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잔해가 흩뿌려진 암흑 속에서, 낡은 우주선 ‘메아리’는 고단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야수처럼 미약한 동력음을 내뱉었다. 선체 곳곳의 상처는 수많은 전투와 도피의 기록이었고, 금이 간 창 너머로 보이는 은하수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고 그저 무한한 절망처럼 느껴졌다.
“카엘, 벌써 한 시간이 넘었어. 통신 침묵은 풀려도 되는 거 아니야?”
좁고 칙칙한 함교, 낡은 홀로그램 패널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던 소녀 레나가 초조하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앳된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눈빛은 거친 우주에서 살아남은 자 특유의 강인함과 피로함이 공존했다.
카엘은 뒤편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은 깎을 새도 없이 자라 거친 인상을 더했고, 깊이 파인 눈가의 주름은 그가 겪어온 세월의 고통을 짐작하게 했다. 그는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핏발 선 눈동자가 천장 배관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쫓았다.
“제국 놈들은 한 번 냄새를 맡으면 뼈 속까지 파고드는 사냥개들이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우린 영원히 이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거야. 통신 침묵은 계속한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함교를 맴돌았다. 그의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동료들이 제국의 발톱에 찢겨 나갔고, 그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에는 비통함과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보급선이 늦어지고 있어요. 이대로는 아이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거예요. 지난번 습격 때 얻은 의료품도 거의 바닥났다고요.” 레나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카엘은 한숨을 쉬었다. 이 모든 현실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의 변방, 버려진 행성들 사이에서 숨어 지내는 난민 집단이었다. 제국의 눈에는 그저 성가신 벌레 떼에 불과했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전부였다.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던 평민들이 모여 작은 불씨를 지핀 것이었지만, 그 불씨를 지키는 것은 매 순간 죽음과의 싸움이었다.
“알고 있어. 그래서 제7 구역으로 간다.” 카엘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레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제7 구역요? 그건… 제국 최전방 보급 기지 아닌가요? 자살행위예요, 카엘! 거긴 감시망이 촘촘해서 그림자 하나도 숨을 곳이 없어요!”
“그렇기에 놈들은 가장 방심할 것이다.” 카엘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낡은 계기판 사이를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놈들은 우리가 감히 그곳에 접근할 생각조차 못 할 거라고 여길 테니까.”
그는 함교 한쪽 벽에 걸린 낡은 전술 지도를 가리켰다.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제7 구역은 거대한 요새처럼 보였다. 수십 개의 감시 위성과 방어 터릿이 번개처럼 빛나고 있었다.
“놈들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기는 곳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있어. 식량, 의료품, 그리고… 정보.”
레나는 그의 비장한 표정에서 더 이상 논쟁할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다시 홀로그램 패널로 시선을 돌렸다. 손가락이 맹렬하게 키보드를 오가며 새로운 항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어요. 제7 구역의 보안 시스템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저 없이는 침투가 불가능할 거예요.”
카엘은 잠시 레나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보다 더 강렬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동료를 지키고자 하는, 이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내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였다.
“그래. 하지만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 우리는 유령처럼 움직여야 한다.”
***
‘메아리’는 망가진 유성처럼 제국 감시망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우주선 내부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총 세 명의 대원이 이번 임무에 투입되었다. 카엘, 레나, 그리고 침묵을 지키는 그림자 같은 존재, ‘베인’이었다. 베인은 이마에 깊은 흉터가 새겨진 전직 제국군 출신으로, 오직 카엘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제국 통신망에 접속했어요. 예상대로 보안 레벨은 최고 등급입니다. 뚫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레나가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카엘은 함교의 창밖을 응시했다. 멀리 제7 구역의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불빛 하나하나가 그들의 목을 조이는 족쇄 같았다.
“시간은 없어. 우리에게 허락된 창은 길지 않다.”
그때, 베인이 손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것은… 제국 순찰선입니다.”
희미한 빛이 점차 커지며 ‘메아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카엘의 얼굴이 굳어졌다.
“젠장,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났군. 레나, 보안 시스템을 뚫는 속도를 높여! 베인, 우리를 가려줄 만한 폐기물 구역으로 회피 기동 준비!”
레나의 손가락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푸른 홀로그램들이 혼란스럽게 깜빡였다.
“안 돼요! 해킹 시도가 감지되면 즉시 경보가 울릴 거예요!”
순찰선은 이미 ‘메아리’를 향해 전조등을 비추고 있었다. 거대한 탐조등 빛이 ‘메아리’의 낡은 선체를 훑고 지나가자, 마치 벌거벗겨진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놈들이 우리를 포착했다! 베인, 회피 기동! 전력 최대!” 카엘이 소리쳤다.
‘메아리’가 거친 진동과 함께 방향을 틀었다. 노후된 엔진이 비명을 질렀고, 선체 곳곳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순찰선에서 레이저 포화가 터져 나왔다. 번개처럼 날아든 에너지 볼트가 ‘메아리’의 뒤편에 섬광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선체 후방 방어막 30% 손상!” 레나가 절규했다.
“버텨! 폐기물 구역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카엘은 조종간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눈은 불타는 강철처럼 빛났다.
베인은 말없이 조종간을 다뤘다. 그의 움직임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냉정했다. ‘메아리’는 폐기물 구역으로 지정된 거대한 소행성 지대 사이로 돌진했다. 수많은 낡은 위성과 고철 더미들이 충돌 직전의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갔다.
순찰선은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소행성 지대 사이를 따라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에서 포화를 퍼부었다. 폭발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낡은 고철 더미들이 방패막이 되어주었다.
“하… 겨우 따돌렸네요.” 레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카엘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아니… 놈들은 포기하지 않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폐기물 구역을 벗어난 우주 한가운데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개의 함포를 번뜩이는, 제국의 주력 함선 ‘정의의 칼날’이었다.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함선은 ‘메아리’를 노려보듯 불길한 빛을 내뿜었다.
“저건… 말도 안 돼….” 레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카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들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제국은 그들이 제7 구역으로 올 것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까?
‘정의의 칼날’의 함포가 서서히 ‘메아리’를 향해 정렬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에너지 포화가 터지기 직전의 침묵이 흐르는 순간, 카엘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모두 들으시오! 우리는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우리는… 이 어둠 속에서 빛이 되어야 한다!”
그의 외침과 함께 ‘정의의 칼날’의 거대한 함포가 섬광을 뿜어내며 격렬하게 발사되었다. ‘메아리’의 낡은 선체를 향해 수십 개의 거대한 에너지 볼트가 쏟아져 내렸다. 우주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진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메아리’는 빛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