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황량한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두터운 먼지와 재로 뒤덮여 있었고, 태양은 희미한 원반으로 겨우 그 존재를 알릴 뿐이었다. 멸망 이후, 세계는 한낮에도 어둠이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다니는 곳이 되었다.

카인은 무너진 고층 빌딩의 잔해 사이를 걷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지치고 무거웠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며칠째 입에 넣은 것이라고는 빗물 고인 웅덩이에서 길어 올린 흙탕물과 썩은 통조림 한 조각이 전부였다. 낡아빠진 군복 차림의 그는 허리춤에 매달린 녹슨 마체테를 꽉 쥐었다. 유일한 동반자이자 가장 확실한 생존 도구였다.

“젠장… 아무것도 없어.”

메마른 입술 사이로 절망 섞인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한때 문명의 상징이었을 건물들은 이제 거대한 묘비처럼 서 있었다. 유리창은 깨지고, 콘크리트는 뒤틀렸으며, 철근은 앙상한 뼈대처럼 하늘을 찔렀다. 바람은 찢어진 현수막을 펄럭이게 했고, 그 소리는 마치 폐허가 내쉬는 한숨처럼 들렸다.

그의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부서진 벽돌 조각, 녹슨 철골, 그리고 가끔씩 눈에 띄는 기괴한 식물의 촉수들. 그 모든 것이 잠재적인 위협이거나, 혹은 아주 희박한 희망의 조각일 수 있었다. 폐허가 된 상점가의 덧문은 거칠게 비틀려 있었고, 그 안은 이미 오래전에 약탈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갑자기, 그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긁는 소리. 금속이 콘크리트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 카인의 몸이 본능적으로 굳었다. 낡은 군복 안쪽에서 심장이 쿵, 쿵, 격렬하게 울렸다. 그는 숨을 죽이고 가장 가까운 잔해 뒤로 몸을 숨겼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 폐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조직적이고, 끈질긴 느낌. 카인은 마체테를 뽑아 들었다. 차갑고 묵직한 손잡이가 그의 손에 땀을 배어 나오게 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낡은 상점의 문틈 사이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처음에는 형체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움직이는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림자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자 카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살점 사냥꾼’이었다.

반쯤 부패한 인간의 시체를 기반으로, 알 수 없는 힘이 불완전하게 뒤섞여 만들어진 끔찍한 존재. 검게 썩어 들어간 피부는 여기저기 찢겨 너덜거렸고, 앙상한 뼈대가 기형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특히 섬뜩한 것은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빛나는 그 손톱으로 콘크리트를 긁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눈은 없었다. 다만 텅 빈 안구 구멍에서 희미한 붉은 빛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순수한 증오와 굶주림으로 이루어진 기운 자체였다.

살점 사냥꾼은 마치 먹잇감을 찾는 짐승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후각으로 사냥하는 놈들. 카인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마치 주변의 폐허마저 흔들리게 할 것만 같았다.

녀석은 카인이 숨어 있는 잔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썩은 살 냄새와 흙먼지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악취가 그의 코끝을 찔렀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녀석들은 시각이 없어도, 미세한 진동이나 온기, 혹은 생명의 기운을 귀신같이 감지해냈다.

가까이, 더 가까이… 살점 사냥꾼의 앙상한 팔이 카인이 숨어 있는 잔해에 닿았다. 끔찍하게 긴 손톱이 거친 소리를 내며 콘크리트를 긁었다. 카인은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여기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도망치면 분명 추격해올 터. 정면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녀석의 몸이 완전히 잔해 옆에 섰을 때, 카인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크아아!”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짧은 포효와 함께 마체테를 휘둘렀다. 녹슨 칼날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날카로운 칼날은 썩은 살점을 단번에 갈랐다. 쭈욱!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살점 사냥꾼의 어깨가 깊게 베였다. 검붉은 피가 솟구치며 폐허의 벽을 더럽혔다.

살점 사냥꾼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휘청거렸다. 텅 빈 안구 구멍에서 붉은 빛이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카인에게 달려들었다. 부패한 팔이 뭉툭한 몽둥이처럼 휘둘러졌다.

카인은 간발의 차이로 팔을 피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주먹이 잔해를 강타했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카인은 몸을 낮춰 녀석의 다리를 향해 마체테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깊숙이 박히지 못하고 뼈에 부딪혀 팅! 하는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녀석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했다.

기회였다. 카인은 그대로 녀석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썩은 살점의 역겨운 감촉이 그의 손에 그대로 전해졌다. 녀석은 몸을 흔들며 카인을 떨어뜨리려 했다. 카인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한 손으로는 녀석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체테를 녀석의 척추 부근에 박아 넣으려 했다.

“이 더러운 괴물아!”

카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은 본능적인 야수가 된다. 마체테가 녀석의 등짝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감각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살점 사냥꾼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격렬한 몸짓에 카인의 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녀석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카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마체테를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녀석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축 늘어진 몸에서 붉은 빛이 희미해지며 꺼져갔다.

카인은 녀석의 몸에서 마체테를 뽑아냈다. 쭈욱!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는 피범벅이 된 마체테를 폐허의 벽에 대충 닦아내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팔에서 흐르는 피는 끈적하게 그의 소매를 적셨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이런 세계에서는 작은 상처도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젠장… 피가 또….”

그는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했다. 방금 전까지 그를 지배했던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가자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마체테를 옆에 내려놓고, 그는 등 뒤에 짊어진 낡은 가방을 열었다. 붕대라고는 하지만 너덜너덜해진 천 조각을 꺼내 팔을 대충 감쌌다. 소독약 같은 것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난 지 오래였다. 그저 피가 더 이상 흐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피 냄새는 또 다른 위험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하지만 잠시, 그는 쓰러진 살점 사냥꾼의 시체를 응시했다. 놈에게서 얻을 만한 것이 있을까? 간혹 놈들의 몸에서 이상한 결정이나, 버려진 소지품이 나올 때도 있었다. 희박한 가능성이었지만,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카인은 마체테 끝으로 녀석의 몸을 뒤적였다. 썩은 살점들이 으스러지며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희망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일어섰다. 상처 입은 팔이 욱신거렸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고, 희미한 먼지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저 멀리, 폐허 너머로 또 다른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생존의 연속.

“가야지….”

그는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주문.

카인은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차갑게 빛나는 마체테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체테가 가리키는 곳은,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이었다. 다음 순간, 무엇이 그를 기다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멈추는 순간 죽음이라는 것을. 살아남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했다. 피와 땀과 절망으로 얼룩진 폐허 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