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 박동, 기계음을 뚫고
카인의 발소리는 잿빛 콘크리트 바닥에 옅게 울렸다. 낡은 작업복은 기름때와 먼지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은 살아있는 불꽃처럼 번득였다. 숨 막히는 압력에 짓눌린 이 거대 도시는, 제국의 그림자 아래에서 겨우 숨을 쉬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 우뚝 솟은 제국의 첨탑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탐욕과 오만이 뿜어내는 차가운 푸른빛이 번뜩였다. 저 빛이 도시 전체를 감시하고, 모든 것을 통제했다. 그리고 그 빛 아래, 그의 동족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자, 카인. 준비됐나?”
세라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언제나 차분하고 이성적인 그녀의 음성 속에도 미세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언제든.”
카인은 짧게 대답하며 허리춤의 플라즈마 커터를 확인했다.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이 손에 착 감겼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사용했을 이 도구는 이제 그의 몸의 일부와 같았다.
“렉스는?”
“뒷골목에서 대기 중. 신호만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목표는 구역 7 외곽에 위치한 제국 보급 창고였다. 단순한 물자 보급지가 아니었다. 반란군이 굶주리는 동안, 제국은 이곳에 민중의 피와 땀으로 만든 식량과 자원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시의 모든 생산물을 제국 본성으로 실어 나르기 전, 잠시 이곳에 쌓아두곤 했다. 그리고 오늘 밤, 그들은 그것을 되찾을 작정이었다.
카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둠은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구역 7은 제국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가장 후미진 곳 중 하나였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 센서와 순찰 드론은 언제든 그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삐빅— 삐비빅—
귀에 꽂힌 소형 통신기가 작은 신호를 보냈다. 세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전방 30미터, 감시 드론 접근 중. 3시 방향으로 우회해.”
카인은 지체 없이 건물 사이의 좁은 틈새로 몸을 숨겼다.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붉은 감시등이 어둠 속을 훑고 지나갔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지만, 그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몇 초 후, 드론의 엔진음이 멀어지자 그는 다시 움직였다.
마침내 목표 지점인 보급 창고의 외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금속 벽은 검은색으로 도색되어 있었고, 표면에는 제국의 문양이 섬뜩하게 새겨져 있었다.
“접근 완료. 세라, 시스템부터.”
“확인. 잠시만 기다려.”
세라는 침착하게 자신의 해킹 장치를 가동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창고의 보안 시스템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지만, 세라는 그보다 더 뛰어났다.
잠시 후, 렉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여기 순찰병이 둘이야. 일반적인 경비 패턴이 아닌데?”
카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슨 일이지?”
“모르겠어.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드론만 순찰할 텐데, 중무장한 제국 병사들이 직접 돌아다니고 있어.”
세라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보안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간 것 같아. 내가 뚫고 있는 시스템에도 이전에는 없던 방어벽이 생겼어.”
불길한 예감에 카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예상 밖인데. 렉스, 처리 가능해?”
“둘 정도는 문제없어. 하지만 소리는 내지 못해. 발각되면 끝장이야.”
“알았어. 세라, 시간 끌지 말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이 정도면, 안에 더 있을 가능성이 커.”
카인은 이를 악물었다. 이번 임무는 단순히 식량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제국의 취약점을 파고들 중요한 작전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저항군 전체의 사기에 큰 타격이 될 터였다. 그는 플라즈마 커터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렉스, 처리하고 들어와. 나는 문을 연다.”
“알았어!”
잠시 후, 둔탁한 소리가 두 번 들렸다. 렉스가 순식간에 임무를 완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곧이어 렉스의 거친 숨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전해졌다.
“처리 완료. 안쪽으로 진입 중.”
“세라, 문은?”
“…이제 됐어. 물리적인 잠금장치만 남았어. 카인, 네 차례야.”
강화 합금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문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제국의 오만함을 상징하듯 굳건하게 닫힌 문이었다. 카인은 플라즈마 커터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푸른빛 섬광이 번쩍이더니, 굉음을 토하며 붉은 플라즈마 불꽃이 문틈을 파고들었다.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강화 합금이 녹아내리며 매캐한 냄새를 풍겼다.
육중한 문이 서서히 녹아내려 작은 구멍을 만들자, 그 안에서 차가운 공기와 함께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삐빅— 삐비빅— 삐비비빅—!
경보음이 창고 전체를 뒤흔들었다.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어둠을 갈랐다.
“젠장! 내가 해킹에 실패한 건가?!” 세라의 목소리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아니, 나다!” 렉스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안에 추가 병력이 있었어! 둘이 아니야! 서너 명 더 있었다고!”
카인은 망설일 틈도 없이 몸을 날려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플라즈마 커터는 아직 작동 중이었고, 그의 손에선 불꽃이 번쩍였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미 렉스와 교전 중인 제국 병사들이었다.
“렉스! 괜찮아?!”
렉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명의 제국 병사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그의 육중한 몸은 훈련된 병사들의 공격에도 끄떡없었지만, 숫적으로 열세였다. 제국 병사들의 레이저 소총에서 붉은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쉬이잉— 쉬이잉—!
레이저가 카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몸을 숙여 피하며 플라즈마 커터의 방향을 틀었다. 뜨거운 열기가 금속을 녹이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의 병사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의 방어구가 녹아내리는 냄새가 역겨웠다.
“세라! 다른 출구 있어?!” 카인이 소리쳤다.
“찾아보고 있지만, 모든 시스템이 봉쇄되고 있어! 젠장, 이건 함정인가?!”
카인의 머릿속에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 제국이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보급 창고는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렉스, 후퇴!” 카인이 외쳤다.
“안 돼! 저 안쪽에… 반란군에게 필요한 물자들이 있어!” 렉스는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명의 병사를 날려 버렸다.
그때, 창고 안쪽에서 육중한 금속 발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콰앙—!
제국군 최고 전투 병기 중 하나인 ‘타이탄 보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갑옷을 두른 병사는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키에, 양팔에는 회전식 개틀링 레이저와 플라즈마 캐논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 육중한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다.
“젠장, 타이탄이라고?!” 렉스조차도 경악했다.
세라의 목소리도 통신기를 뚫고 비명을 질렀다. “카인! 렉스! 당장 도망쳐! 이건 상대할 수 없어!”
타이탄 보병의 눈에서 붉은 센서광이 번뜩이더니, 플라즈마 캐논이 그들을 조준했다.
위이이잉—!
장전되는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울렸다. 피할 곳이 없었다. 카인은 본능적으로 렉스를 향해 몸을 던지며 외쳤다.
“렉스! 뛰어!”
동시에 플라즈마 캐논에서 맹렬한 에너지 포화가 쏟아져 나왔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창고를 뒤흔들었다. 빛과 열기가 카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는 렉스의 몸을 감싸 안은 채, 뜨거운 폭풍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인가?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 민중의 희망도, 그들의 작은 반항도?
하지만 죽음은 오지 않았다.
폭발의 충격이 그들을 뒤편의 금속 벽으로 내동댕이쳤다. 쿵—! 둔탁한 충격이 온몸을 때렸지만, 카인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눈을 뜨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폭발로 인해 무너져 내린 창고 벽 틈새로, 도시의 밤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 틈새로, 작은 수송선 한 대가 접근하고 있었다.
“카인! 렉스! 붙잡아!”
세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송선은 바로 그녀가 조종하는 탈출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준비해둔 마지막 탈출로였다.
“젠장! 운도 따라주는군!” 렉스가 겨우 몸을 일으키며 환호했다.
타이탄 보병은 두 번째 포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플라즈마 캐논이 다시 위이이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둘러!” 카인이 렉스를 밀어붙이며 무너진 벽 틈새로 몸을 날렸다. 그들의 눈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죽음의 그림자였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새벽의 희망이었다.
세라의 수송선이 재빨리 하강하며 그들을 태웠다. 타이탄 보병이 마지막 포격을 가했지만, 이미 수송선은 좁은 틈새를 통해 밤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휴우… 간신히 살았다.” 렉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카인은 창밖으로 멀어지는 제국 보급 창고를 응시했다. 무너진 벽 너머로 붉은 경고등이 여전히 번뜩이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실패했지만, 얻은 것이 있었다. 제국이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제국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것.
“젠장, 물자는 하나도 못 건졌잖아!” 렉스가 불평했다.
세라는 조종간을 잡은 채 피식 웃었다. “어차피 함정이었어.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함정에서 빠져나왔다는 것, 그리고 제국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를 얻었지.”
카인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번 실패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과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봤다. 저 별들 아래, 수많은 평민들이 제국의 폭정 아래 신음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자신들은 기필코 이 어둠을 걷어내야 했다.
수송선은 밤하늘을 가르며 더욱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아래에서는 제국의 불빛이 도시를 뒤덮고 있었지만, 그들의 심장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뜨거웠다. 이 작은 반항의 불꽃은 언젠가 거대한 제국을 태워버릴 맹렬한 불길이 될 것이었다. 어쩌면, 아주 머지않은 미래에.
그는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다. 거대한 제국이여, 우리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어라. 기계음을 뚫고, 너희의 오만을 무너뜨릴 우리의 목소리를.*
수송선은 검은 밤하늘 속으로 사라져 갔다. 도시 아래, 제국의 경보음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제, 또 다른 반란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처럼 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