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장: 잿빛 낙원의 숨통

회색빛 먼지가 후드득, 무너진 천장에서 떨어졌다. 낡은 방독면 안으로 스며드는 흙먼지의 텁텁한 맛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존재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 김민준은 손에 든 부식된 철근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파고드는 차가운 감각만큼은 여전히 생생했다.

“젠장, 또 꽝인가.”

나지막이 중얼거린 목소리는 방독면 필터를 거쳐 먹먹하게 울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한때 ‘번화가’라고 불렸던 도시의 잔해였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긁어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붉고 기괴한 식물들이 콘크리트 틈새를 장악하고 있었다. 생명력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저것들은 이 세계의 남은 숨통마저 조여오는 독초에 불과했다.

오늘도 수확은 신통치 않았다. 부패한 통조림 캔 하나와 녹슨 공구 몇 개. 그리고… 딱히 용도를 알 수 없는 반짝이는 플라스틱 조각들. 식량을 찾아 헤맨 지 일주일째, 물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거나, 아니면 저 황량한 폐허 속에서 길을 잃고 끝장날 터였다.

민준은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그의 등 뒤에는 빛바랜 배낭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배낭 속에는 닳고 닳은 휴대용 태양광 충전기, 몇 개의 빈 물통,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것’이 들어 있었다. 손목에 채워진 낡은 시계가 삑, 하는 소리를 내며 현재 시간을 알렸다. 황혼. 이곳에서는 해가 지면 모든 것이 더 잔혹해진다.

“오늘도 늦었군.”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아득한 기억의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맑고 푸른 하늘, 매연 대신 상쾌한 공기, 그리고 저 폐허가 아닌 사람들로 북적이던 도시의 모습.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 그 모든 것은 한순간의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5년 전, 그 날의 사고. 미지의 시공간 균열이 도시를 덮쳤을 때, 그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동시에 저주받았다. 2077년으로. 황폐한 미래로.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부정했다. 악몽이라고, 곧 깨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은 그를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변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잊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었으니까.

“망할… 어디라도 좋으니, 살아있는 흔적이라도.”

그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몸의 모든 관절이 삐걱거리는 듯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저 너머에 아직 탐사하지 않은 구역이 있었다. 한때 이 도시의 핵심이었던 ‘중앙 관리동’. 아마 다른 생존자들도 이미 훑었겠지만, 혹시 모른다.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그의 귀에 이질적인 소리가 잡혔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소음. 그리고 금속이 긁히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 민준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무너진 버스 잔해 뒤로 몸을 던지며 철근을 고쳐 쥐었다.

놈들이었다. ‘밤의 사냥꾼’. 이곳에 떨어져 수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이형의 생명체들. 한때는 작은 동물들이었을지 모르지만, 방사능과 오염에 뒤틀려 흉측한 괴물로 변이된 것들. 야행성인 이놈들은 해가 지면 먹이를 찾아 폐허를 배회했다. 인간의 살과 피를 탐하는 끔찍한 존재들.

“하필 지금….”

민준은 숨을 죽였다. 버스 잔해 틈새로 살며시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잿빛 황혼 속에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희미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형체.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퇴화된 눈 대신 발달한 예민한 청각과 후각. 놈들은 그의 숨소리마저 포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적어도 다섯 마리 이상. 녀석들은 폐허의 길을 수색하듯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들킬까 봐 두려웠다. 몸에 힘을 주어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철근을 든 손에 땀이 찼다. 이 철근 하나로는 저들을 상대할 수 없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이 버스 뒤는 막다른 길이었다. 중앙 관리동으로 향하는 길목이었으니, 이쪽으로 도망치면 놈들의 둥지로 뛰어드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줄기 섬광이 번쩍였다. 동시에 쇠붙이가 부딪치는 듯한 굉음이 폐허에 울려 퍼졌다. 놈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했다. 사냥꾼들이 섬광이 터진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경계심을 담아 변했다.

“젠장, 설마 다른 생존자?”

민준은 순간 망설였다. 동족을 외면하고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저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줄 것인가. 이곳에서는 다른 생존자만큼이나 위험한 존재도 없었다. 식량을 놓고 서로를 죽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저 굉음은 뭔가 달랐다. 평범한 총성 같지도, 폭발음 같지도 않았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처럼.

사냥꾼들이 굉음이 들린 쪽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민준에게는 기회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버스 잔해 뒤에서 뛰쳐나왔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중앙 관리동 방향으로 내달렸다. 허물어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악착같이 균형을 잡았다.

중앙 관리동은 거대한 원형 건물이었다. 외벽은 넝쿨과 독초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규모만큼은 여전했다. 과거의 영광을 웅변하는 듯했다. 민준은 건물 안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입구를 찾아 비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내부는 더욱 처참했다. 모든 것이 부식되고 삭아 있었다. 천장은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바닥은 먼지와 부스러기로 가득했다. 폐쇄된 공간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정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피부에 와닿았다.

“이곳은… 뭔가 달라.”

그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로비 중앙에 있던 거대한 홀로그램 투사 장치. 대부분의 기계가 기능을 상실한 폐허 속에서, 이 장치는 기묘하게도 멀쩡해 보였다. 넝쿨에 휘감겨 있었지만, 표면은 긁힌 자국 하나 없이 매끈했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채, 민준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장치 옆에는 오래된 데이터 패드가 꽂혀 있었다. 먼지를 털어내자, 화면이 희미하게 빛났다. 익숙한 언어로 된 글자들이 천천히 스크롤 됐다.

**[경고: 시공간 이동 장치 – 불안정. 현재 좌표 2077.03.15. 재조정 필요.]**

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공간 이동 장치? 이곳이 바로 그 모든 사건의 중심이었단 말인가?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5년 전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그 ‘섬광’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데이터 패드의 화면을 유심히 살폈다. 복잡한 도표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가득했지만, 맨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코드 입력: 생존자 데이터 기록 – 최종 업데이트: 2077.03.15, 18:37:00]**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익숙한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KIM MINJUN]**

민준은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충격으로 몸이 굳었다. 5년 전, 그가 이곳으로 떨어지던 그 순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이름을 어루만졌다.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때, 등 뒤에서 싸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민준의 직감은 경고음을 울렸다. 뒤를 돌아보려던 찰나, 강한 충격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시야가 순간 하얗게 번뜩이더니, 모든 것이 암전됐다. 그의 손에 든 철근이 바닥에 떨어지며 ‘쨍’ 하는 소리를 냈다.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마지막으로 본 데이터 패드의 화면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KIM MINJUN*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폐허의 심장부에서, 그는 마침내 자신이 찾던 것, 혹은 자신이 영원히 숨기고 싶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