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증기, 검은 심장
차가운 쇠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새벽의 증기도시, 그 거대한 심장이 밤의 어둠 속에서 묵직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톱니바퀴들이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쉭쉭거리는 증기 분출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강철 크레인의 둔탁한 굉음이 도시의 자장가처럼 고막을 때렸다. 그는 그 모든 소음에 익숙했다. 아니, 익숙해져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자의 축성이자, 그의 복수가 춤출 무대였으니.
칼릭스는 그림자처럼 건물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낡은 작업복 위로 어둠이 스며들었고, 그의 얼굴은 땀과 기름때로 번들거렸지만, 잿빛 눈동자만은 차가운 강철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복잡한 톱니바퀴와 유압 실린더로 이루어진 기계 의수였다. 과거의 영광을 한 줌 재로 만들어버린 폭발 속에서 잃어버린 육신의 일부. 하지만 이제 그것은 그의 분노를 담아낸, 더욱 치명적인 무기가 되어 있었다.
“저길 지나야 해.”
낮게 으르렁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증기에 젖어 축축한 공기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은 거대한 공장 건물, ‘크로노스 기계 공학’의 가장 높고 견고한 탑을 향해 있었다. 카이저. 그의 옛 친구이자,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배신자. 그 배신자의 심장이 뛰는 곳.
오늘 밤, 그는 심장에 비수를 꽂을 참이었다.
수십 미터 높이의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녹슨 파이프와 삐걱거리는 환풍구,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증기가 그의 길을 방해했다. 하지만 칼릭스의 기계 의수는 인간의 손보다 더욱 정확하고 강력하게 돌출된 구조물들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에 달린 갈고리가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며 틈새에 박히고, 팔목의 유압 장치가 섬세하게 힘을 조절하며 그의 몸을 밀어 올렸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사투하듯 기어 올라갔을까. 마침내 그는 목표했던 창문 앞에 다다랐다. 창살은 두껍고 견고했으며, 안쪽에는 작은 기계 새가 앉아 경계를 서고 있었다. 금속으로 된 날개와 붉은 눈을 가진 경비용 오토마톤이었다. 카이저, 그 녀석은 언제나 자신의 발명품을 과신했지. 칼릭스, 그의 진정한 스승이었던 자신을 능가한다고 착각하면서.
칼릭스는 잠시 숨을 골랐다. 눅진한 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복수의 냄새가 그의 피를 끓게 했다.
그의 주머니에서 작고 섬세한 도구가 튀어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가느다란 금속 촉수들이 창살의 잠금장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주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찰칵, 하는 짧은 울림과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동시에 경비 오토마톤의 붉은 눈이 번쩍였다.
‘젠장.’
오토마톤의 날개가 펄럭이며 경고음을 내기 직전, 칼릭스의 기계 의수가 번개처럼 뻗어나가 오토마톤의 머리 부분을 으스러뜨렸다. ‘쩌적’ 하는 금속 파열음과 함께 기계 새는 싸늘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 추락했다. 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정확했다.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단련하고 또 단련한 결과였다. 이제 그의 몸은 복수만을 위한 살아있는 무기였다.
창문을 넘어 내부로 진입하자, 거대한 증기기관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십 개의 황동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거대한 플라이휠이 둔탁하게 회전하며 바닥을 울렸다. 증기가 새어 나오는 소리는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의 숨소리 같았다. 이곳은 크로노스 기계 공학의 핵심이자, 카이저가 최근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다는 신형 증기 동력원의 시험 가동실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 완성한, 또 하나의 거짓된 성공.
칼릭스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가 허리춤에서 작은 금속 상자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 표면에는 복잡한 패턴의 회로가 새겨져 있었고, 작은 증기압 게이지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작은 상자 하나가 카이저의 거대한 꿈을 한 순간에 증기 속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터였다. 아니, 날려버릴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기계들 사이를 헤쳐 나갔다. 증기기관의 열기는 그의 땀샘을 자극했고, 끈적한 기름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어디선가 기계공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밤인데도 누군가 야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더욱 몸을 낮추고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봐, 자네, 연료 밸브는 제대로 잠갔나? 증기압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네, 팀장님. 두 번 세 번 확인했습니다. 초기 가동이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두 명의 기계공이 플라이휠 근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칼릭스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거대한 동력원의 심장부, 가장 큰 압력 밸브가 있는 곳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금속 상자는 정확히 그곳에 연결되어야 했다.
그는 은밀하게 밸브 뒤편으로 다가갔다. 두 기계공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계기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칼릭스는 그들의 시야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곳에서 재빨리 움직였다. 기계 의수의 손가락 끝에서 얇은 드릴이 튀어나와 밸브 표면에 구멍을 뚫었다. 쐐액, 하는 작은 금속 마찰음이 증기 소리에 묻혔다.
구멍이 뚫리자, 그는 조심스럽게 금속 상자를 연결했다. 상자에서 얇은 케이블들이 뻗어 나와 밸브의 내부 구조와 연결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었다. 이것은 카이저가 자랑하는 그 ‘혁신적인’ 동력원의 모든 연산 체계와 압력 조절 장치를 한순간에 마비시키고, 제어 불능의 과부하를 일으킬 정교한 시한장치였다. 폭발은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진짜 목적은 그의 오만에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그의 명성과 미래를.
모든 연결이 완료되었다. 칼릭스의 엄지손가락이 상자의 작은 스위치를 눌렀다. ‘찰칵’ 소리 대신, 상자의 중앙에 작은 붉은 불빛이 깜빡였다. 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이 작은 빛은 카이저의 거대한 성에 균열을 일으킬 전조였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여전히 기계공들은 계기판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어떤 재앙이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 채. 칼릭스는 그들의 무지함에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비웃음은 곧 비정한 복수의 칼날이 되어 카이저에게 돌아갈 터였다.
건물 밖으로 나온 칼릭스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공장의 굴뚝에서는 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검은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핏빛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그의 기계 의수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시작에 불과해, 카이저.”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증오의 무게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때였다.
공장 내부에서 웅장한 기계음이 갑자기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둔탁하던 플라이휠의 회전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증기 분출음은 귀를 찢을 듯한 비명으로 변해갔다. 기계공들의 다급한 외침이 내부에서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압력이 미쳤어! 비상 정지! 비상 정지!”
굉음과 함께 공장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칼릭스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이 모든 소음은 그에게는 오직 복수의 교향곡일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다음 계획을 위해, 다음 희생양을 위해.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증기기관이 억눌렸던 모든 힘을 폭발시키며, 공장 한가운데서 붉은 섬광과 함께 거대한 굉음을 토해냈다.
쾅!
화염과 증기가 뒤섞인 폭발의 충격파가 밤하늘을 갈랐다. 그 빛은 칼릭스의 잿빛 눈동자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타올랐다. 카이저, 네가 나의 세계를 박살 냈듯이, 나 또한 너의 세계를 산산조각 낼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이것이 시작이었다. 피로 물들 톱니바퀴의 시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