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마법학교 ‘아르카디아’는 이름만큼이나 눈부셨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백색의 첨탑들, 고대 주문이 새겨진 거대한 대리석 벽,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마법 도서관의 둥근 지붕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고, 경외심을 자아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완벽함 아래에는 언제나 균열이 숨어있다는 것을.
“세라! 거긴 정말 위험하다고!”
내 등 뒤에서 리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이미 익숙한 마법으로 잠긴 철문을 통과한 후였다. 손에 든 수정 램프가 어둠을 가르고 흐릿한 빛을 뿌렸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곳은 아르카디아 마법학교의 ‘금지된 서고’,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가장 깊숙한 지하 어딘가였다.
“쉿, 리나. 이렇게나 흥미로운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잖아?” 내가 속삭이자, 리나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손목의 팔찌를 꽉 쥐었다. 리나의 팔찌는 비상시 탈출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나도 만약을 위해 변신 마법의 심볼을 꼭 쥐고 있었다.
“흥미롭기는 개뿔!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걸리면 퇴학이야, 퇴학!” 리나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우리가 찾던 것은 낡은 지도에 표시된 ‘미등록 구역’이었다. 학교의 창설 시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지도였는데, 유독 한 곳만이 지워지다시피 표기되어 있었다. 오직 미약한 마력 흔적만 남아있을 뿐, 어떤 정보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존재를 숨기려 한 것처럼.
복도는 점점 더 좁아지고, 벽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의 문자들이 기괴하게 뒤틀려 새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보호 주문이 아니었다. 강력한 봉인 마법,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된 금기呪가 섞여 있었다. 램프의 빛조차 제대로 흡수하는 것 같았다.
“이거 진짜… 으스스한데.” 리나가 몸을 움츠렸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는 직감과 함께, 뭔가 거대한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는 설렘이 뒤섞였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래된 돌바닥에서 눅눅한 먼지가 흩날렸다. 얼마나 깊이 내려갔을까. 더 이상 복도라고 부를 수 없는,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제단이 솟아 있었다. 그 제단 위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 빛은 기이하게도 핏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는 숨을 들이쉬는 것도 잊었다. 리나는 나보다 먼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제단 위에는 ‘그것’이 있었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거대한 존재. 끔찍하게 뒤틀린 육신은 여러 개의 사지로 이루어져 있었고, 검붉은 비늘과 촉수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분명 살아있는 존재였지만, 마치 모든 생명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거대한 마법진은 그 존재를 억누르는 동시에, 마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한 맥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건… 대체…” 리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학교의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마력의 근원’과 흡사했다. 아르카디아 마법학교가 수천 년간 마법 문명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그 신비한 에너지의 원천. 하지만 전설 속의 마력 근원은 언제나 아름답고 신성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지금 내 눈앞의 이 끔찍한 비명은, 무엇이었을까.
그 존재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핏빛으로 물든 동공은 초점을 잃은 듯 흐릿했지만, 섬뜩할 정도로 오래된 지혜가 담겨 있는 듯했다. 그 시선이 나와 리나에게 향했다. 순간, 거대한 비명이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소리 없는 비명은 절규하는 고통과 무한한 절망으로 가득했다.
*살려줘… 살려줘…*
그것은 목소리가 아닌, 감정의 파동으로 내 정신에 직접 호소했다. 너무나 강렬하고 처절한 감정이었다. 학교의 모든 마력이, 저 비명 속에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아르카디아가 자랑하는 모든 위대한 마법이, 저 끔찍한 고통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란 말인가?
내 몸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손에 쥐고 있던 변신 마법의 심볼에서 따뜻한 빛이 새어 나왔다. 분노, 슬픔,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에 대한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이런 것이 ‘금기’였다면, 나는 이 금기를 깨부수고 싶었다.
“세라… 안 돼…!” 리나가 내 손을 잡았지만, 내 의지는 이미 굳어져 있었다.
*이것은… 잘못되었어.*
내 내면의 목소리가 외쳤다. 학교의 영광 아래 감춰진 추악한 진실. 정의를 지킨다고 배운 마법이,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심볼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순식간에 내 몸을 감쌌다. “별빛이여, 정의의 이름으로!”
환한 빛이 동굴을 가득 채우자, 나의 평범한 교복은 순식간에 별빛이 수놓인 마법소녀의 의상으로 변했다. 마법봉이 손에 쥐어졌고, 푸른색 마법진이 내 발아래에서 빛났다. 나의 변신은 주변의 마력을 자극했고, 동시에 제단 위의 존재를 억압하던 봉인 마법진이 희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쩌저적!*
동굴 입구에서 거대한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차가운 금속성 마법진이 번개처럼 번쩍이며 동굴 입구를 막아섰다. 강력한 마력이 우리의 존재를 감지하고 움직인 것이었다.
“침입자들. 감히 금기에 손을 대려 하는가.”
낮고 엄숙한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마법 갑옷을 입은 존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투구 아래로 빛나는 붉은 눈은 감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은 분명 아르카디아 학교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임을 암시했다. 어쩌면 교장, 혹은 그 직속 친위대일 수도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금기다!” 내가 마법봉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당신들이 숨긴 추악한 진실을, 내가 밝혀낼 거야!”
마법 갑옷의 붉은 눈이 잠시 멈칫하는 듯하더니, 이내 거대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섬뜩한 마법진이 방패 위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아이여. 너는 아직 이 세상의 진실을 감당할 수 없다. 여기서 끝내주마.”
전투가 시작될 참이었다. 내 등 뒤의 리나가 비명을 지르며 팔찌의 마법을 발동하려 했지만, 갑옷의 마법이 그녀를 짓눌렀다. 제단 위의 끔찍한 존재는 희미한 빛을 내뿜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마법봉을 꽉 쥐었다. 이 모든 것을 밝혀내야 했다. 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아르카디아의 이름 아래 숨겨진, 끔찍한 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