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심연의 조각

“캡틴, 함선 전방 0.003광년 지점에서 미확인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이전 성도에는 없던 개체입니다.”

항해사 박선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주선 ‘아틀라스 호’의 함교를 가득 메운 고요함은 그 작은 떨림조차 증폭시키는 듯했다. 칠흑 같은 심우주, 은하의 변방을 탐사 중인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미확인? 탐사선이라도 놓친 건가?” 함장 한도윤이 팔짱을 낀 채 심장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노련했지만, 눈빛 속에는 옅은 호기심과 경계심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30년간 우주를 누빈 베테랑인 그에게도 이 상황은 낯설었다.

“아닙니다, 캡틴. 탐사선 신호는 일절 감지되지 않습니다. 크기는… 직경 10미터 정도의 완전한 구형입니다. 금속도, 유기체도 아닌, 알 수 없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너지 반응은 약하지만, 이상하게 안정적입니다.” 과학 담당 유진 박사가 옆에서 홀로그램 패널을 조작하며 보고했다. 그녀의 눈은 미지의 물체에 대한 학구적인 열망으로 반짝였다.

“완전한 구형이라니. 자연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지?” 보안팀장 강민준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시선은 항상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까지 알려진 모든 우주 생성 이론으로는 설명 불가능합니다. 자연계에서 저토록 완벽한 구형이, 그것도 이 심우주 한복판에 덩그러니 존재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함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침묵은 미지의 존재가 드리운 그림자처럼 아틀라스 호를 감쌌다.

“접근 지시. 최대 관측 거리까지.” 한도윤 함장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선우, 충돌 위험성 제로로 유지해.”

“예, 캡틴!” 박선우가 능숙하게 조작간을 움직이자, 아틀라스 호는 거대한 몸체를 서서히 움직여 나갔다.

**

몇 시간 후, 아틀라스 호는 미지의 구형 물체로부터 불과 5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멈춰 섰다. 메인 뷰스크린에는 거대한 흑요석처럼 완벽한 검은 구체가 떠 있었다. 빛을 반사하지도, 흡수하지도 않는 듯했다. 마치 우주의 빈 공간을 베어내어 만들어진 조각 같았다.

“제길… 저건 대체 뭐지?” 강민준 팀장이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의 경계심은 경외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유진은 구체에 눈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정밀 스캔 결과, 내부는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혹은… 우리의 스캔 장비로는 탐지할 수 없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거나요. 표면 온도는 절대 영도에 가깝지만, 미세한 진동이 감지됩니다. 특정 주파수로 일정한 간격으로… 마치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숨을 쉰다고?” 한도윤 함장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 구체 주변의 시공간이 미세하게 뒤틀려 있다는 겁니다. 마치 중력 렌즈처럼요. 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유진의 목소리는 점점 더 들떠 있었다.

“함장님, 아무래도 저건 인공물인 것 같습니다.” 박선우가 덧붙였다. “아틀라스 호의 인공지능이 과거에 발견된 모든 인공 구조물 데이터와 대조해봤지만, 일치하는 건 없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문명의 흔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도윤은 한참 동안 구체를 노려보았다. 인류가 이 심우주까지 와서 마주한 최초의 ‘문명’일지도 모르는 존재. 그는 문득 고향 행성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까마득한 우주 너머, 우리와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거 작전을 개시한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단호했다. “강 팀장, 자네 보안팀은 구체 수거와 동시에 외부 경계를 강화해. 유진 박사, 수거 후 격납고에서 즉시 연구에 들어가. 모든 승무원은 비상 경계 태세 유지.”

“캡틴, 위험합니다! 정체 불명의 물체인데 이렇게 쉽게…!” 강민준이 반대했지만, 한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탐사대다, 강 팀장. 미지를 탐사하고,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우리의 임무지.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게다가… 저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다.”

**

거대한 견인 빔이 구체를 감쌌다. 아틀라스 호의 격납고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구체는 놀랍도록 가볍게, 흡수되는 듯이 격납고 중앙으로 이동했다.

격납고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한 구체는 여전히 빛 한 점 반사하지 않는 완벽한 어둠 덩어리였다. 유진 박사는 탐사용 로봇팔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구체 표면에 접근했다. 특수 센서가 구체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데이터를 함교로 전송했다.

“재미있군요. 표면은 나노 단위로 평활합니다. 충격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아요. 스캔 빔이 튕겨 나옵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스캔하는 것 같아요.” 유진이 중얼거렸다.

그때, 함교의 모든 모니터가 일제히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캡틴! 함선 전체 시스템에 알 수 없는 노이즈가 유입되고 있습니다!” 박선우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통신망이 불안정하고… 엔진 출력도 미세하게 출렁입니다!”

“뭐라고? 원인은?” 한도윤 함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마치… 구체에서 뭔가가 방출되는 것 같습니다!”

격납고의 유진 박사도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구체의 검은 표면 위로 서서히 피어나는 희미한 빛이었다.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보라색 기운이, 마치 심장 박동처럼 깜빡거리며 점점 선명해졌다.

“함장님! 구체에서… 빛이!” 유진의 목소리에 공포가 섞였다.

구체의 검은 표면에, 문득 고대 상형문자 같은 미지의 문양들이 은은한 보라색 빛을 내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문양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구체 전체를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구체에서 강력한 파동이 격납고 전체로 퍼져 나갔다.

콰아앙!

아틀라스 호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메인 뷰스크린의 화면이 일그러지고, 함교의 불빛이 깜빡였다.

“워프 드라이브 이상 발생! 동력 출력 50% 급감!”
“생명 유지 장치… 일시 정지!”
“승무원 몇몇이 의식을 잃었습니다!”

혼란 속에서, 한도윤 함장은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의 시선은 메인 뷰스크린을 향했다. 아틀라스 호 밖의 심우주가, 마치 구체의 빛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미지의 문양들이 아른거리는 검은 구체가 마치 거대한 눈처럼 빛나고 있었다.

“함장님! 구체에서… 뭔가가…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유진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통신을 뚫고 들려왔다.

메인 뷰스크린 속 격납고 화면. 보랏빛 문양들이 요동치는 구체의 한가운데에서, 마치 액체가 뿜어져 나오듯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안개는 빠르게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과는 전혀 다른, 섬뜩하고 기이한 존재였다. 마치 그림자 자체가 물질화된 듯한…

“모든 승무원, 전투 태세! 무장하라!” 한도윤 함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스며들어 있었다.

아틀라스 호는 이제 더 이상 고요한 심우주의 탐사선이 아니었다. 미지의 심연에서 온, 불청객을 맞이한 침몰 직전의 전함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