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현실에 스민 환상

삐이익— 삐이익—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시야를 뿌옇게 뒤덮는 뿌연 연기. 이지한은 눈앞의 거대한 강철 골렘에게서 간신히 시선을 떼고 왼팔을 들어 올렸다. 게임 속 그의 캐릭터, ‘블랙아이’의 흑철 방패가 거대한 충격과 함께 긁히며 불꽃을 튀겼다.

“젠장, 이걸 이렇게 버틴다고?”

지한은 저절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착용된 최신형 가상현실 헤드셋은 눈앞의 가상 세계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귓가를 찢을 듯 울리는 골렘의 포효, 금속이 긁히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 그리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화약 냄새까지. ‘미라지 월드: 아틀란티스의 부활’은 요즘 가장 핫한 VRMMO였다. 그리고 지한은 이 세계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다.

며칠 밤낮을 새워가며 겨우 도달한 심층 던전, ‘나락의 심연’. 이곳의 보스 몬스터, ‘강철의 파수꾼’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공략 불가능한 난이도에 그는 벌써 다섯 번째 도전장을 내밀고 있었다.

**[경고: ‘강철의 파수꾼’이 광폭화 상태에 진입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붉게 번쩍였다. 골렘의 덩치가 두 배는 더 커진 것 같았다. 번쩍이는 푸른색 눈이 지한을 집요하게 노려보았다.

“광폭화? 야, 잠깐만. 나 아직 물약 쿨타임인데…!”

그때였다. 귓가에 쩌렁거리던 골렘의 포효와 기계음 사이로, 이상한 소리가 끼어들었다.

‘……짤그랑.’

마치 컵에 얼음이 부딪히는 듯한, 가볍지만 묘하게 신경을 긁는 소리였다. 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버그인가? 아니, 이런 소리는 안 났는데.’

물론 게임 속에서도 이런 환경음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들렸다.
강철 골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묵직한 강철 팔뚝이 지한의 캐릭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지한은 필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막아냈지만, 이어진 충격에 가상현실 속 그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치명상! HP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젠장!”

다시 한번 귓가에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좀 더 명확했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쨍그랑.’

컵이 깨지는 소리? 아니, 컵이 깨진 게 아니라, 유리잔들이 서로 부딪히며 부딪히는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식기 건조대에 놓인 유리잔들을 건드린 것처럼.

지한은 손끝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다. 분명히 혼자 사는 아파트인데. 게다가 베란다 문도 잠갔고, 창문도 닫았다. 도둑은 아닐 것이다. 도둑이라면 이렇게 대놓고 시끄러운 소리를 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게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강철 골렘의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고, 지한의 캐릭터는 바닥에 처박혔다.

**[블랙아이 님, 사망하셨습니다!]**

새하얀 메시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젠장! 아깝게 보스를 놓치다니! 허탈감과 함께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지한은 분노 섞인 한숨을 내쉬며 헤드셋을 벗었다. 차가운 현실의 공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그는 아까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그의 작은 원룸 아파트. 방 한가운데 있는 그의 컴퓨터 책상 위에는 벗어놓은 헤드셋이 놓여 있었다.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거대한 모니터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분명히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덜컹.’

이번에는 확실하게, 싱크대 상부장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그것도 꽤나 세게.
지한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등골을 오싹한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간에 부엌에서 소리가 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맨발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았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부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시야는 익숙한 가구들의 윤곽을 더듬었다.

주방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 끝에 서서, 그는 숨을 죽였다.
아파트 안은 고요했다. 모든 소음이 멎은 듯했다.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더욱 섬뜩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시선은 부엌 찬장으로 향했다.

찬장 문은… 분명히 닫혀 있었다.

“뭐야, 환청이었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안도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자신을 바보로 만든 상황에 짜증이 났다. 게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별 이상한 소리가 다 들렸던 모양이다.
그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덜컹!’

이번에는 싱크대 하부장 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삐이익- 하는 경첩 소리가 어둠 속에서 마치 비명처럼 들렸다.

지한의 심장이 광폭한 골렘처럼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찬장 문이, 그의 눈앞에서 스스로 열리고 닫히고 있었다.

“흐읍… 으읍…!”

지한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식은땀이 그의 등에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단 한 번도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를 믿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과학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갑자기, 찬장 안쪽에서 유리컵 하나가 스르륵 밀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컵을 잡아 앞으로 내미는 것처럼. 컵은 찬장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지한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은 그 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톡.

컵은 찬장 모서리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쨍그랑!’

그 어떤 파열음보다도 크고, 선명하며, 오싹한 소리였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생생하게 울렸다.
지한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깨진 유리컵 조각들만이 아니었다.
그의 눈앞, 부엌 찬장 문이 천천히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안쪽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마치, 누군가의 시선처럼.

차가운 기운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더 이상 환청도, 상상도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 무언가가 있었다.

지한은 거의 울부짖을 뻔한 소리를 삼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도망쳤다. 방문을 닫고, 뒤돌아서서 잠금쇠를 걸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숨을 헐떡이며 벽에 등을 기댔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책상 위의 VR 헤드셋으로 향했다.
모니터는 아직 게임 오버 화면을 띄운 채였다. 강철 골렘은 여전히 거대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문득, 섬뜩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혹시, 이 모든 일이 게임과 연관된 건 아닐까?
그가 헤드셋을 착용하고 미라지 월드에 접속한 순간부터, 현실에도 미지의 존재가 스며들기 시작한 건 아닐까?

그때, 그의 방 안에서, 선반에 놓여 있던 작은 인형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인형의 플라스틱 눈은 마치 그를 응시하는 듯했다.
지한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문득, 그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속삭이듯,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

“……나와, 같이, 놀자…”

그는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이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