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심층핵의 부름

**1장. 심연의 균열**

강준혁은 낡은 작업등 아래, 먼지로 희뿌연 공기 속을 유영하는 부유물들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수백 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회로 기판이 들려 있었다. 금이 가고 부식된 흔적이 역력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희미한 에너지 흐름이 감지되었다. 낡은 방진복의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은 단련된 근육으로 울퉁불퉁했고, 굳은살 박힌 손가락은 숙련된 외과 의사처럼 섬세하게 장치를 다루었다.

작업실은 그 자체로 고물상이었다. 한때는 최첨단이었을 장비들이 이제는 폐기 직전의 고철 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벽면에는 잊혀진 문명들의 상형문자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새겨진 파편들이 무질서하게 걸려 있었다. 바닥에는 공구 상자와 데이터 칩,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부품들이 뒹굴었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준혁만이 유일한 질서이자 중심이었다.

“빌어먹을, 또 막혔군.”

낮게 읊조린 그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고대 기판은 특정 구간에서 전력 흐름이 끊겼다. 단순한 단선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에너지를 가로막는 듯했다. 그는 이 기판을 일주일째 붙잡고 있었다. 시장통에서 우연히 발견한 물건이었는데, 여느 유물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파장을 내뿜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그가 잠시 쉬기 위해 등받이 없는 의자에 몸을 기댔을 때였다. 작업대 한구석에 놓인 낡은 단말기에서 ‘삐빅’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에게 연락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연락이 온다 해도 이렇게 암호화된 신호는 극히 드물었다.

“누구지?”

그는 느릿하게 손을 뻗어 단말기를 조작했다. 암호 해독 프로그램이 구동되기 시작했다. 낡은 프로세서는 버거운 듯 한참을 윙윙거렸고, 화면에는 복잡한 코드가 쏟아져 내렸다. 평소 같으면 최소 한 시간은 걸릴 해독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단 3분 만에 화면이 깜빡이더니, 깔끔하게 정돈된 데이터 창이 떠올랐다.

그것은 짧은 메시지와 하나의 좌표, 그리고 독특한 에너지 파형의 그래프였다. 메시지 내용은 더 단순했다.

[심층핵(深層核). 열쇠는 네 손에.]

준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심층핵’. 그건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이름이었다. 선대 문명이 남긴 가장 깊고 은밀한 유적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에너지가 봉인되어 있다는 미신 같은 이야기. 단 한 번도 실존이 확인된 적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저 어린이들을 위한 옛날이야기쯤으로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준혁의 시선은 메시지보다 좌표와 함께 첨부된 에너지 파형 그래프에 고정되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고대 회로 기판에서 감지되던 이질적인 파동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니, 훨씬 더 강하고 순수한 형태였다. 마치 지금껏 자신이 만져왔던 파편들이 이 거대한 파동의 조각이었던 것처럼.

“말도 안 돼….”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첨부된 좌표는 알려진 ‘심연지대’의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대규모 탐사를 시도했던 시기 이후, 그 어떤 탐사선도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던 곳. 대규모 자기장 이상과 중력 변동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천만한 구역.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지구의 상처’라고 불렀다.

준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은 이미 탐험가의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의 본능은 이미 무언가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아니, 단순한 유적의 흔적도 아니다. 이건… 부름이었다.

“젠장,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잖아.”

그는 망설임 없이 벽에 걸린 낡은 방진복을 낚아챘다. 흙먼지가 풀풀 날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업대 아래 서랍에서 최신형 지표투과레이더와 휴대용 에너지 스캐너, 그리고 비상용 구급낭을 꺼냈다. 옆 선반에선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개인 탐사용 그래플링 훅과 고출력 손전등을 챙겼다. 하나하나 그의 손때가 묻어 있고, 수없이 많은 위험 속에서 그를 지켜주었던 장비들이었다.

작업실 한편에 세워둔 그의 탐사선, ‘페가수스’에 올랐다. 이 낡은 호버 바이크는 그가 직접 개조하고 수리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탐사선이었다. 외부 장갑은 대기권 재진입에도 견딜 수 있는 특수 합금으로 보강되었고, 내부 엔진은 고대 유물에서 추출한 에너지 코어를 이식해 막강한 출력을 자랑했다. 낡고 투박했지만, 어떤 험지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엔진 시동 버튼을 누르자 ‘크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페가수스가 낮게 떴다. 작업실 천장의 셔터가 열리고,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대 기판을 챙겨 탐사선 좌석 옆 특수 보관함에 넣었다. 어쩌면 이게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자, 심연지대라… 오랜만이군.”

페가수스는 굉음을 내며 밤하늘로 치솟았다. 도시의 불빛이 점차 멀어지고, 곧 드넓은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상공으로 오르자 대기 흐름이 거칠어졌다. 지표면에는 한때 거대했던 도시의 잔해가 검은 그림자처럼 흩어져 있었다. 인류가 자신들의 오만함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다시 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른 시대의 증거들이었다.

몇 시간 후, 페가수스는 목표 지점인 심연지대의 경계에 도달했다. 이 지대 전체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자기장과 중력 왜곡 현상 때문에 탐사선의 계기판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위는 마치 태초의 혼돈처럼 대기가 비정상적으로 일렁였고, 희미하게 번개 같은 섬광이 찢어지는 구름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마치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한 광경이었다.

“이런 젠장, 이번엔 더 심해졌군.”

준혁은 조종간을 단단히 잡았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페가수스를 조종했다. 지상에서 솟아오르는 알 수 없는 에너지 파동이 기체를 뒤흔들었고, 간헐적으로 중력이 불안정하게 변동하며 기체를 아래로 잡아끌었다. 그는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좌표를 향해 나아갔다.

마침내 좌표가 가리키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곳은 주변의 다른 지형과 다를 바 없는 황량한 바위투성이 고원이었다. 어떤 특별한 지형지물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준혁은 페가수스를 착륙시키고 탐사선에서 내렸다. 대기 중에는 알 수 없는 금속성 비린내가 섞인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는 휴대용 지표투과레이더를 작동시켰다. 레이더가 땅속 깊은 곳을 스캔하며 미세한 진동음을 내뱉었다. 스캐너 화면에 무질서한 지층도가 떠오르더니, 이내 거대한 무언가의 형체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표면 아래 수백 미터 깊이에, 육중하고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잠들어 있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크기였다. 그리고 그 구조물에서, 단말기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강력하고 순수한 에너지 파형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찾았다….”

준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피로와 긴장감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전율 섞인 흥분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는 레이더 화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구조물의 표면에는 겹겹이 쌓인 암석층을 뚫고 올라온 듯한 미세한 틈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문이 닫히면서 생긴 작은 균열 같았다.

그는 특수 합금으로 된 다기능 공구를 꺼내 균열에 밀어 넣었다. 공구 끝에서 강렬한 에너지 파동이 뿜어져 나오자, 주변의 암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희미한 굉음이 대지를 울렸다.

“흐읍!”

준혁은 온몸에 힘을 주었다. ‘끼이이익- 쿠구궁…!’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그가 서 있던 지반이 거대한 퍼즐 조각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천천히, 그러나 멈출 줄 모르고 옆으로 밀려났다. 그 아래, 새까만 심연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하게 매끄럽고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뒤덮인 거대한 통로였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아까 맡았던 금속성 비린내와 알 수 없는 습한 공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웅웅거리는 진동.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소리였다.

준혁은 심연의 입구 앞에 섰다. 그의 헤드램프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빛은 그 어둠에 완전히 삼켜져 버렸다. 미지의 존재가 그를 안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눈은 활활 타올랐다.

“그래… 이거야.”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거대한 어둠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뒤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어떤 비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든, 그는 기꺼이 그 심연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설의 심층핵, 그 잊혀진 비밀이 이제 막 그에게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