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금단의 그림자
천문학원, 제국의 심장부에 우뚝 솟아 구름을 뚫는 듯한 웅장한 학원은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성채와 같았다. 겹겹이 쌓인 비취색 기와지붕과 고아한 자태의 누각들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선인과 도사들을 배출해낸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였다. 새벽녘, 수련생들의 영기가 서린 우렁찬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공중에는 오색 영력이 춤추듯 휘감겨 올라 지고한 선의 기운을 뿜어냈다.
수많은 엘리트 도제들 사이에서 류진은 그저 평범한 한 명에 불과했다. 명문가의 자제들처럼 타고난 영체나 기재를 지닌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불세출의 영력을 지닌 스승의 눈에 띄어 특별한 비법을 전수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누구보다 꾸준히 수련하고, 때로는 학원 내의 잡무를 도맡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성실한 도제였다. 그의 선도(仙道)는 남들보다 느렸지만, 언젠가 반드시 도의 경지에 오르리라 믿는 굳건한 의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류진, 오늘은 자네 차례다. 고서고 정리 좀 부탁하네. 먼지투성이라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군.”
담담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학관의 말에 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서고. 천문학원의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수많은 금서와 폐서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음침한 기운마저 감도는 곳이라 도제들은 기피하는 일 순위의 잡무였다. 하지만 류진은 익숙했다. 오히려 그는 이런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곤 했다.
두툼한 면포와 먼지떨이를 든 채 고서고로 향하는 류진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였지만, 오늘은 왠지 모를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했다. 거대한 청동문을 열고 들어선 고서고 내부는 예상대로 쾌쾌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서가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고서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위에 쌓인 먼지는 수백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증명하는 듯했다.
류진은 능숙하게 서가 사이를 오가며 책장의 먼지를 털고, 뒤죽박죽 섞인 책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시작했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고서고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류진의 숨소리와 먼지떨이의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울렸다.
한참을 정리하던 류진은 고서고의 가장 깊숙한 곳, 거대한 원목 서가 뒤편에 자리한 벽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유독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다른 서가들과는 달리 책이 거의 꽂혀 있지 않았다. 류진은 그저 평범한 벽이겠거니 생각하며 먼지를 털어내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손끝에 닿은 감촉이 이상했다. 차갑고 단단한 돌벽이 아니라, 마치 나무처럼 결이 느껴지는 매끄러운 표면이었다. 의아함에 먼지를 털어내자, 육중한 서가에 가려져 있던 벽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단순한 벽이 아니었다. 거대한 한 장의 돌판이 정교하게 이어진 듯한, 그러나 이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마치 검은 옥으로 조각된 듯한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용의 눈은 붉은 기운을 띠며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다.
류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이곳은 한 번도 발걸음 해본 적 없는 곳이었다. 더욱이 천문학원의 모든 건축물은 영력이 깃든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렇게 거대한 암판 전체에 문양이 새겨진 경우는 드물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호기심과 동시에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기운에 류진은 조심스레 용의 문양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옥의 감촉이 손바닥을 스쳤고, 동시에 붉게 빛나던 용의 눈이 순간 강렬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암판이 좌우로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암판 뒤편에는 어둠이 깊은 심연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는 다른,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비릿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류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헙 들이켰다. 차가운 바람이 안쪽에서 불어 나와 그의 뺨을 스쳤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그 바람 속에는 알 수 없는 고통과 절규가 뒤섞여 있는 듯한 기이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오싹함에 류진은 뒷걸음질 쳤다.
“이곳은… 대체 뭐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둠 저편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빛은 없었다. 오직 끝없는 심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귓가에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언어가 아닌, 그저 낮은 진동음이었지만 그 소리는 류진의 혼백을 흔드는 듯한 강력한 불쾌감을 선사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존재가 기지개를 켜는 듯한 소리였다.
류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이곳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될 곳임을 깨달았다. 천문학원의 지하에 이런 곳이 숨겨져 있다니. 과연 무엇이 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단 말인가. 학원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런 곳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될 곳처럼 철저히 숨겨져 있었다.
두려움에 질린 류진은 황급히 뒤돌아섰다. 다시 암판을 닫으려 했지만,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용의 문양을 누르자, 암판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다시 닫혔다. 완벽하게 닫힌 암판은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벽으로 돌아왔다.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심장은 미친 듯이 발광하며 온몸으로 피를 뿜어냈다. 방금 전 겪은 일들이 꿈이기를 바랐지만, 손끝에 남아있는 차가운 옥의 감촉과 귓가에 맴도는 기분 나쁜 웅얼거림은 그것이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천문학원의 가장 은밀하고 끔찍한 금기를 엿본 것이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전신을 지배했지만,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저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은 무엇이며, 왜 천문학원은 그 존재를 철저히 감추고 있는가?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두려움에 도망칠까, 아니면 이 비밀을 파헤칠까. 그의 발걸음은 이미 다시 그 암벽을 향하고 있었다. 발이 이끄는 대로, 그는 다시 미지의 심연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천문학원의 어둠 속으로… 그의 선도(仙道)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