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잿빛 대지 위로 붉은 해가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평선은 온통 망가진 도시의 잔해로 뒤덮여 있었고, 뼈대만 남은 고층 건물들이 유령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대기는 텁텁하고 거칠었다. 한때는 생명의 숨결로 가득했을 바람은 이제 썩은 철과 먼지, 그리고 알 수 없는 이형(異形)의 냄새만을 실어 날랐다.

강후는 망가진 건물 잔해를 딛고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등에는 낡았지만 잘 관리된 검이 단단히 묶여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빛은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경계하는 야수의 그것과 같았다. 벌써 삼일째였다. 식량은 거의 바닥났고, 물도 아껴 마셔도 한 병이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 폐허의 심장부에 잠들어 있을지 모를, 한 줄기 희망을 찾아야 했다.

“젠장….”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지난밤, 썩은 살을 탐하는 ‘식탐귀(食貪鬼)’ 무리와 맞닥뜨린 이후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왼쪽 어깨에는 깊은 발톱 자국이 선명했고, 내공으로 간신히 지혈했지만 통증은 끊임없이 신경을 갉아먹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발밑의 자갈과 파편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깨뜨렸다. 강후는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미세한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무언가의 흐느낌.

*사람인가?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인가.*

그의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번뜩였다.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성보다 이성이, 믿음보다 의심이 먼저였다. 그는 몸을 낮춰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흙먼지로 뒤덮인 건물 외벽을 따라 기어오르자, 아래쪽 폐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병원 건물의 잔해 같았다. 그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두 명의 인영이 보였다. 한 명은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 옆에 서서 주변을 경계하는 듯했다. 그들의 행색은 남루했지만, 몸놀림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인(武人)이었다.

강후는 검집에 손을 얹었다. 그들의 복장은 이 폐허에서 보기 드문 형태였다. 어딘가 익숙한 문파의 도포 같기도 했다. 그의 눈은 경계하던 인영의 손에 들린 것에 고정되었다. 낡은 철퇴였다. 하지만 그 철퇴 끝에는 금속 특유의 빛이 아니라, 이상하고 끈적한 검은 액체가 들러붙어 있었다.

순간, 웅크리고 있던 인영이 몸을 들썩였다. 그녀의 목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싫어! 제발…!”

그와 동시에, 철퇴를 든 인영이 빠르게 반응했다. 그의 철퇴가 허공을 가르고, 웅크린 인영의 뒷덜미를 그대로 후려쳤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인영은 축 늘어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강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잔인한 광경에 익숙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죽은 자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료를… 살해한 것인가?

철퇴를 든 인영이 쓰러진 동료의 몸을 뒤적였다. 낡은 천 조각, 빈 물통…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흙이 묻은 작은 덩어리였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굶주린 짐승처럼 입에 넣고 우적거렸다.

*설마… 저것 때문에?*

그것은 이 폐허에서 간혹 발견되는, 이름 없는 뿌리 채소였다. 독성은 없지만 영양가가 거의 없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용도의 식물. 강후는 그들의 절박함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때였다. 웅크려 죽임을 당했던 인영의 몸이 갑자기 발작하듯 꿈틀거렸다. 철퇴를 든 인영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쓰러진 몸은 기괴하게 뒤틀리며, 마치 거미처럼 사지가 꺾여졌다. 피부는 잿빛으로 변하고,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아닌,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어어어…!”

변이였다. 이 폐허에 만연한, 인간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끔찍한 병. 강후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변이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

철퇴를 든 인영은 경악과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었다. 이제 막 변이가 시작된, 굶주린 야수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철퇴를 휘둘렀지만, 변이체는 놀라운 속도로 달려들어 그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악! 이 미친…!”

살점이 뜯겨 나가는 고통스러운 비명. 강후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저 변이체가 완전히 각성하면, 이 일대가 위험해질 터였다. 게다가 저 변이 속도는… 예전과 달랐다.

그의 손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냈다. ‘패왕검(覇王劍)’. 녹슬지 않은 강철이 잿빛 폐허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했다. 강후는 소리 없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움직임은 바람 같았고, 그림자처럼 유연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그의 몸이 폐허 병원 건물 안으로 떨어졌다. 철퇴를 든 인영은 다리를 물어뜯긴 채 바닥을 기고 있었고, 변이체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그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강후의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쉬이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패왕검의 칼날이 변이체의 목덜미를 정확히 노렸다. 그러나 변이체는 놀랍도록 빠르게 반응했다. 기괴하게 꺾인 팔로 칼날을 막아낸 것이다. *챙!* 금속음이 폐허를 울렸다.

“크어어어!”

변이체는 오히려 강후에게 달려들었다. 강후는 한 수 접어주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거친 내공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기세였다.

“미쳐 날뛰는구나! ‘무영쾌검(無影快劍)’!”

패왕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공간을 갈랐다. 마치 허공에 검 흔적만 남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변이체의 사지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리며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무영쾌검의 아홉 번째 초식인 ‘귀신도망(鬼神逃亡)’은 이미 그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쉬이이익, 쩌억!*

검날이 변이체의 척추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변이체의 몸은 멈칫했다. 검을 뽑아내자, 시커먼 피가 뿜어져 나왔다. 변이체는 몇 번 더 몸을 뒤틀었지만,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강후는 숨을 고르며 칼끝을 떨었다. 검은 피가 흐르는 칼날을 닦아내자, 철퇴를 든 인영이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은 피와 먼지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누, 누구냐…?”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강후는 대답 대신 그의 발밑에 뜯겨 나간 살점을 보았다. 상처는 이미 검붉게 변색되고 있었다. 변이체가 그를 물어뜯을 때, 이미 독기가 스며든 것이다.

철퇴를 든 인영은 자신의 다리 상처를 내려다봤다. 그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안 돼… 안 돼! 나는… 나는 변이될 수 없어…!”

그는 철퇴를 들어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강후는 그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어쩌면 그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존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휘익!*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철퇴를 든 인영의 손을 후려쳤다. 얇고 날카로운 금속 조각이었다. 그의 손에서 철퇴가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여러 명의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 아직 쓸모가 남아있을 텐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자는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감각했다. 그 주변을 에워싼 자들도 모두 비슷한 복장이었다. 강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들의 움직임은 조직적이었고, 그들의 내공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너희는 누구냐.” 강후가 나직이 물었다.

검은 두건의 사내는 강후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흥. 누구냐고? 이 폐허를 새롭게 질서 잡는 자들이다. 그 시시껄렁한 무림의 잔재들을 쓸어버리고, 진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을 만들 자들.”

그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철퇴 인영에게 향했다.

“그리고 너. 쓸모없는 짓 하지 마라. 너의 변이는 아직 초기 단계. ‘각성’의 재료로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지.”

강후의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각성? 재료?* 그는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휩싸였다. 이들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음모의 일부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강후는 검을 단단히 잡았다.

검은 두건의 사내는 강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강후의 패왕검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그의 눈을 꿰뚫었다.

“이봐, 무인. 너도 나쁘지 않은 실력 같군. 흥미로워. 하지만 우리의 길을 막는다면… 그 잘난 검도 한낱 고철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말과 함께, 주위에 서 있던 인영들이 일제히 강후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의 검 끝에서 희미한 푸른 빛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이 폐허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군.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검은 두건의 사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강후는 그들을 둘러봤다. 최소 일곱 명. 모두 범상치 않은 실력자들이었다. 게다가 방금 그가 본 ‘각성’이니 ‘재료’니 하는 섬뜩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들은 단순히 약탈을 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진정한 공포는, 어쩌면 짐승이나 변이체가 아니라… 이런 인간의 광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강후를 덮쳐왔다.

“어디, 시험해봐라.”

강후의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오랜 생존 끝에 얻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미소였다. 그의 패왕검이 낮게 울부짖었다. 이 폐허에서, 또다시 피바람이 불어 닥칠 참이었다. 그리고 이번 싸움의 결과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이 세계의 새로운 진실을 파헤치는 단초가 될지도 몰랐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