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내 이름 석 자가 세상의 모든 저주를 담은 낙인처럼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한 모금의 물을 넘길 기력조차 없었다. 며칠째 잠들지 못하는 눈꺼풀은 핏발이 선 채 경련을 일으켰고, 감기라도 할라치면 지수의 얼굴이, 그의 잔인한 웃음이, 그리고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그날의 비참한 진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어주던 이들마저 모두 등을 돌렸다. 내가 수년간 매달렸던 연구는 한순간에 ‘조작된 사기극’이 되었고, 나는 그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모든 증거는 내가 만들어냈다고 비난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 모든 증거는 지수가,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지수가, 치밀하고도 잔인하게 조작한 것이라는 걸.

창밖은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며칠 전부터 쭉 그랬다. 내 세상의 모든 색깔이 송두리째 빠져나간 것처럼. 천장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벽에는 습기가 배어들어 검은 얼룩을 만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방은, 과거의 찬란했던 내 모습과 현재의 처참한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비웃는 듯했다.

이지수.
그 이름을 되뇌면 가슴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꿈을 꾸었다. 고대 문자와 잊혀진 언어를 탐구하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고, 함께라면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나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독이 될 줄은 몰랐다.

내 연구는 혁명적이었다. 잊혀진 고대 문명의 상형문자를 해독할 실마리를 찾아냈고, 그것이 단순히 언어에 그치지 않고, 어떤 ‘힘’을 다루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지수와 그 비밀을 공유했다. 그에게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에서 빛나던 경외감과 흥분은 거짓이 아니었다고, 나는 아직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다. 연구 자료를 훔치고, 내 명의로 된 계좌에서 모든 연구비를 빼돌린 후, 내가 모든 것을 조작한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내가 진실을 밝히려 할 때마다, 그는 더 교묘하고 잔인한 거짓말로 나를 옥죄어 왔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세상의 지탄을 받으며 쫓겨나듯이 이 비루한 방에 처박혔다.

“지수… 널… 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목이 쉬어 갈라진 목소리가 방 안을 맴돌았다. 용서?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남은 건 오직 하나, 지수에 대한 깊고도 끈질긴 증오, 그리고 그 증오를 해소할 처절한 복수뿐이었다.

***

며칠을 그렇게 폐인처럼 지내다, 문득 방 한구석에 놓인 오래된 나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내게 유품처럼 건네주었던 작은 상자였다. 너무 오래되어 열쇠마저 삭아버린 상자.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망치로 상자를 부쉈다. 퀴퀴한 먼지가 풀썩 일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천 조각에 싸인 작은 목각 인형과, 고색창연한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 그리고 붉은색 보석이 박힌 은제 단도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나는 인형을 집어 들었다. 검은색 실로 눈이 꿰매져 있고, 입은 기괴하게 웃는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불쾌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쳤다. 내가 수년간 연구했던 고대 문자와 유사했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기이하며, 음산한 기운이 글자 하나하나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손끝이 저릿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

“이건… 내가 찾던 것과 달라. 하지만… 분명 연관성이 있어.”

분명했다. 내 연구는 고대 문자를 통해 잊혀진 ‘힘’을 다루는 법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두루마리는 그 ‘힘’의 훨씬 더 깊고 어두운 측면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양피지 속의 문자를 더듬어 읽어 내려갔다. 알 수 없는 단어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의미가 내 뇌리에 각인되는 듯했다.

_배신당한 자여,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들어줄지니._
_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한다면, 피와 맹세로 길을 열어라._
_허나 기억하라, 그대의 손에 피를 묻히는 순간, 그대의 그림자 또한 영원히 춤출 것이다._

문구 하나하나가 섬뜩했지만, 동시에 내 안의 복수심을 불태웠다. 피와 맹세. 나는 상자 속의 은제 단도를 집어 들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불빛에 번뜩였다. 단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내 손목에 단도를 대었다. 붉은 피 한 방울이 톡, 하고 양피지 위에 떨어졌다. 이내 글자들이 피를 흡수하듯 번지더니, 붉은색으로 희미하게 빛났다.

***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촛불이라도 켜져 있었더라면, 그 불꽃이 흔들리다 이내 꺼져버렸을 것 같은 그런 기척.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두려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내 손은 피로 젖었고, 내 마음은 증오로 타오르고 있었다.

양피지의 문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내 귀에,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들려오는 속삭임.

_그대가 부르는가?_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환청일까? 아니, 이건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한 ‘목소리’였다. 깊고, 차갑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존재의 음성.

“내가 부른다….”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내 모든 것을 앗아간 자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

_댓가는 언제나 따른다._
_그대의 영혼을… 그대의 그림자를… 그대의 모든 것을 담보로 할지니._
_후회는 없다._

후회? 나는 이미 지옥 한가운데에 있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내 영혼마저 팔아서라도, 그에게 내가 겪은 고통을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를… 지수를… 파멸시켜 줘.”

속삭임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방 안의 어둠이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마치 무언가가,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내 방 안에 가득 들어찬 듯한 느낌.

그 순간, 벽에 걸린 낡은 거울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일그러지고 비틀려,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마치 내 안에 깃든 어둠이 그 형상을 비웃는 듯했다.

지수, 이제 너의 악몽이 시작될 거야.
나는 피 묻은 손으로 붉게 빛나는 양피지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