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빛 새벽 공기가 낡은 저택을 휘감았다. 오랜 시간 비를 맞아 눅눅해진 돌담 너머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손가락처럼 뻗어 있었고, 그 사이로 스며든 희미한 여명이 음침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곳, ‘수묵화 저택’이라 불리는 곳에서, 전날 밤,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오 형사의 무전기에서 지직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그는 굳게 닫힌 서재 문 앞에 서서 마른세수를 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밀실 살인이라니.”
그의 옆에 선 감식반원들은 이미 지쳐 보였다. 문은 외부에서 어떤 침입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내부에서는 피해자의 시신만이 홀로 굳어 있었다. 열쇠는 안쪽에서 잠금쇠에 꽂힌 채였다. 창문 역시 굳게 닫혔고, 오래된 쇠창살이 덧대어져 있었다. 외부인이 침입할 수도, 내부인이 빠져나갈 수도 없는 완벽한 고립.

“오 형사님, 강하준 박사님 오셨습니다.”
막내 형사의 보고에 오 형사는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 고풍스러운 샹들리에의 희미한 불빛 아래, 한 남자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짙은 코트 차림의 그는 주변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고요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 깊고 날카로웠다. 바로, 강하준이었다.

“강 박사님, 이런 곳까지….”
오 형사가 마지못해 인사를 건넸지만, 하준은 대꾸 없이 서재 문을 훑어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잠금장치, 문틀, 그리고 손잡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흡사 현미경으로 미세한 흔적을 찾는 학자 같았다.

“피해자는 정인서 씨입니다. 이 저택의 주인이자… 재야의 고미술품 수집가였죠. 어제 저녁 7시경, 그의 비서가 저택을 나섰고, 아침에 연락이 닿지 않아 찾아왔다가 발견했습니다.” 오 형사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사인은 칼에 의한 복부 자상입니다. 사망 시각은 어젯밤 9시에서 11시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건… 부검 결과, 피해자의 위장에서 소량의 진정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하준은 서재 문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나무의 질감이 그의 손끝에 닿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내 눈을 뜨자, 그의 시선은 더 깊어진 듯했다.
“문은 어떻게 잠겨 있었죠?” 하준이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안에서 잠금쇠가 잠겨 있었고, 열쇠는 그대로 꽂혀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지문만 검출됐고요.”
“그럼 창문은요?”
“모두 안에서 걸쇠로 걸려 있었고, 쇠창살도 밖에서는 훼손된 흔적이 없습니다. 2층이라 뛰어내리기도 불가능하고요.”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문 좀 열어주시죠.”
오 형사는 감식반원들에게 지시했고,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삐걱이는 소리가 저택의 정적을 깼다.

서재 안은 온통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먼지 쌓인 고서들이 빼곡했고,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잉크병과 깃펜, 그리고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그 모든 고요함 속에, 정인서 씨의 시신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얼굴, 굳게 다문 입술. 그는 차가운 마루 위에서 피를 흘리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은제 편지칼이 쥐여 있었다. 그가 평소 애용하던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는 이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그의 지문만 나왔죠.” 오 형사가 덧붙였다.
하준은 시신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는 쪼그려 앉아 피해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의 눈동자에는 마지막 순간의 공포가 아닌, 어떤 깊은 체념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하준은 칼을 집어 들지 않고 눈으로만 그 위치를 확인했다. 칼날은 그의 복부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피가 굳어 시신 주변에 검붉은 자국을 남겼다.

그의 시선은 시신에서 책상으로, 다시 벽면의 책장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마침내,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에 멈췄다. 오래된 시계는 정확히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멈춘 채로.

“피해자는 이 시계를 항상 정확히 맞춰 두었을 겁니다.” 하준이 중얼거렸다. “이 저택의 모든 것이 그의 꼼꼼함을 증명하고 있으니.”
“네, 비서 말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직접 태엽을 감았다고….”
“그럼 시계가 멈춘 시각이 사망 시각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다시 책장으로 향했다. 빽빽한 책들 사이, 유독 한쪽 구석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서들로 가득한 그곳에, 아주 미묘하게, 다른 책들보다 살짝 앞으로 돌출된 책 한 권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을 작은 차이였다.

하준은 조용히 다가가 손가락으로 그 책의 표면을 쓸었다. 먼지가 다른 책들보다 덜 쌓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최근에 이 책을 만졌던 것처럼.
그는 그 책을 빼냈다. 책이 빠져나오자, 그 뒤편에 숨겨져 있던 작은 금고 문이 드러났다. 금고는 단단히 닫혀 있었다.

“금고라… 피해자의 재산이 워낙 많으니, 저런 금고가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오 형사가 말했다.
“문제는 저 금고의 위치입니다.” 하준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 책이 왜 다른 책들보다 앞으로 나와 있었을까요?”

하준은 책을 다시 밀어 넣었다. 금고 문은 다시 고서들 뒤로 사라졌다.
“오 형사님, 감식반원들에게 창문의 쇠창살과 문틀을 좀 더 면밀히 살펴봐 달라고 하십시오. 특히, 틈새를요.”
“틈새요? 이미 다 봤습니다만…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습니다.”
“아뇨,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요. 아주 미세한, 실 같은 흔적도 놓치지 말라고 하십시오.”

오 형사는 하준의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지시를 내렸다. 하준은 다시 시신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아, 피해자의 손에 들린 편지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다시 심해졌다. 무언가, 깊은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오 형사님.” 하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 정인서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서재를 완벽하게 보존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는 자신을 죽인 범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를 서재로 불러들인 것이 그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준은 시신 옆에 굳어 있는 피 웅덩이를 응시했다. 그 피 웅덩이 가장자리에, 아주 미세하게, 손톱으로 긁은 듯한 작은 자국이 있었다. 너무나 작아서, 피가 굳은 흔적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곳은 완벽한 밀실입니다.” 하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밀실이라는 환상은, 오히려 범인의 완벽한 속임수였을 뿐이죠.”
오 형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범인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정인서 씨를 살해하고, 유유히 이 방을 빠져나갔죠.”
하준은 고개를 들어, 굳게 잠긴 채 열쇠가 꽂혀 있던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 완벽한 밀실은, 살인자가 아니라 피해자 자신이 완성한 겁니다.”

오 형사의 얼굴에 당혹감과 혼란이 뒤섞였다. 피해자가 스스로 밀실을 완성했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범인은 대체 어떤 트릭을 써서 이 방을 빠져나갔으며, 정인서는 왜, 마지막 순간에 그런 선택을 해야 했던 걸까. 서재의 고요한 침묵 속에, 강하준의 날카로운 시선만이 진실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이 완벽해 보이는 밀실 속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누군가의 비틀린 심리가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