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녹슨 심장의 고동
지상의 모든 증기가 모여 숨 쉬는 도시, 아스카론은 오늘 밤도 뿌연 안개와 기계의 웅장한 울림 속에 잠겨 있었다. 황동과 강철로 엮인 거대한 건물들은 뼈대만 남은 유령처럼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증기 기관차와 비공정들은 지친 비명 같은 기적 소리를 토해냈다. 매캐한 석탄 연기 냄새와 눅진한 기름 냄새가 뒤섞여 공기를 가득 채웠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으로 그 차가운 금속성 비린내가 파고드는 듯했다.
도시의 가장 밑바닥, 녹슨 파이프와 낡은 환풍구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 공방에서 카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번들거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한때 섬세하고 정교했던 손은 이제 굳은살과 상처로 가득했고, 그 손에 들린 렌치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거대한 증기 압축기를 조이고 풀었다. 찌그러진 작업등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거대한 기계 부품들 위로 흔들렸다.
“젠장… 망할 놈의 압력 조절기가 또 문제를 일으키는군.”
카이는 나직이 욕설을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거친 사포처럼 긁혔고, 그 속에는 한없는 피로와 함께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벌써 며칠 밤낮을 새워가며 이 증기 압축기를 손보고 있었다. 이 기계는 단순한 공방의 장비가 아니었다. 낡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카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이자, 동시에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비극의 씨앗이었다.
거대한 보일러 속에서 증기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후우우우웅- 철컥, 철컥. 낡은 톱니바퀴들이 비명을 지르며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카이의 심장이 으스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문득 눈을 감았다.
***
*“카이, 우리의 증기 심장은 이 도시를 바꿀 거야! 아니, 세상을 바꿔 놓을 거라고!”*
*렌의 눈은 꿈으로 반짝였다. 낡은 공방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두 사람은 밤새도록 설계도를 펼쳐놓고 미래를 논했다. 거대한 증기 심장은 단순한 엔진이 아니었다. 기존의 어떤 기관보다도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그들의 모든 열정과 지식을 쏟아부은 역작이었다. 카이는 기계의 섬세한 구조를 설계했고, 렌은 그 작동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발표하는 데 탁월했다.*
*“그래, 렌. 이 심장이 완성되면… 더 이상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떨지 않아도 될 거야.”*
*카이의 목소리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새로운 새벽을 가져다줄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그 새벽은 오지 않았다. 대신, 카이의 머리 위로 무거운 밤이 찾아왔다.*
*그들의 ‘증기 심장’이 드디어 완성되던 날 밤이었다. 카이는 마지막 조립을 마치고 벅찬 가슴을 안고 렌을 찾았다. 하지만 렌은 없었다. 대신, 공방 문 앞에 서 있던 것은 차가운 표정의 경비병들과, 그들의 손에 들린 체포영장이었다.*
*“제국 기술을 훔치고 불법 개조한 혐의로 체포한다. 이 모든 설계는… 렌, 자네 친구의 고발이었다.”*
*귀를 의심했다. 아니, 심장을 찢는 고통이었다. 렌?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가 나를… 고발했다고? 그의 시선은 텅 빈 공방 한가운데, 반짝이는 황동 케이스 안에 고이 담겨 있던 ‘증기 심장’으로 향했다.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카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배신감이라는 거대한 망치가 그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때 렌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마 지금쯤… 제국 의회에서, 혹은 막강한 기업의 중역들 앞에서, 그들의 ‘증기 심장’을 자신의 단독 발명품으로 소개하며 환호성을 받고 있었겠지. 카이가 차가운 감옥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 렌은 빛나는 무대 위에서 영광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
“렌…!”
카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름은 증기 속에서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는 다시 렌치를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자, 굳은살 박인 피부 아래로 힘줄이 툭 불거졌다. 그때의 치욕과 배신감은 아직도 그의 심장 한가운데 녹슨 못처럼 박혀 있었다.
카이의 시선은 공방 한쪽 구석에 놓인 거대한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아래에는 아직 미완성인 거대한 기계가 숨겨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천막을 걷어냈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것은 마치 거대한 거미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전투 자동인형이었다. 2미터에 육박하는 강철 프레임은 아직 뼈대만 남아 있었지만, 그 거대한 윤곽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겼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 자동인형의 등 한가운데 자리할 예정인 거대한 원통형 구멍이었다. 카이는 그 구멍을 응시했다. 그곳에 들어갈 것은… 바로 렌이 훔쳐간 ‘증기 심장’의 원리를 역설계하여, 카이 스스로 다시 만들어낸 새로운 ‘심장’이었다.
“네놈이 내 꿈을 훔쳐갔다면… 나는 네놈의 파멸을 설계해주마.”
카이는 자동인형의 차가운 금속 프레임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희망으로 반짝이지 않았다. 오직 차갑고 끈질긴 복수심만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 자동인형은 렌이 가진 모든 것을 부수기 위한 그의 마지막 도구였다. 이름하여, ‘복수의 톱니바퀴’.
증기 압축기의 게이지가 아슬아슬하게 최대치를 가리켰다. 카이는 조심스럽게 레버를 당겼다. 쉬이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낡은 파이프들이 불안하게 떨렸지만, 카이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남은 것은 증기 심장을 완성하고, ‘복수의 톱니바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뿐이었다. 렌, 네놈이 빛의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을 때, 나는 지하의 어둠 속에서 너의 심장을 조여 올 증기를 끓이고 있었다.
카이는 몸을 일으켜 공방 문을 열었다. 매캐한 연기와 안개로 뒤덮인 아스카론의 밤하늘은 별 하나 없이 뿌옇게 흐려 있었다. 멀리,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렌의 연구소 건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은 한때 카이의 꿈이 시작되었던 곳이자, 이제는 그의 복수가 시작될 장소였다.
카이의 심장이, 녹슨 톱니바퀴처럼 거칠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이 밤, 아스카론의 어둠 속에서, 처절한 복수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