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균열의 시작

퇴근길의 지하철은 오늘도 지옥이었다. 시큼한 땀 냄새와 비릿한 알코올 향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서연은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어깨에 멘 무거운 서류 가방과 구두 굽이 닳도록 뛰어다닌 다리가 그녀의 피로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찌푸린 얼굴로 역사를 빠져나와 익숙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23층. 그녀의 보금자리는 하늘과 맞닿은 도심의 외딴 섬과도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미끄러지듯 상승하는 동안, 거울 속 자신의 초췌한 얼굴을 응시했다. 퀭한 눈, 짙어진 다크서클. 이 도시의 수많은 고층 건물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건 오직 한 조각의 휴식뿐이었다. 띵-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차분한 베이지색 복도가 그녀를 맞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익숙하고도 안락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하아, 살았다.”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거실로 향했다.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서울의 야경은 언제 봐도 압도적이었다. 수많은 불빛이 마치 거대한 별똥별 무리처럼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매일 저녁 이 풍경을 보며 피로를 잊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분명 보일러를 끄고 나왔는데도 집안이 유독 차가운 느낌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착각하는 거겠지.”

서연은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여야겠다 생각했다. 컵을 꺼내기 위해 상부장 문을 열려는 순간, 낡은 나무가 마찰하는 듯한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짧고 희미했지만, 분명한 소리였다.

“…뭐지?”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바람 한 점 들어올 틈 없는 밀폐된 아파트에서 그런 소리가 날 리 없었다. 거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관문도 잠겨 있었다. 고층이라 외풍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다시 한번 상부장 손잡이를 잡았다. 이번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 낡아서 그런가.”

지은 지 10년이 넘은 아파트라 가구들이 조금씩 삐걱거릴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따뜻한 허브차를 우려 거실 테이블에 놓았다. 노트북을 켜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었다.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며 차를 홀짝이는 동안, 다시 한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옅은 속삭임이었다. ‘쉬이이…’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 아주 멀리서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 같기도 한 소리. 드라마 속 인물들의 대사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그 소리에 서연은 움찔하며 리모컨을 잡았다. 드라마를 잠시 멈추자, 집안은 다시 완벽한 정적에 휩싸였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곤하면 가끔 이명처럼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다시 드라마를 틀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했다. 창밖 야경이 평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드라마 한 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거실 한쪽 구석에 놓인 스탠드 조명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마치 심장이 두근거리듯 불규칙하게 명멸했다.

“어라? 고장 났나?”

서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탠드에 다가가 전원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아봤다. 잠시 안정되나 싶더니, 이내 다시 깜빡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엔 더 빠르고 강렬했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장난치듯 켰다 껐다 하는 것처럼.

“이상하네. 멀쩡했는데.”

그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허브차 컵이 저절로 반 바퀴 돌았다. ‘탁’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서연은 얼어붙은 듯 컵을 응시했다. 분명히 똑바로 놓아두었는데, 손잡이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뭐, 뭐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한 오작동이나 착각이 아니었다. 명백히 무언가가 움직인 것이다. 서연은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 그녀 혼자였다. 아니, 정말 혼자일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창에 ‘아파트 폴터가이스트’라고 검색했다. 수많은 사례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물건이 움직이고, 조명이 깜빡이고, 소리가 들린다는 내용들이었다. 하나같이 그녀가 겪고 있는 현상들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했다.

“말도 안 돼… 귀신? 그런 게 어디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피곤해서 헛것이 보인 걸 수도 있고, 아파트가 낡아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었다. 컵은 자신이 무심코 돌려놓고 잊었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 스탠드는 여전히 규칙 없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닫혀있던 주방 상부장 문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아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치 누가 손잡이를 잡고 잡아당기듯이. 그리고 이내 쾅, 하고 다시 닫혔다. 그 충격으로 상부장 위에 놓여있던 작은 유리병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서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입을 떡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방금 전 닫혀있던 문, 그리고 이유 없이 떨어진 유리병. 이건 절대로 착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니 무언가가 그녀의 집 안에 있었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공포가 질식할 듯 그녀를 짓눌렀다.

“누, 누구… 누구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텅 빈 침묵뿐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서연은 선명하게 느꼈다. 어두운 공간 속 어딘가에서,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현관문 잠금장치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잠그고 들어왔던 현관문이, 안에서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문을 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서연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시선과, 정면에서 들려오는 문 열리는 소리.

이곳은 더 이상 그녀의 안전한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이곳은, 미지의 존재가 점령한 지옥의 입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