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검은 제국의 균열

**첫 번째 균열: 잿빛 수확**

비는 끈질겼다. 하늘은 진회색 먹물로 뒤덮여 있었고, 빗줄기는 며칠 밤낮으로 멈출 줄 모르고 잿빛 강변 마을을 두들겼다. 흙길은 질척한 진창이 되었고, 허름한 오두막 지붕 위에는 썩은 나뭇잎들이 축축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물이 불어난 강물은 불길한 굉음을 내며 마을을 삼킬 듯이 흘러갔다.

제아는 축축한 오두막 안, 간신히 불씨를 살려 끓인 미음을 식솔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미음이라 해봤자, 빗물과 소금기 없는 풀뿌리 몇 가닥을 넣고 끓인 멀건 죽이었다. 식구들의 눈은 죽이 아니라, 그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그릇만 애타게 좇고 있었다.

“어머니, 더 드릴까요?”

어머니는 마른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 동생들 입에라도 더 넣어야지.”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얼굴에는 오랜 굶주림과 병색이 뚜렷했다. 제아는 말없이 자신의 몫을 여덟 살 된 여동생 미나에게 건넸다. 미나는 젖은 눈으로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말없이 그릇을 받아든 아이의 손은 뼈마디만 앙상했다.

창밖에서는 빗소리에 섞여 묘한 울림이 들려왔다. 단순한 천둥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음울하고 반복적인,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땅을 짓밟는 듯한 진동이었다. 제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저건….”

아버지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아버지는 한때 마을의 젊은이들 중 가장 기골이 장대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사내였지만, 이제는 그림자처럼 수척해져 있었다. 그의 등에는 낫과 곡괭이질로 생긴 깊은 상처가 흉터처럼 남아있었다. 몇 년 전, 제국의 지하수로 건설에 강제 징용되었다 돌아온 이후부터였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오두막 문이 활짝 열렸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문간에 서 있는 것은 두 명의 제국 병사였다. 흑염 제국의 제복은 언제나 그랬듯 검고 번쩍였으며, 병사들의 투구는 어둠 속에서도 기분 나쁜 광택을 냈다. 그들의 손에는 사람의 목숨을 쉬이 끊을 수 있는 강철 창이 들려 있었다.

“징세관님이 오셨다! 모두 밖으로 나와라!”

병사 중 한 명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온정도 없었다. 마치 짐승을 다루듯, 그저 명령할 뿐이었다.

제아는 일가족을 돌아보았다. 미나는 공포에 질려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어머니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 제아도 더 이상 미적거릴 수 없었다. 제국의 병사들에게 찍히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의미했다.

빗속으로 나선 마을 사람들은 이미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광장은 진흙탕이 되어 있었고, 횃불이 간신히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다. 횃불의 불빛은 축축한 대기 속에서 흔들리며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을 더욱 기괴하게 비췄다. 흙탕물에 무릎까지 잠긴 채 서 있는 사람들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거대한 덮개로 가려진 수레 한 대와, 그 주위에 늘어선 제국 병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비단 옷을 입은 징세관이 서 있었다. 징세관은 마른 몸집에 유난히 길고 앙상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지나치게 창백했고, 눈은 기분 나쁠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무엇보다, 그의 눈빛은 굶주린 짐승의 그것처럼 반짝였다. 징세관은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제아는 언제나 그들을 볼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 같았다.

징세관은 길고 앙상한 손을 들어 올렸다. 빗줄기가 그의 손가락을 미끄러져 흘러내렸다.

“어리석고 게으른 백성들이여! 너희는 오늘도 황제 폐하의 자비로운 통치 아래,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제국의 은혜를 잊고,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징세관의 목소리는 빗소리를 뚫고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의 말에는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

“지난번 수확물은 형편없었다! 감히 황제 폐하께 그런 하찮은 곡물을 바치다니! 너희의 불충함에 제국은 분노했다.”

마을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들의 땅은 이제 곡물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했다. 수년 전부터 강변의 물은 탁해지고, 흙은 검은 진액을 뿜어내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그 진액을 들이마시거나, 진액에 오염된 식물을 먹은 이들은 끔찍한 병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제국은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매년 더 많은 세금을 요구했다. 특히, 그들은 이 땅에서만 나는 ‘검은 진액’이라는 것을 탐했다.

“오늘부터 너희는 새로운 조세를 바쳐야 한다.”

징세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의 어두운 눈이 제아의 얼굴에 잠시 머무르는 듯했다. 제아는 그 시선에 몸이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제국에 바쳐야 할 것은… 황금도, 곡물도 아니다.”

징세관은 길고 앙상한 손가락으로 덮개로 덮인 수레를 가리켰다. 병사들이 덮개를 걷어내자, 수레 위에 실린 것은 거대한 철창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스무 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모두 젊거나,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숨죽이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안 돼! 내 아들이다!”

“내 딸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거냐!”

징세관은 그 모든 비명을 무시했다. “너희의 피와 살은, 제국에 바쳐져야 할 가장 고귀한 공물이다. 특히… 영혼의 깊이가 맑고, 오염되지 않은 것들.”

그의 말에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사납게 철창 문을 열었고, 안에 갇힌 사람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여 끔찍하게 울려 퍼졌다.

제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동생 미나가 공포에 질려 그의 다리 뒤로 숨었다. 그녀의 작은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제아의 아버지도 옆에서 굳은 얼굴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어머니는…!”

미나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제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병사 두 명이 허약한 어머니를 끌고 가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몸을 가눌 힘조차 없었다.

“안 돼! 우리 어머니는 이미 병들었어요! 쓸모없을 겁니다!”

제아는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강한 힘에 의해 붙잡혔다. 옆에 있던 병사가 그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이것들이 감히…!”

병사는 제아를 거칠게 밀쳤다. 제아는 진흙탕 속에 굴러떨어졌다. 그는 고통에 신음하며 젖은 흙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흙에서 역겨운 비린내가 풍겼다.

어머니는 이미 병사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뼈만 남은 그녀의 발은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녀의 눈은 간절하게 제아를 향했다.

“제아… 살아야 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빗속에 흩어졌다.

그때, 징세관이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입술이 느리게 움직였다. “오염되지 않은 영혼이 아니라면… 어둠을 품고 태어난 육체도 좋다. 제국의 실험은… 다양한 것을 필요로 하니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징세관의 길고 앙상한 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뒤편, 수레에 실려 있던 철창 안쪽에서 묘한 빛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내는, 마치 수억 개의 별들이 응축된 듯한 기이한 보석이었다.

그 보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징세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자, 그의 눈동자 속 깊은 곳에서 섬뜩한 어둠이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제아의 귀에는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어도 아니었고, 소리라고 하기에도 기묘했다. 마치 수억 개의 벌레들이 동시에 귓속을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었다. 머릿속이 지끈거리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저게… 뭐야?’

제아는 고개를 들었다. 징세관의 뒤편에 서 있던 병사들의 몸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제복 아래로 무언가 딱딱한 것이 솟아오르는 듯했고, 그들의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피부는 녹아내리는 촛농처럼 변형되고, 눈은 움푹 들어가면서 섬뜩한 푸른빛을 띠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괴물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절규는 공포로 바뀌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몇몇은 혼절했다.

징세관은 그 모든 것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다시 제아에게 향했다. 그의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훗, 너의 영혼은… 재미있군. 아직 어둠에 물들지 않았으나, 그 심연에는 증오가 가득하다. 아주 좋은 재료가 되겠어.”

징세관의 말이 끝나자, 괴물로 변한 병사 하나가 제아에게 다가왔다. 녹아내린 얼굴의 눈동자는 비틀린 푸른빛을 뿜어냈다. 괴물의 손이 뻗어져 제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뼈를 으스러뜨릴 듯한 악력이 느껴졌다.

그 순간, 제아의 눈앞에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찢어진 등, 미나의 앙상한 손. 잿빛 강변 마을의 모든 고통이 파노라마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분노가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핏속에 잠자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원초적인 격분이었다.

괴물 병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제아는, 문득 자신의 손바닥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진흙탕 속에 파묻혀 있던 무언가, 차갑고 매끄러운 돌멩이였다.

제아는 본능적으로 그 돌멩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몸의 힘을 실어 괴물 병사의 뺨을 후려쳤다.

콰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괴물 병사의 비틀린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돌멩이와 닿은 살갗에서는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괴물 병사는 잠시 비틀거렸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감히 제국의 병사를, 그것도 변형된 괴물을 공격하다니. 모든 마을 사람들의 눈이 제아에게 꽂혔다. 징세관의 얼굴에서도 기이한 흥미가 스쳐 지나갔다.

제아는 숨을 헐떡이며 일어섰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머릿속에서는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불타는 듯한 분노로 가득했다.

그는 징세관을 노려보았다.

“제국… 네놈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았어! 땅도, 목숨도, 이제는 우리의 영혼까지도…!”

제아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징세관은 여전히 기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호라… 이 필멸의 존재에게서… 이런 강렬한 의지가 뿜어져 나오다니. 흥미롭군. 하지만… 어리석은 반항은, 오직 더 큰 고통만을 부를 뿐이다.”

징세관은 손을 들어 올렸다. 다른 괴물 병사들이 제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과 섬뜩한 푸른 눈동자가 제아를 집어삼킬 듯이 다가왔다.

제아는 뒷걸음질 쳤다. 그는 혼자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꺾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차가운 돌멩이는 마치 그의 심장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그의 등 뒤에서, 아버지가 거친 숨을 내쉬며 외쳤다. “제아! 도망쳐라!”

그러나 제아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멀리, 철창에 갇힌 채 끌려가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리고 잿빛 강변 마을을 휘감고 있는 흑염 제국의 무자비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 순간, 제아는 깨달았다.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보다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을 뿌리 뽑지 않는 한, 결코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의 심장 속에서, 작은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반란의 불꽃이었다. 어쩌면 그 불꽃은 온 제국을 집어삼킬 거대한 불길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다가오는 괴물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침묵의 맹세를 되뇌었다.

*반드시… 되갚아 주리라.*

빗줄기는 여전히 끈질기게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아의 눈동자 속에는, 더 이상 절망의 그림자가 아닌,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섬광이 깃들어 있었다.

이것은 잿빛 강변 마을의 비극적인 밤이자, 검은 제국에 맞서는 아주 작은 균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