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제일무림대축전: 곰팡이 필 날은 없다
## 1화. 이보시오, 거기 아가씨! 제정신이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우렁찬 기합과 함께 팔짱을 낀 사내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의 눈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면을 응시했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노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아주 좋아! 이번 천하제일무림대축전은 우리 문파가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지금 온 무림이 들썩이고 있었다. 이름하여 ‘천하제일무림대축전’! 100년에 한 번 열리는 이 거대한 축제는 단순한 무술 대회가 아니었다. 각 문파의 자존심은 물론이요, 승리한 문파에게는 향후 100년간 무림의 모든 중대사에 개입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 즉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 그래서인지 온갖 기인괴사, 은둔 고수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대회가 열리는 ‘비룡각’ 일대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리고 그 광경 속, 비룡각으로 향하는 번잡한 인파 사이를 뚫고 짐짝처럼 질주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흡! 핫! 흐읍! 으차!”
짧은 다리로 파닥파닥 뛰는 걸음걸이는 마치 닭이 모이를 쪼듯 다급했고, 땀에 젖어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은 영락없이 방금 진창에서 굴러온 몰골이었다. 등에 멘 낡은 보따리는 위태롭게 춤을 추었고, 그 안에서 삐져나온 뻥튀기 조각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저기요! 길 좀 비켜주세요! 저 지금 엄청 급하단 말이에요!”
소리였다. 한소리.
그녀는 지금, 천하제일무림대축전 참가 등록 마감 시간을 불과 십여 분 앞두고 필사의 질주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늦은 데에는 몇 가지 변명이 있었다. 어제 새벽까지 ‘야식의 요정’이라는 별명답게 밤늦도록 주방에서 문파원들의 간식을 만들었지 뭔가. 게다가 아침에는 평소에는 쳐다도 안 보던 ‘사부님의 보물 1호’인 난초 화분에 물을 줘야 했고, 가는 길에는 길고양이가 아파 보여서 약국에 들렀다 오느라…
“젠장, 젠장, 젠장! 등록 마감 30분 전인데, 왜 이렇게 멀어! 비룡각 이 요물!”
속으로 온갖 비명을 지르며 달리던 소리의 시야에 거대한 건축물이 들어왔다. 은은한 비취색 기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로 비룡각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비룡각 입구는 이미 등록을 마친 각 문파의 고수들과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흐흑, 안 돼!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소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다 보니 문파의 명운이 걸린 이 중요한 대회에 자신까지 출전하게 되었지만, 적어도 등록만큼은 무사히 마쳐야 했다. 사부가 “네가 나가는 게 훨씬 승산이 높을 거야!”라고 외치며 등 떠민 이유를 지금껏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불쌍한 문파원들의 굶주린 눈빛과 “우승하면 평생 쌀밥에 고기 반찬이래요!”라는 문파 막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 쌀밥! 고기 반찬! 그리고 우리 문파의 명예!’
소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효율적인 동선이 계산되고 있었다. 좁은 틈새, 스쳐 지나가는 인파, 그리고… 저기! 저 어깨 넓은 대장부의 옆구리 틈새!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우당탕탕!”
몸을 한껏 웅크린 소리는 흡사 고양이처럼 좁은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녀의 기술은 놀랍도록 유려했고, 감탄할 만큼 재빨랐다. 마치 비단처럼 미끄러지듯, 혹은 바람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완벽했던 그 움직임은…
“읍!”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돌부리에 걸리고 말았다.
“흐갸아아아아악!”
균형을 잃은 소리의 몸은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등에 멘 보따리 속 뻥튀기와 찢어진 만두 조각들이 폭죽처럼 흩날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녀는 마치 거대한 짐짝처럼 누군가의 등짝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으읍…?! 으읍!”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착지한 지점에서는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의 얼굴은 그야말로 땅에 코를 박은 형상이었고, 그녀의 손은 얼떨결에 앞에 있는 남자의 허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이 그의 고급스러운 비단 옷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이보시오, 거기 아가씨! 제정신이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소리의 귓전을 때렸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싸늘한 음성이었다. 소리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굳게 닫힌 문이 아닌,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등은 탄탄했고, 검은 비단 옷은 한 점 얼룩 없이 깔끔했다. 그리고 그 옷 위에는… 방금 소리가 코 박고 내려앉은 탓에 찍혀버린 뻥튀기 조각과 땀자국이 선명했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소리는 자신의 행동을 뒤늦게 깨닫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남자의 어깨는 묵직했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이글거리는 태양마저 얼어붙게 만들 것 같았다. 주변의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더니, 이내 정적과 함께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거기, 비켜라.”
또 한 번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소리는 얼어붙었다.
눈앞의 남자는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절세미남이었다. 날카롭게 뻗은 콧날, 완벽하게 조각된 듯한 턱선, 그리고 차가운 얼음처럼 빛나는 검은 눈동자. 그는 비단으로 된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검은 검집에 싸인 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는 은은한 냉기가 감돌았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살갗이 쭈뼛거릴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는 다름 아닌, ‘냉철한 검선’이라 불리는 류진이었다.
온 무림의 내로라하는 문파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는 ‘벽운문’의 젊은 고수이자,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 0순위. 그의 검은 한 번 뽑히면 반드시 피를 보았고, 그의 시선은 상대의 영혼마저 꿰뚫는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그의 완벽한 옷 위에 지금, 한소리의 땀자국과 뻥튀기 조각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류진의 검은 눈동자가 소리의 얼굴 위에서 차갑게 멈췄다. 그의 시선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소리의 심장은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이런 무례한.”
그의 입술이 차분하게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어딘가 모를 분노가 서려 있는 듯했다.
“흐읍… 저, 저기… 그게…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해서 그만…”
소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거렸다. 차가운 살기가 온몸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류진은 소리의 횡설수설을 끊고 검은 도포의 어깨에 붙은 뻥튀기 조각을 손으로 툭 털어냈다. 작은 조각이 바닥에 떨어지자, 주변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작은 조각으로 향하는 듯했다. 마치 그 조각 하나가 온 천하를 무너뜨릴 핵폭탄이라도 되는 양.
“급하다 해도… 이리 타인의 등에 올라타는 법은 없지 않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서늘한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소리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어버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 같은 이가 이번 축전에 참가할 자격이나 있겠소?”
류진의 말은 비수처럼 소리의 가슴에 박혔다. 평생 쌀밥과 고기 반찬을 꿈꾸는 문파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소리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었으니까.
그 순간, 비룡각 입구 쪽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하제일무림대축전, 참가 등록 마감 3분 전입니다! 등록을 원하시는 분은 서둘러 주십시오!”
소리의 눈이 다시 번뜩였다. 3분!
이대로 류진에게 잡혀 있다가는 등록도 못 하고 문파원들의 쌀밥과 고기 반찬이 날아가 버릴지도 몰랐다!
소리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류진의 옆구리 틈새를 향해 몸을 날렸다.
“흐읍! 핫! 으랏차차!”
류진은 예상치 못한 소리의 행동에 살짝 놀란 듯 눈썹을 움찔거렸지만, 워낙 재빠른 소리의 움직임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소리는 그의 옆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죄송해요! 등록 마감 임박이라구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그녀는 전속력으로 비룡각 안으로 돌진했다. 그녀의 뒤에는 뻥튀기 조각을 털어내던 손을 허공에 든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류진만이 남아 있었다.
정적.
그리고 이내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저 여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만!”
“류진 님에게 저런 무례를 범하다니… 살아남지 못할 거야!”
류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비룡각 안으로 사라진 소리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에는 당혹감, 불쾌함,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아주 잠시 동안, 흥미로운 빛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감히.”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올라갔다.
“이보시오, 한소리 아가씨. 우리, 곧 다시 보게 될 것 같구려.”
아직 비룡각 입구의 등록처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소리는 자신의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기운을 느끼며 소름이 돋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쌀밥과 고기 반찬의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자신의 목숨은 보전할 수 있을까?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대축전의 서막은, 이렇게 우당탕탕 요란하게 열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