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비명이 고막을 찢었다. 콰앙!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거대한 돌기둥이 산산조각 났다. 돌무더기가 사방으로 튀었고, 그 파편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진우의 뺨을 스쳤다.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지만, 진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 거대한 괴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크아아아악!”
심연의 수호자. 검푸른 비늘로 뒤덮인 덩치. 굵고 튼튼한 팔에는 날카로운 바위 돌기가 돋아나 있었고, 핏빛으로 번뜩이는 두 눈은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 진우는 괴물의 움직임을 읽었다. 거대한 주먹이 다시금 진우의 머리를 노리고 쇄도해왔다.
휘익!
진우는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듯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그의 손에 들린 단검, ‘밤의 속삭임’이 번뜩였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괴물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쉬이익! 검푸른 비늘 틈새로 단검이 찔러 들어가자, 끈적이는 검은 액체가 솟구쳤다.
“케에엑!”
고통에 찬 비명. 수호자는 비틀거리며 진우를 향해 거친 팔을 휘둘렀다. 진우는 숙련된 사냥꾼처럼 정확히 약점을 노렸다. 비늘이 가장 얇고, 신경 다발이 집중된 목덜미.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검을 뽑아 다시 한번 찔러 넣었다.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수호자의 몸이 경련하더니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진동이 던전 전체를 뒤흔들었다.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팍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차가운 잿빛 눈동자만이, 쓰러진 괴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회의감과 함께, 체념과도 같은 공허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괴물의 시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심연의 핵’을 뽑아냈다.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이것이 그의 삶이었다.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전리품을 얻고, 다시 다음 던전으로 향하는 것. 그 속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직 하나, 그의 심장을 태우는 증오만이 그를 움직였다.
***
그때는 달랐다. 3년 전,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함께 꾸는 친구가 있었다. 김현석.
“진우야! 이번 던전만 성공하면, 우리 드디어 C등급 헌터 길드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현석은 언제나 밝고 활기찼다. 진우가 가진 실력과 차분함을 현석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완벽하게 보완해주었다. 진우는 검사였고, 현석은 마법사였다. 둘은 최강의 조합이라 불렸다. 많은 길드에서 그들을 탐냈지만, 둘은 굳이 길드에 소속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둘만의 길드를 세워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꿈이었다.
‘어둠의 심장부’ 3층. 당시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던전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확신에 차 있었다.
“진우야, 이 던전에서 S급 보물 하나만 건지면 우리 인생 역전이야! 분명 전설에 나오는 ‘영원의 심장’이 여기 있을 거야!”
탐욕스러운 빛이 현석의 눈동자에 잠시 스쳤지만, 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현석의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최하층 보스룸. 거대한 그림자 군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그림자 병사들을 소환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진우는 최전선에서 그림자 병사들을 막아섰고, 현석은 후방에서 강력한 마법으로 지원했다.
“현석아! 방벽 마법 부탁한다! 그림자 병사들이 너무 많아!” 진우는 외쳤다.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알았어! ‘강철 방벽’!” 현석의 외침과 함께 투명한 마력 방벽이 진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들려온 현석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뇌리를 스쳤다.
“미안하다, 진우야.”
미안하다? 진우는 의아함에 뒤를 돌아보았다. 현석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푸른색 마력 덩어리가 진우를 향해 쏘아졌다.
“뭐…?”
진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푸른 마력은 그를 향해 쏘아진 것이 아니었다. 그 마력은 진우 앞에 세워진 ‘강철 방벽’을 꿰뚫었다. 그리고 방벽은 산산조각 나며 진우의 몸을 덮쳤다.
“크악!”
예상치 못한 배신. 그 충격은 물리적인 고통보다 훨씬 끔찍했다. 방벽 파편과 그림자 병사들의 공격에 진우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쓰러져 가는 몸으로 현석을 올려다보았다.
현석은 무심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우야, 넌 너무 착해. 너무 강해서 방해돼. ‘영원의 심장’은 나 혼자 가져야만 해.”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탐욕만이 번뜩였다.
“잘 가라, 내 유일한 친구.”
현석은 거대한 그림자 군주를 향해 강력한 마법을 쏟아부으며, 쓰러진 진우를 미끼로 삼아 보스를 유인했다. 진우는 그렇게 던전 바닥에 버려졌다. 그림자 군주의 그림자가 그를 덮쳤고, 그는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의 문턱에서, 진우는 눈을 번쩍 떴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죽을 수 없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김현석은 영원히 잘 살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그의 의식 저편에서 기이한 힘이 솟아났다. 심연의 어둠과 같은, 차갑고 강력한 힘.
[숨겨진 재능 ‘심연의 포식자’가 각성합니다.]
[사념을 흡수하여 성장합니다.]
[현재 레벨: 1]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번쩍였다. 진우는 그 알 수 없는 힘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였다. 쓰러져 있던 그림자 병사들의 잔해가 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는 생존했다. 처참한 모습으로, 모든 것을 잃은 채로.
그때부터였다. 그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가 되었다. 김현석, 그 이름을 심장에 새기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
진우는 ‘심연의 핵’을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바닥에 남아 있는 차가운 기운이 과거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김현석….”
나지막이 읊조린 이름에, 던전의 차가운 공기가 미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3년. 지옥 같은 3년이었다. 그는 김현석이 버리고 간 던전의 심연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심연의 포식자’라는 알 수 없는 능력은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를 인간성을 잃은 괴물로 만들었다. 그는 몬스터의 잔해를 흡수하며 강해졌다.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며, 더 깊고 위험한 던전들을 헤쳐나갔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김현석보다 강해지는 것. 그가 자신을 버린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
그는 현석이 ‘영원의 심장’을 얻은 후, 유명한 S등급 길드 ‘여명 기사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승승장구하며 승급하고, 대중의 찬사를 받는 영웅이 되었다고 했다. 진우는 비웃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희생 위에 세워진 탑이었다.
진우는 쓰러진 ‘심연의 수호자’의 시체에서 미약하게 퍼져 나오는 잔류 마력을 흡수했다. 몸속의 ‘심연의 포식자’가 만족스럽게 포효하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던전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던전은 그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었다. ‘어둠의 심장부’의 심층부에는 과거 ‘여명 기사단’이 탐색에 실패했던 미지의 구역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김현석이 탐내는 또 다른 전설급 보물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기다려라, 김현석.”
진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 안에는 어둠과 증오가 뒤섞여, 마치 심연 그 자체를 담고 있는 듯했다.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네 손으로 직접 망가뜨리게 해 줄 테니.”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다음 목표는 정해졌다. 복수의 서막은 이제 막 시작될 뿐이었다. 그의 그림자가 던전의 어둠 속으로 깊이 녹아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