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23화: 심연의 속삭임

어둠이 내딛는 발걸음을 집어삼켰다. 축축한 공기는 곰팡이와 쇠비린내,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역한 달콤한 향이 뒤섞여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서준은 마력으로 밝힌 수정구를 든 채, 턱 끝까지 차오른 긴장감을 애써 눌러 담았다.

“정말 여기, 아무도 몰랐단 말이야…?”

곁에 선 학술국 소속의 늙은 마법사, 엘리야 교수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수정구의 희미한 빛 아래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명문 중의 명문, 대륙 최고의 마법 수재들을 길러내는 아카데미 ‘아르카나’의 지하 깊숙한 곳이었다. 수백 년간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미지의 공간. 아니, ‘들이지 못하게 막혀 있던’ 공간이 더 정확할 터였다.

서준은 꽉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몇 달 전, 우연히 얻게 된 고대 유물의 파편이 아르카나 지하에서 강력한 마력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 신호를 쫓아 미로 같은 비밀 통로를 헤쳐 온 끝에 이 거대한 미궁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세계에서 넘어온 자신만이 감지할 수 있는 이질적인 파장. 그것은 단순한 마력과는 달랐다. 영혼의 심연을 울리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었다.

“교수님, 저 마력 흐름… 이상합니다.”

서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수정구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조물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고대 건축 양식 같기도 했고,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는 기분 나쁜 곡선으로 이루어진 벽면이 시야를 압도했다.

엘리야 교수가 안경을 고쳐 쓰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 감각으로는 감지되지 않아. 혹시 자네의 이세계 마법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럴지도요. 하지만… 분명 이 공간 전체를 감싸는 엄청난 마력입니다. 흡수되고 있는 것 같아요.”

흡수. 서준의 머릿속에 불길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는 이전 세계에서 접했던 고대 문헌들의 기록을 떠올렸다. 마력을 흡수하고,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금지된 주술들. 설마…

그때, 희미하게 들려오던 규칙적인 낮은 울림이 점점 선명해졌다. ‘두웅… 두웅…’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소리가 커질수록 공기는 더욱 무거워지고, 서준의 심장도 그 박동에 맞춰 격렬하게 울렸다.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긴 복도의 끝, 거대한 석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문이 아니었다. 틈새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그 빛은 흡사 영혼의 색깔 같았다.

“이건… 봉인 마법인가…?” 엘리야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정도 규모의 봉인이라면, 아르카나 건국 당시에도 기록된 적이 없어. 대체 뭘 봉인하려고…”

서준은 말을 끊고 석문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돌연 문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들이 살아있는 듯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서준의 온몸을 훑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문양들 사이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이 뒤섞인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환청일까?

“서준! 함부로 다가서지 마!”

엘리야 교수의 경고가 늦었다. 서준의 손이 본능적으로 석문 표면에 닿는 순간, 거대한 마력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

정신을 차렸을 때, 서준은 석문 안쪽의 거대한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엘리야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를 감쌌던 수정구의 빛마저 사라져, 오직 석문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만이 이 공간을 위태롭게 비추고 있었다.

이곳은… 경악스러웠다.

마법 학교 지하가 아니라, 마치 세상의 끝에 존재하는 어둠의 제단 같았다. 거대한 돔 형태의 천장에는 온갖 기이한 문양과 마법진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마법진들은 끈적한 혈액처럼 검붉은 액체로 채워진 수로를 따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서준의 시선이 바닥 중앙에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크리스탈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빛은 다름 아닌 수많은 ‘영혼’들의 잔해였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푸른빛 알갱이들이 크리스탈 표면을 따라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인간의 형상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어린아이, 청년, 노인… 수많은 얼굴들이 고통과 절규로 일그러진 채였다.

“이게… 대체…!” 서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더 끔찍한 것은, 그 크리스탈 아래였다. 수십 개의 굵은 마력 파이프들이 마치 거대한 촉수처럼 뻗어 있었는데, 그 파이프들은 각각 작은 유리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유리관들 안에는…

잠들어 있는, 혹은 죽어 있는 인간의 형상들이 보였다. 그들의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했고, 육체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실핏줄이 터진 채 반쯤 떠 있었고, 그 안에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박제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르카나 마법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학생들.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성적이 저조하거나 마력 발현에 실패하여 ‘어딘가로 전학 갔다’고 알려진 수많은 학생들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그들의 생명력과 마력이 거대한 크리스탈로 흡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카나의 영광과 강력한 마법 방어 시스템, 그리고 일부 고위층의 영생을 위한 추악한 제물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이런 곳이 존재했다니….”

엘리야 교수의 절망에 찬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는 언제 왔는지, 서준의 옆에 서서 이 참혹한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늙은 얼굴에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절망감이 가득했다.

“이것이… 아르카나의 진정한 힘이었어… 건국 이래 사라진 천재들, 실종된 문제아들… 모두 이곳으로 왔던 거야.”

그때, 정적을 깨고 섬뜩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신입 대상… 마력 흡수 준비 완료. 코드 확인.]

돔 형태의 천장에 새겨진 마법진들이 더욱 격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검붉은 액체가 흐르던 수로가 끓어오르는 듯했고, 크리스탈 내부의 영혼들은 더욱 격렬하게 울부짖는 듯했다.

“서준, 도망쳐! 이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엘리야 교수가 몸을 돌려 외쳤다. 그의 눈은 이미 희생될 학생들의 운명을 떠올린 듯 절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서준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대한 크리스탈의 가장 아래쪽. 다른 유리관들과는 달리, 은빛 사슬로 꽁꽁 묶인 채 강력한 봉인 마법이 걸려 있는 유리관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다른 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마력을 지닌 존재가 봉인되어 있었다.

‘그 파동… 내가 추적했던 그 이질적인 마력의 근원…’

그때, 서준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이세계로 전생하기 전, 그가 우연히 손에 넣었던 고대 유물의 파편. 그것은 이세계로 넘어올 때 사라졌지만, 그 잔재가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파동은… 이 거대한 마력 원천, 바로 저 은색 사슬에 묶인 존재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존재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서준은 숨을 헙 들이켰다.

믿을 수 없었다. 그 얼굴은… 그가 이세계에서 태어나기 전, 현대 한국에서 자신이 동경했던, 그리고 자신이 되기를 꿈꿨던 어떤 ‘인물’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당신이…?”

서준의 입에서 메마른 탄식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 공간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거대한 크리스탈에서 뻗어 나온 굵은 마력 파이프 하나가 서준의 심장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제물이 될 뿐일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