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붉은 눈의 약속

폐허가 된 지하철역, 녹슨 철골과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가 얽힌 미로 속에서, 지훈은 숨을 죽였다. 낡은 방독면 필터 너머로 스며드는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흙먼지가 코를 찔렀다. 류는 그의 등 뒤, 그림자처럼 바싹 붙어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씩 섬광처럼 빛나는 붉은 눈빛만이 어둠 속에서 그녀의 존재를 알려줄 뿐이었다.

“쉬잇….”

지훈은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댔다. 위쪽 플랫폼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묵직하고, 망설임 없는 움직임. 정화조(淨化組)였다. 생존자들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감염자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이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제거하는 광신도 집단. 그리고 류는 그들에게 있어 ‘최악의 이단’이었다.

투박한 군화 소리가 바로 위에서 멈췄다.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낮게 주고받는 목소리들.

“이쪽은 없어. 확실히 이 근처에서 흔적을 놓쳤는데….”
“밑으로 내려간 건가? 제기랄, 이 어둠 속에서 찾으라는 건가?”

지훈은 심장이 귓가에서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류의 손이 그의 팔을 스치며 올라왔다. 차갑지만, 기이하게도 섬세한 손가락이었다. 손톱은 길고 날카로웠지만, 한 번도 지훈을 해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류의 손에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위쪽에서 묵직한 물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낡은 나무판자였다. 이어서 희미한 빛이 균열 사이로 스며들었다. 정화조가 아래를 탐색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추는 것이 분명했다.

“젠장….”

지훈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 터널은 너무 좁고,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는 류의 손을 잡고 살짝 당겼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과거 비상 탈출구였던 곳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곳은 역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움직여야 해.” 지훈은 작게 속삭였다.
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붉은 눈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다. 마치 그 빛이 없으면 지훈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할 것처럼.

그들이 몸을 낮춰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거기 누구냐!”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빛이 터널 안을 훑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류를 자신의 뒤로 밀어 넣었다.

“이런, 들켰군!”
뒤따라 날아온 총성이 벽에 부딪혀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지훈은 간신히 몸을 굴려 탄환을 피했다. 먼지가 풀썩 솟아올랐다.

“이쪽이다! 감염자랑 동행하는 생존자다!”

지훈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폐차된 지하철 객차 잔해 뒤로 숨었다. 류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움직여, 빛이 미처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움직임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꼼짝 마라! 무기를 버려라!”

정화조 대원 두 명이 손전등을 비추며 터널 아래로 내려왔다. 한 명은 소총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쇠파이프를 든 채였다. 그들은 지훈이 숨은 곳을 향해 조준했다.

“네놈도 결국 감염자와 한통속이로군! 정화될 때가 된 게다!”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류를 ‘감염자’라고 부르지만, 지훈에게 류는 류일 뿐이었다. 그녀가 어떤 존재든,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허리에 찬 식칼을 뽑아 들었다. 고작 녹슨 식칼 하나로 소총에 맞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류가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섬광처럼 붉은 빛이 번뜩였다. 정화조 대원 중 한 명의 목에서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소총을 들고 있던 다른 대원이 비명 지를 틈도 없이, 류의 그림자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피 냄새가 순식간에 터널 안을 채웠다. 지훈은 익숙한 냄새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류는 뒤돌아섰다. 그녀의 입가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지만, 붉은 눈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살기가 아닌, 단지 ‘필요에 의한’ 행위를 한 뒤의 고요함을 담고 있었다.

“괜찮아…?” 지훈은 류에게 다가가 나직하게 물었다.
류는 아무 말 없이 지훈의 손을 잡아왔다. 그녀의 손은 아직도 차가웠고,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 속에서 지훈은 류가 스스로의 본능과 싸우고 있음을 감지했다. 인간의 피를 봤을 때 느껴지는,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그녀는 그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오직 지훈을 위해.

“고마워.” 지훈은 류의 손을 꽉 잡았다.
류는 지훈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붉은 눈이 잠시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깊은 이해와 고통으로 채워졌다. 마치 “나는 이런 괴물인데도…?” 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너는… 나에게 가장 완벽한 존재야.” 지훈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듯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그들은 시체를 뒤로 한 채 더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철제 비상문이 나타났다. 녹슬어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지훈이 온몸으로 밀쳤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틈이 벌어졌다.

안쪽은 비좁고 어두웠다. 먼지가 가득한 통로를 지나자,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과거 지하철 공사 당시 인부들이 쓰던 휴게실 같은 곳이었다. 이미 무너진 벽과 천장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지훈은 류와 함께 그 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문을 닫자, 바깥세상의 소음이 뚝 끊겼다. 오직 그들의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지훈은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이제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들이 진정으로 안전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류는 그의 곁에 앉았다. 그녀의 붉은 눈은 여전히 빛났지만, 이제는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지훈의 얼굴을 감싸왔다. 차가운 손끝이 그의 뺨을 스쳤다.

“류….” 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류는 아무 말 없이 지훈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교감의 통로 같았다. 그 속에는 슬픔,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훈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지훈은 문득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류의 손가락이 그의 입술을 살짝 스쳤다. 마치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은 지훈의 질문에 답하듯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때, 류는 아주 작고 희미하게, 마치 바람에 실려 오는 속삭임처럼 목소리를 냈다.

“지… 훈….”

그녀의 목소리였다. 수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녀의 목소리. 찢어질 듯 갈라지고, 낯설게 변형되어 있었지만,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지훈은 충격에 휩싸였다. 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감염된 후, 그녀의 언어 능력은 퇴화된 줄로만 알았다.

“류… 너….” 지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류는 다시 지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붉은 눈은 어둠 속에서도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그 눈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 무언가를 약속하는 듯.

그 순간, 지훈은 그녀의 눈빛 속에서 섬뜩한 광경을 보았다.
아득한 어둠 너머, 폐허가 된 도시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류와 같은 붉은 눈을 가진 존재들이 셀 수 없이 일어서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류처럼 온전한 형체가 아니었다. 고통과 절규로 일그러진, 완전히 변이된 괴물들이었다.

지훈은 숨을 들이켰다. 류의 눈에 비친 것은 미래의 환상인가, 아니면 그녀가 속한 종족의 비극적인 현실인가?

류는 지훈의 손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붉은 눈은, 그 모든 절망적인 광경 속에서도, 오직 지훈만을 향한 굳건한 약속을 담고 있었다.
그 약속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 날, 그들은 이 세계의 새로운 균열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