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교의 수상한 지하**
“한소은! 다시!”
엘드린 교수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강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내 앞에서 허우적대던 환영 마법이 또다시 엉뚱한 형태로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행복한 기억’을 시각화하는 수업인데, 어째서 내 마법은 자꾸만 ‘거대한 딸기 케이크에 얼굴을 박고 넘어진 초등학교 학예회’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걸까. 그것도 무려 3D로, 심지어 케이크 향까지 생생하게 풍기는!
크고 작은 웃음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심지어 내 옆자리, 늘 냉철한 표정으로 교과서의 마법 공식과 씨름하던 강하준 선배마저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것이 보였다. 저 얼음 왕자님에게서 감정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에 아주 잠깐 뿌듯했지만, 이내 교수님의 싸늘한 시선에 그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소은 학생. 당신의 마력 제어는 언제쯤 나아질 예정입니까? 지난주에는 ‘사랑의 묘약 제조 실습’에서 물약 대신 폭탄을 만들어냈죠. 일주일 내내 실습실 벽을 복구하느라 고생했습니다.”
교수님의 한숨이 내 심장을 쿡쿡 찔렀다. 사실이다. 나는 마력 제어에 영 소질이 없었다. 아니, 소질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재앙에 가까웠다.
“이번에도 마력 폭주로 교내 기록이 경신될 뻔했습니다. 그 결과는… 서관 지하 아카이브 정비 및 청소, 일주일간입니다.”
아카이브 정비? 서관 지하? 그곳은 학생들이 출입 금지된 곳 아닌가? 학교의 가장 오래된 기록들이 잠들어 있고, 동시에 가장 으스스한 소문이 떠도는 곳! 심지어 ‘한밤중에 책장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괴담까지 있는 곳이었다.
나는 얼어붙은 채 겨우 대답했다. “네… 넷! 교수님!”
* * *
결국 나는 빗자루와 마법 먼지떨이를 들고 서관 지하로 향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인 공기가 나를 반겼다. 마법으로 밝힌 손전등이 길고 어두운 복도를 비췄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괜히 어깨를 움츠렸다.
“하아… 차라리 케이크에 얼굴을 박는 게 나았을지도.”
투덜거리며 책장 사이사이를 빗자루로 쓸었다. 마법 먼지떨이는 툭하면 오작동해서 내 얼굴에 먼지 폭탄을 퍼붓기 일쑤였다. 이런 식이라면 일주일은커녕 한 달도 모자랄 판이었다.
“으음, 여긴 또 뭐야?”
손전등 불빛이 닿은 곳은 낡고 거대한 책장 뒤편이었다. 분명 벽이어야 할 곳인데, 다른 곳과는 달리 묘하게 틈새가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원래 하지 말라는 일은 더 하고 싶은 법이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틈새를 만져보았다. 헐거워진 벽돌이 손가락에 닿았다.
‘설마… 비밀 통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린 시절 읽었던 모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벽돌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벽돌이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며, 예상대로 숨겨진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쪽은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뭐야, 진짜 있었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복도 안으로 발을 디뎠다. 어둠 속에서 마법 손전등을 휘두르자,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계단이 나타났다. 아래로, 아래로, 또 아래로. 얼마나 내려갔을까.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마치 지하 깊숙한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미한 꽃향기 같은 것이 어렴풋이 풍겨왔다. 그리고… *쿵, 쿵, 쿵…* 규칙적인 심장 박동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울렸다. 이건… 벽장 뒤의 괴담과는 차원이 다른 기분 나쁜 소리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콰당!**
“아야!”
나는 코앞에 나타난 무언가에 부딪히며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마법 손전등은 저만치 날아가 박살 났고, 시야는 다시 암흑으로 변했다. 젠장, 이건 대체 무슨 지뢰밭 같은 곳이야!
“누구야?!”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냉기 가득한 기운. 나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이 목소리, 설마…
갑자기 주변이 은은한 빛으로 채워졌다. 벽면에 박힌 듯한 발광석들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빛 아래, 내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 하준 선배?!”
강하준 선배였다. 그는 땀으로 살짝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평소의 냉철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게다가 웬 황금색 고무장갑에, 실험복인지 앞치마인지 모를 물건까지 두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실험복에는 고양이 무늬가 잔뜩 박혀 있었다. …고양이? 선배가?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선배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그의 시선은 불안하게 내 등 뒤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그의 등 뒤를 살폈다.
거기에는… 거대한 해파리처럼 생긴 무언가가 있었다. 투명하고 푸르스름한 몸체는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펄럭이는 다리들은 마치 거대한 커튼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묘한 것은, 그 해파리의 몸통 주변을 수많은 파스텔톤의 수정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수정들은 해파리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예요? 예쁜데… 좀 이상하게 생겼네요.”
나는 홀린 듯 해파리에게 손을 뻗었다. 마법으로 만든 건가? 살아있는 생물인가? 궁금증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만지지 마! 위험해!”
선배가 다급하게 내 팔을 잡아챘다. 그의 손이 내 팔목에 닿는 순간, 찌릿한 전기가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 충격에, 내 손끝이 해파리의 투명한 몸체에 스치고 말았다.
**쉬이이이잉-!**
해파리에게서 갑자기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주변의 파스텔톤 수정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마치 그들의 에너지를 해파리가 전부 흡수해버린 것처럼.
“젠장, 벌써 반응했잖아!”
강하준 선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해파리는 더욱 강렬하게 빛나며, 아까 들었던 *쿵, 쿵, 쿵* 소리보다 훨씬 더 빠르고 격렬한 박동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기가 끈적하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내 얼굴에 이상한 열기가 확 퍼졌다. 선배에게 팔목을 잡힌 부위가 뜨거웠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는 내 귀에만 들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간질거리고, 왠지 모르게 민망하고, 또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이상한 감정들이 뒤섞여 가슴을 가득 채웠다.
선배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그는 내 눈을 피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젠…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너… 네가 만져서 균형이 깨졌어! 이제 우린… 망했어!”
선배는 해파리와 나를 번갈아 보며 절규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당혹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제가 뭘 했다고… 망해요?! 저 이상한 게 대체 뭔데요!”
해파리는 내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몸을 부풀렸다. 공간을 가득 채운 이상한 감정들이 나를 짓눌렀다. 왠지 모르게 선배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초등학교 학예회 때 케이크에 얼굴을 박았던 기억을 고백해야 할 것 같고… 아니, 그보다 더 이상한, 뺨이 화끈거리는 충동이 솟아올랐다.
선배 역시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해파리는 이제 온몸으로 *쿠르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강하준 선배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외쳤다. 이제 이 지하 공간은, 거대한 해파리가 만들어낸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파동의 한가운데, 나와 강하준 선배는 너무나도 가까이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