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지하의 숨결
청운학부.
천계와 속세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선 듯, 새하얀 봉우리들이 구름을 뚫고 솟아 있었다. 그 봉우리들을 병풍 삼아 자리 잡은 학부는 거대한 용이 똬리를 튼 형상이었다. 수천 년 역사가 겹겹이 쌓인 고풍스러운 기와지붕들은 영기(靈氣)를 머금어 은은한 광채를 뿜었고, 마법진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누각들 사이로는 신선들이나 사용할 법한 비행선들이 오갔다. 이곳은 대륙 최고의 마법 수련기관이자, 신선들이 강림하여 학문을 설파했다는 전설이 깃든 성지였다.
이진은 그런 청운학부의 잡무반 소속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학부의 가장 변두리에 위치한 하급 기숙사, 그것도 늘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북향 방에서 창문 밖으로 펼쳐진 학부의 전경을 멍하니 응시하는 게 일과였다. 그는 영기 친화도가 지극히 낮은 학생으로 분류되었고, 그 흔한 검기(劍氣) 한 번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는 애물단지였다. 다른 이들이 환상의 마법을 수련하고 정령들과 교감할 때, 이진은 오래된 서고의 먼지를 털고, 식당에서 식자재를 나르는 잡일을 도맡았다.
“젠장, 대체 이게 언제적 책들이야?”
이진은 먼지로 뒤덮인 손등으로 연신 기침을 해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은 고대 서고의 특별 청소 담당이었다. 이 서고는 학부 설립 초기의 기록들과 금지된 마법에 대한 단편적인 내용들이 보관되어 있다고는 들었지만, 정작 접근이 허락된 자는 거의 없었고, 청소조차도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그만큼 방치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답답했다. 낡은 나무 책장들은 기우뚱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표지를 알 수 없는 두꺼운 책들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었다. 이진은 빗자루와 먼지떨이를 든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의 책들은 대충 훑어봐도 수천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진은 대충 먼지를 털어내다가, 책장들 사이의 가장 안쪽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훨씬 어둡고, 축축한 냉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문득 그의 발에 무언가 걸렸다.
“윽!”
낮게 신음하며 비틀거린 이진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은 것은 차가운 돌바닥이었다. 여느 돌바닥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감각. 하지만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바닥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화강암이었으나, 이진의 발에 걸렸던 부분은 낡은 나무판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엉성하게. 마치 급하게 무언가를 가려놓은 듯한 느낌. 호기심이 발동했다. 원래대로라면 보고하지도 않고 대충 지나쳤겠지만, 이진은 잡무반의 낙제생이었을지언정, 그의 호기심만큼은 학부 내 그 어떤 수석 학생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손에 든 빗자루의 손잡이 부분으로 나무판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텅 비어 있는 듯한 둔탁한 소리. 이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고대 서고는 늘 그의 그림자마저 집어삼킬 듯 고요했다.
조심스럽게 낡은 나무판을 걷어냈다. 썩은 나무 냄새와 함께, 검은 심연이 드러났다. 지하로 향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다. 계단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듯했다.
이진은 잠시 망설였다. 학부 내 모든 지역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관리되고 있었지만, 이 서고는 예외였다. 게다가 학부에는 엄격한 금지 구역들이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학부 지하 심층부’였다. 이유를 묻지 말 것, 발을 들이지 말 것. 그것이 학부의 절대적인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진의 눈앞에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놓은 듯한 인위적인 통로였다. 그 금지된 지하 심층부로 향하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 오싹함은 곧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젠장… 미쳤지, 내가.”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학부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발길은 이미 어둠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손에 든 작은 영석 등불을 밝히자, 희미한 빛이 계단의 끝을 비췄다. 오래된 돌계단은 닳고 닳아 있었고, 축축한 이끼가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한 칸, 두 칸. 발을 내디딜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기 중의 영기가 희박해지는 대신,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영기와는 다른, 차갑고 탁한 기운. 마치 거대한 짐승이 깊은 잠에 빠져 토해내는 숨결 같았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단의 끝에 다다랐을 때, 이진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거대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은 온통 붉은 녹으로 뒤덮여 있었고, 중앙에는 고대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진은 등불을 가까이 가져가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학부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탁월했던 것이 고대어 해독 능력이다. 그의 눈이 빠르게 문자를 훑었다.
**“모든 길의 끝, 모든 생명의 근원, 태초의 울림.
탐욕에 눈먼 자, 고통을 알리라.
빛을 거부한 어둠, 영원히 봉인되리라.”**
그는 중얼거리듯 문구를 읽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태초의 울림? 빛을 거부한 어둠? 대체 이 철문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이진은 조심스럽게 철문에 손을 댔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감촉과 함께, 문 전체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아악!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고통과 절규,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분노가 뒤섞인 음파가 뇌리를 뒤흔들었다. 이진은 너무 놀라 뒷걸음질 쳤고, 영석 등불을 놓쳐버렸다. 등불은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져 깨지며 마지막 빛마저 삼켜버렸다.
다시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그리고 여전히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심장을 찢는 듯한 절규.
이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철문 너머에 있는 것은, 단순한 유적이나 금지된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그리고 *끔찍하게* 고통받고 있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청운학부 지하에 수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그의 등골을 타고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철문에 새겨진 고대 문자 중, ‘봉인’이라는 단어 주변의 붉은 녹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그리고 이진의 눈에, 철문 틈새로 아주 미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붉은색. 피처럼 진득한 붉은색의 빛.
그 빛은 마치 그의 혼을 집어삼킬 듯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이진은 그 틈새 너머에서, 무엇인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는 섬뜩한 착각에 빠졌다.
*철컥.*
무언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철문 안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천 년 봉인이, 지금 막 깨어나려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