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차가운 숨결

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강진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낡은 철골 구조물에 기대섰다. 손전등 불빛이 허공을 가르자 눅진한 곰팡이와 함께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은 한때 번화했던 지하 상가의 폐허, 지금은 어둠과 괴물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지옥이었다. 등 뒤에서 이세라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진우 씨, 벌써 네 시간째예요. 더 내려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식량도 거의 바닥이고…”

세라의 목소리는 희미한 떨림을 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부족한 식량 탓에 그녀의 얼굴은 더욱 수척해 보였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여기만큼 안전한 루트는 없어. 저번에 우회하다가 뭘 만났는지 기억 안 나?”

그때의 악몽이 뇌리를 스쳤다. 미지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놈들의 송곳니는 아직도 선명했다. 진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손전등을 들어 앞을 비췄다.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벽에는 정체 모를 붉은 얼룩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섬뜩하게 늘어져 있었다.

“쉬쉬… 저건 뭐죠?”

세라의 날카로운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진우가 손전등을 돌리자, 통로 한쪽 벽면에 손톱으로 긁힌 듯한 깊은 자국들이 불규칙하게 새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괴물의 흔적과는 달랐다. 너무 정교하고, 또 너무 깊었다. 마치 무언가 의도적으로 표시해 둔 것처럼.

“새로운 흔적이군. 지난번엔 없었는데.” 진우는 조심스럽게 흔적을 따라 손가락을 스쳤다. 거친 질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 근처에 다른 생존자가 있다는 건가?”

세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면… 새로운 종류의 놈들일 수도 있죠. 인간의 흔적이라면… 여긴 너무 깊고 위험해요.”

그때였다. 아주 미세한, 하지만 분명한 소리가 진우의 귀를 때렸다. *스르륵, 스르륵.* 바닥을 기어가는 듯한 마찰음이었다. 진우는 즉시 손을 들어 세라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다. 세라도 소리를 들었는지, 몸을 굳히고 주변을 경계했다.

“저건… 벌레 소리가 아니야.” 진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움직이지 마. 절대 소리 내지 마.”

두 사람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어둠 속을 응시했다. *스르륵, 스르륵.*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눅눅한 공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통로의 끝, 어둠이 가장 짙게 깔린 곳에서 희미한 윤곽이 드러났다. 길고 가느다란 몸뚱이, 수십 개의 다리, 그리고 번들거리는 검은색 갑피.

*철컥.*

진우는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낡은 샷건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금속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리자, 어둠 속의 괴물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은 없었다. 대신 더듬이 같은 것이 허공을 더듬으며 진동했다. 소리에 민감한 놈이었다.

“젠장…”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청각 의존형인가.”

괴물은 더듬이를 진우 쪽으로 돌렸다. 마치 진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것처럼. 거대한 몸뚱이가 통로를 가득 메울 기세로 꿈틀거렸다. 독성 물질이라도 뿜어내는 건지, 주변 공기가 더욱 탁해지는 것 같았다.

“진우 씨, 저건… 처음 보는 놈이에요.” 세라의 목소리가 거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그녀의 손은 품속의 단검 자루를 꽉 쥐고 있었다.

진우는 심호흡을 했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이 좁은 통로에서 등 뒤로 괴물을 달고 도망치다간 더 큰 위험에 처할 게 뻔했다. 오직 정면 돌파뿐.

“내가 시선을 끌게. 네가 뒤로 돌아가서…”

진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물이 맹렬한 속도로 돌진했다. *쉬이이익!*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머리가 진우를 향해 튀어나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던져 피했다. 괴물의 머리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며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아악!”

진우는 자세를 잡는 동시에 샷건을 발사했다. *쾅!* 묵직한 반동과 함께 불꽃이 어둠을 갈랐다. 산탄이 괴물의 갑피에 박혔지만, 놈은 별다른 타격 없이 몸을 비틀었다. 오히려 분노한 듯 더욱 빠르게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망할! 이딴 걸로 안 통한다고?!”

진우는 다시 몸을 날려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이번에는 세라가 움직였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통로 옆의 무너진 환기구 잔해를 향해 달렸다. 날카로운 단검으로 낡은 철판을 재빨리 들어 올렸다. 환기구 아래에는 어둡고 좁은 공간이 드러났다.

“진우 씨! 이쪽이에요!”

세라의 외침에 괴물이 잠시 주춤했다. 소리의 진동 방향을 파악하려는 듯 더듬이를 허공에서 흔들었다. 그 찰나의 순간, 진우는 재빨리 몸을 돌려 세라 쪽으로 뛰었다. 괴물은 다시 진우를 향해 돌진했지만, 이번에는 세라가 준비한 함정에 걸려들었다.

*와자작!*

괴물의 거대한 몸뚱이가 환기구 위를 밟자, 낡은 철판과 콘크리트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괴물의 다리 일부가 환기구 아래의 공간으로 처박히며 몸의 균형을 잃었다. *끼이이익!* 섬뜩한 비명 소리가 폐허에 울려 퍼졌다.

“지금이야!” 진우는 다시 샷건을 겨눴다. 이번에는 괴물의 약점을 노렸다. 파괴된 갑피 아래로 드러난 연약한 관절 부위였다.

*콰앙! 쾅!*

연이은 사격에 괴물의 비명은 더욱 격렬해졌다. 검은 피가 뿜어져 나오며 벽을 적셨다. 그러나 괴물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주변 잔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진우와 세라가 서 있는 바닥까지 흔들렸다.

“이러다 통로가 다 무너지겠어요!” 세라가 외쳤다.

진우는 망설였다. 탄약은 이제 단 두 발. 이걸로 놈을 확실히 죽일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놈을 피해 더 깊은 미지로 도망쳐야 할까? 하지만 괴물은 환기구에 박힌 채 완전히 갇힌 상태가 아니었다. 언제든 풀려나와 다시 달려들 수 있었다.

진우는 결심한 듯 총구를 단단히 잡았다. “세라! 너 먼저 가!”

“하지만 진우 씨는?!”

“잔말 말고! 난 뒤따라갈게! 어서!” 진우는 괴물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소리쳤다.

세라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진우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허물어진 환기구 옆의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진우는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괴물을 향해 샷건을 겨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놈을 완전히 제압해야만 했다. 진우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샷건을 옆으로 내려놓고 허리춤에서 섬광탄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괴물의 머리 바로 아래, 깨진 갑피 사이로 섬광탄을 던져 넣었다.

*파앗!*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어둠을 일순간 집어삼켰다. 동시에 *쉬이익!* 하는 단말마와 함께 괴물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청각에 의존하는 놈에게 섬광은 치명적이었다. 시각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고막을 찢을 듯한 충격을 주었을 터였다.

그 짧은 순간, 진우는 샷건을 다시 쥐었다. 마지막 남은 두 발. 놈의 몸부림으로 벌어진 갑피 아래, 검붉은 살점이 드러난 곳을 정확히 조준했다.

*콰앙! 콰앙!*

두 발의 산탄이 연달아 뿜어져 나왔다. 괴물의 몸이 격렬하게 솟구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털썩!*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뚱이가 환기구 잔해 위로 쓰러졌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폐허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오직 진우의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를 갈랐다.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샷건을 내렸다.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죽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괴물을 노려봤지만,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쓰러진 듯했다.

“젠장… 겨우 살았군.”

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극심한 피로가 밀려왔다. 그때, 좁은 틈새 너머에서 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우 씨! 괜찮으세요?!”

“어. 괜찮아.” 진우는 겨우 대답했다. “이제 이쪽으로 와.”

세라가 다시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그녀는 진우의 상태를 확인하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진우는 샷건을 어깨에 메고 주변을 둘러봤다. 바닥에는 검은 피와 괴물의 껍질 조각들이 널려 있었고, 통로 곳곳은 무너진 잔해로 가득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이곳에 더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이대로 쭉 내려가자.”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불안한 빛을 담고 있었지만, 진우를 믿는다는 듯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좁고 어두운 통로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정체 모를 먼지가 발걸음마다 희뿌옇게 흩날렸다.

어둠 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폐허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뜻밖의 풍경이 펼쳐졌다. 통로가 갑자기 넓어지며, 정면에는 거대한 금속 문이 나타난 것이다. 낡고 녹슨 문은 한때 굳건히 닫혀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 틈새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진우는 손전등을 들어 문을 비췄다. 금속 문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와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문틈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지하 던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고 부드러운 색을 띠고 있었다.

“저건… 햇빛인가?” 세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우는 아무 대답 없이 문틈으로 다가섰다. 금속 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아주 희미한… 흙냄새와 풀잎 냄새가 실려 오는 것을 느꼈다.

진우는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지하 깊숙한 곳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푸르고 생생한 녹색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하늘이 있었다. 비록 돔 형태로 막혀 있지만, 푸른빛을 띠는… 명백한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 무성한 풀과 낯선 식물들이 가득한 작은 숲이 존재했다. 멀리서는 새소리 같은 희미한 지저귐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절망적인 지하 미로 속에서 발견한,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 같았다.

“이게… 대체… 뭐야?”

세라도 진우의 옆으로 다가와 문틈 너머의 풍경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눈은 경외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희망과 동시에 새로운 위험의 전조를 알리는 듯한 강렬한 예감이었다.

이곳은 대체 무엇인가. 황폐해진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곳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진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샷건을 고쳐 잡고, 찌그러진 금속 문을 밀어 열 준비를 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이, 마침내 그들 앞에 열리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그들이 찾던 생존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차갑던 숨결이, 이제는 미지와의 조우를 예고하는 격렬한 흥분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