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크로노스, 안개 속의 심장

크로노스 시는 언제나 증기와 톱니바퀴의 심장 소리로 숨 쉬었다. 아침이 오면 굴뚝마다 뿜어내는 검은 연기가 도시를 자욱한 회색빛으로 물들였고, 밤이 되면 거리 곳곳의 가스등과 증기 기관차의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찢으며 황금빛 노을처럼 번져나갔다. 거대한 톱니바퀴의 나선형 계단처럼 겹겹이 쌓인 도시의 구조는 그 자체로 계급을 드러냈다. 상층부는 늘 푸른 하늘과 가까웠고, 은빛 합금으로 지어진 저택들은 태양 아래서 찬란하게 빛났다. 반면 하층부는 늘 음습하고, 강철과 구리로 얼룩진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곳은 인간의 탐욕과 기계의 열기가 뒤섞여 숨 가쁘게 돌아가는 크로노스의 심장이었다.

리엘은 상층부에서도 가장 높은 구역, ‘천공 연구소’의 최상층에 위치한 개인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창밖으로는 저 멀리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그녀의 시선은 오직 작업대 위의 복잡한 기계 장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금빛 머리카락은 흘러내려 뺨에 달라붙었고,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은 그녀가 얼마나 이 작업에 몰두했는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젠장, 이것으로는 안 돼.”

리엘은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에테르 공명 장치. 상층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아니,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금기된 연구였다. 아스텔족만이 다룰 수 있다고 알려진 미지의 에너지, 에테르. 그녀는 그 에테르의 파장을 읽고 공명하는 장치를 만들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해하고 싶었다. 수백 년간 크로노스의 아래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며 미움받아 온 아스텔족을. 그리고 그들에게 내려진 수많은 금기와 거짓말의 실체를.

그녀의 아버지, 위대한 발명가이자 천공 연구소의 소장인 델렌 박사는 아스텔족에 대한 모든 연구를 ‘미개하고 위험한 짓’이라며 철저히 금지했다. 리엘은 그 금지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고 직감했다.

문제는 핵심 부품이었다. 에테르의 미묘한 파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물질, ‘에테르 원석’. 상층부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희귀 광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상층부에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스텔족의 영역이라고 알려진 크로노스 하층부 깊숙한 곳, ‘어둠골’에서만 채굴된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감히 그곳에 발을 들일 엄두를 내는 인간은 없었다.

리엘은 차가운 금속 위에 턱을 괴었다.
‘어떻게든 구해야 해. 이 장치는 완벽해지고 있어. 에테르 원석만 있다면….’

며칠 밤낮을 고민하던 리엘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어둠골로 향해야만 했다. 그녀의 연구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 * *

“아가씨! 정말 이대로 가실 겁니까? 어둠골은 인간이 발 들여선 안 되는 곳입니다! 순찰대가 알면….”

리엘의 전용 조종사이자 오랜 집사인 로버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붙잡았다. 낡은 작업복 위에 두터운 방풍 코트를 걸친 리엘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잔말 말고, 날 내려줘. 내가 할 일이 있어.”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로버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리엘이 조종하는 낡은 소형 비행선 ‘나비’는 상층부의 화려한 불빛을 뒤로하고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비행선은 으르렁거리는 증기 엔진 소리를 내며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하강할수록 공기는 더욱 탁해지고 스팀과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지쳐 있었고, 옷차림은 남루했다. 리엘은 ‘나비’를 더 깊은 곳, 공장 지대를 지나 슬럼가처럼 보이는 낡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곳에 착륙시켰다. 이곳이 바로 어둠골의 초입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혼자 갈 거야.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상층부로 연락해서… 아니, 그냥 돌아가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로버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리엘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부디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리엘은 고개를 끄덕이고 비행선에서 내렸다. 차가운 금속 발판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비’가 다시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확인한 리엘은 익숙지 않은 어둠골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상층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거대한 파이프들이 얽히고설킨 채 도시의 혈관처럼 지나갔고,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밸브에서는 쉬이익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바닥은 축축하고 미끄러웠으며, 낡은 가스등의 불빛마저 희미해서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의 눈빛은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리엘은 상층부 귀족의 옷차림을 벗고 평범한 작업복 차림으로 왔지만, 금발의 푸른 눈은 이곳 사람들에게 낯선 이방인임을 명확히 드러냈다.

길을 헤매던 리엘은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유독 어둡고 음침했다. 벽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고, 어디선가 기분 나쁜 기계음이 들려왔다.

‘젠장, 길을 잘못 들었나?’

그때, 등 뒤에서 거대한 금속음이 울렸다. 쾅!
리엘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낡은 증기 압력기가 갑자기 폭주하며 굉음을 내고 있었다. 파이프가 터져 나가고, 뜨거운 증기가 거친 숨소리처럼 뿜어져 나왔다. 압력계의 바늘은 위험한 수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안 돼… 폭발할 거야!”

그녀는 본능적으로 압력기를 멈추려 달려들었다. 상층부에서는 볼 수 없는 구형 모델이었지만, 작동 원리는 비슷했다. 비상 레버를 찾으려 허둥대는 순간, 압력기의 거대한 철제 팔이 삐걱거리며 움직이더니 리엘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앙!

피할 새도 없이 철제 팔이 그녀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리엘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등에서부터 찌릿한 고통이 전해졌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압력기는 더욱 거칠게 날뛰고 있었다. 다음 공격은 분명 치명적일 터였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리엘의 눈에 비친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갖춘 듯한 존재였다. 그는 놀랍도록 민첩하게 움직였다. 증기 압력기의 거친 움직임 사이를 파고들어, 터져 나가는 파이프와 얽힌 배선 사이를 꿰뚫었다. 그의 몸에서 희미한 푸른 에테르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듯했다.

번쩍이는 손길로 압력기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복잡한 밸브를 돌리고, 거칠게 튀어나온 전선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에테르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가? 리엘은 고통 속에서도 눈을 크게 떴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금속의 마찰음과 증기 분출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거대했던 압력기는 서서히 멈춰 섰다.

고통에 신음하며 겨우 몸을 일으킨 리엘의 눈에, 어둠 속에서 조용히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검은 옷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는 달빛처럼 희고 투명해 보였다. 그는 천천히 리엘 쪽으로 돌아섰다.

그의 눈은 깊은 밤하늘의 별처럼 푸른색이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는 듯했다. 그는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스텔족. 그들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던 상층부의 교육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리엘의 눈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나 아름답고도, 너무나 위험한 존재.

그가 리엘을 향해 한 발짝 다가왔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부드러웠다. 리엘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공포가 아닌, 형언할 수 없는 매혹 때문이었다. 그가 가까이 오자, 그의 몸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에테르의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묘한 안정감과 동시에 격렬한 전율이 흘렀다.

그의 시선이 리엘의 푸른 눈과 마주쳤다. 긴 침묵이 흘렀다. 도시의 소음도, 리엘의 거친 숨소리도 모두 사라진 듯했다.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인간?”

낮고 메마른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경계심이 가득한 질문이었지만, 묘하게 리엘의 심장을 울리는 듯했다.

“나는… 에테르 원석을… 찾고 있어.”

리엘은 겨우 말을 잇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저 무표정하게 리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멀리서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낡은 가스등의 불빛이 흔들렸다. 순찰대의 발소리였다.

“위험해.”

그가 짧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리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그의 손길에 리엘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뿌리치지 못했다. 그의 눈이 리엘에게 경고하듯 깊게 박혔다.

“따라와.”

그는 리엘을 이끌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순찰대의 불빛이 골목을 비추기 직전이었다. 리엘은 그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이 도시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금기된 존재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길에서 묘한 평안함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격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만남이 그녀의 모든 것을 뒤바꿔 놓을 것임을 직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