁의 시작을 알렸다. 완벽했던 밀실은 이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된 ‘먼지’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살인 도구와 인공지능의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