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시간: 벽 속의 속삭임

이른 새벽의 고요는 도시의 선물과도 같았다. 이지훈은 늘 그랬듯이 간밤의 꿈자리를 털어내려 애쓰는 대신,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침대 옆 협탁 위의 휴대폰을 더듬거렸다. 액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흐릿한 시야에 첫 현실의 단서를 제공했다. 새벽 4시 37분.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 그러나 며칠째 이어지는 기묘한 불면증은 그의 생활 리듬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의 아파트는 서울 시내 한복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신축 고층 아파트의 2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 한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 첨단 스마트홈 시스템. 모든 것이 완벽했고, 지훈은 이곳을 자신의 견고한 성처럼 여겼다. 적어도 일주일 전까지는.

지훈은 얇은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쌀쌀한 새벽 공기가 맨살에 닿자 소름이 돋았다. 에어컨은 분명 꺼져 있었는데. 보일러도 밤새 돌아갔을 텐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어두웠지만, 통유리창 밖으로 희미하게 도시의 불빛이 스며들어 사물의 윤곽을 드러냈다. 어젯밤 분명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컵이 바닥에 엎질러져 있었다.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물은 이미 말라붙어 희끄무레한 자국만 남겼다.

“젠장, 또야?”

지훈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건드려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고양이라도 키우나 착각했다. 세 번째부터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반복되는 일이었다. 컵이 떨어지고, 열쇠가 사라졌다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고, 책꽂이의 책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다. 그는 집에 CCTV를 설치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니, 이미 한 번 설치를 시도했다가 엉뚱하게 전원이 나가버리는 통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는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새벽의 정적 속에서 유리 조각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때였다.

*스르륵… 스륵…*

벽에서 나는 소리였다. 벽지 틈새로 무언가 기어 다니는 듯한, 아주 작고 섬세한 소리. 쥐? 벌레? 지훈은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소리는 거실의 벽 한가운데, 그의 눈높이쯤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벽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멈췄다. 잠시 숨을 죽이고 기다리자 다시 시작되었다.

*스르륵… 스륵… 툭…*

그리고 마지막에 작게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 마치 벽 안에서 작은 돌멩이가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지훈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쥐는 저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벌레는 더욱이 아니다. 그의 아파트는 완벽한 신축이었고, 벽 안에서 그런 소리가 날 리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벽을 두드렸다.

*툭, 툭, 툭.*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었다. 소리는 멎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돌아서려 했다. 어쩌면 그저 환청일지도 모른다고 애써 합리화했다. 불면증 때문에 예민해진 탓일 수도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찾아… 줘…”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아니, 너무나 오래 잊혀진 것을 겨우 기억해내려는 듯한, 힘없이 갈라진 목소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움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지훈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거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창밖의 도시 풍경만이 멀리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목소리가 들린 듯한 벽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에, 아까는 분명 없었던 것이 있었다.

벽지 위에, 아주 흐릿하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얼룩이 생겨 있었다. 옅은 갈색을 띠는 얼룩은 마치 흙먼지가 묻은 손자국처럼 보였다. 그 얼룩 안에는 희미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니, 새겨졌다기보다는, 마치 벽지 속에서 잉크가 번져 나오듯 서서히 드러나는 글씨였다. 지훈은 홀린 듯 그 글씨를 응시했다.

오래된 한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庚寅 (경인)”**

지훈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경인? 그게 뭐지? 연도를 나타내는 간지(干支)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게 왜 지금 이 아파트의 벽에서 나타나는 걸까?

그 순간, 거실의 모든 불빛이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완벽한 암흑이 지훈을 덮쳤다. 그의 비명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암흑 속에서, 벽에서, 아니, 벽 *안에서*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또렷하게, 바로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찾아줘. 나의…… 나의 시간을.”

새카만 어둠 속,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발악했다. 지훈은 벽에 나타난 ‘경인’이라는 두 글자가, 그가 이제껏 겪었던 모든 기이한 현상들의 시작이 아니라,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서막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거대한 시간의 장난을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