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하늘은 언제나 재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대붕괴 이후, 한때 푸르렀던 이 행성의 대기층은 미세한 잿빛 먼지로 가득 차 올랐고, 해는 종종 희미한 주황색 점처럼 보일 뿐이었다. 살아남은 인류는 흙빛 폐허 위에서 겨우 숨을 쉬며, 과거의 영광은 망각의 늪으로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나는 폐허가 된 도시의 심장부에 돋아난 작은 바벨탑, 일명 ‘새벽 보루’의 가장 높은 감시탑에 서 있었다. 사방은 녹슨 철근과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로 뒤덮여 있었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마치 죽은 자들의 손가락처럼 허공을 갈랐다. 한때 문명의 상징이었던 고층 빌딩들은 이제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서진 씨, 거기서 뭐 합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새벽 보루’의 총 관리관이자, 이 생존자 집단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강준이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피로와 걱정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살아 있었다.

“그냥… 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똑같군요.” 내가 툭 던지듯 말했다.

강준은 감시탑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몇 칸 더 올라와 내 옆에 섰다. 낡은 방탄복 차림의 그는 허리에 찬 권총집을 만지작거렸다. “똑같아서 다행인 겁니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새벽 보루는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요새였다. 높다란 장벽과 전기 철조망, 그리고 24시간 감시 체계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내부는 층층이 쌓인 컨테이너와 임시 막사, 그리고 간신히 복구된 발전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살아남은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오늘은 특이 사항 없었습니까?” 강준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늘 있는 감염체들의 배회와 서쪽 구역의 금속음, 그뿐입니다.”

우리가 ‘감염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붕괴 이후 출현한 기괴한 생명체들이었다.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도 있었고, 아예 다른 형태로 변이된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맹렬한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강준은 한숨을 쉬었다. “점점 더 힘들어지는군요. 보급품도 바닥나고 있고… 오늘 아침에도 박주임이 식량 배분 문제로 난리였습니다.”

박주임. 보급 관리 담당관 박성철. 그는 꼼꼼하고 원리원칙주의자였지만, 동시에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기로 유명했다. 보루 내에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의 철저함 덕분에 아직까지는 보급망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언제 난리가 아니었습니까?” 나는 비죽이 웃었다. 박주임은 가끔 내게도 이것저것 따져 묻곤 했다. 나의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 활동에 대한 의문이나, 배급되는 식량량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

그때, 감시탑 아래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관리관님! 강 관리관님!”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보루의 통제실에서 근무하는 젊은 대원 하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강준의 목소리가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큰일 났습니다! 박주임이… 박주임이 죽었습니다!”

강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뭐라고? 어디서?”

“보급 창고 안에서요! 밀폐된… 밀폐된 보급 창고 안에서요!” 대원은 겨우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보급 창고? 그곳은 보루 내에서도 가장 보안이 삼엄한 구역 중 하나였다. 외부인 출입은커녕, 허가받은 인원조차도 통제실의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강준은 대원을 지나쳐 계단을 거의 뛰어 내려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쿵, 쿵, 쿵. 발걸음 소리가 폐허 속의 심장 박동처럼 울렸다.

보급 창고는 보루의 지하 3층에 위치해 있었다. 두꺼운 강철 문과 지문 인식, 그리고 수시로 바뀌는 비밀번호 체계로 철저하게 봉쇄된 공간이었다. 창고로 향하는 복도는 이미 몇몇 대원들과 보루의 의료 담당관인 김 박사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충격과 혼란이 역력했다.

강준이 도착하자마자 대원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는 강철 문 앞에 섰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강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오늘 오전 8시에 정기 보급품 점검을 위해 박주임이 들어갔습니다. 저와 이 대원이 함께 입구까지 동행했고, 박주임은 평소처럼 혼자 들어간 뒤 내부 잠금장치를 작동시켰습니다. 출입 기록에도 명확히 남아있습니다.” 한 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전 10시 정각에 박주임이 나오지 않아 저희가 문을 두드렸고, 응답이 없자 곧바로 통제실에 보고했습니다. 시스템을 확인해보니… 내부 잠금장치는 그대로 작동 중이었고, 외부에서는 강제로 열 수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확인했지?” 강준이 물었다.

“창고 내부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소형 감시 카메라가 한 대 있습니다. 전원이 꺼져 있어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저희가 강제로 복구시키자… 박주임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굳게 닫힌 강철 문에 박혔다. 두께만 30cm에 달하는 이 문은 방폭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안에서 잠기면 밖에서는 폭탄을 쓰지 않는 한 열 수 없었다. 시스템 해킹은 불가능했고, 물리적 파괴는 보루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였다.

“문은 어떻게 열었지?” 나는 강준의 옆에 서서 물었다.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했다.

“아직 열지 못했습니다.” 김 박사가 답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강철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통제실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내부 잠금장치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외부에서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복구반이 비상 수동 해제 장치를 찾고 있지만…”

즉, 박성철은 외부의 침입자가 있을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스스로 문을 잠그고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CCTV를 통해 확인된 것은 그가 ‘쓰러져 있었다’는 것. 자살이라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창고 안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렸나?” 내가 물었다.

“아니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이 고개를 저었다.

강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밀폐된 공간. 외부 침입 불가.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 서진 씨, 자네가 한번 봐야겠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이 보루에서 쓸모없는 고철을 주워다 늘 괴상한 기계나 종이에 알 수 없는 기호들을 그리는 괴짜로 통했다. 하지만 가끔, 보루에서 발생하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내가 풀어낼 때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나를 ‘어둠 속의 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잠시 문을 응시했다. 무쇠처럼 굳게 닫힌 문.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죽음과 함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갇혀 있었다.

“김 박사님, 박주임의 사망 원인이 확인되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김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 영상이 너무 흐릿해서 자세한 확인은 어렵습니다만… 몸에 큰 외상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쓰러져 있었고… 그의 얼굴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다시 문을 바라봤다. 그들은 지금 가장 단순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밀폐된 보급 창고. 엄격한 보안. 그리고 그 안에서 홀로 죽은 박성철 주임.
만약 그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것은 완벽한 ‘밀실 살인’이었다.
그리고 그 트릭을 깨부술 수 있는 자는, 이곳에 나밖에 없을 터였다.

“일단 문을 엽시다.” 내가 말했다. “안에 들어가 봐야, 비로소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내 말에 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구반, 서둘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문을 열어!”

모두의 얼굴에는 한 줄기 희망과 동시에 또 다른 공포가 서렸다.
문이 열리면 무엇이 드러날까?
한 사람의 죽음? 아니면 이 잿빛 세계가 감추고 있던 또 다른 악의 조각?
나는 조용히 문 앞에서, 그 굳게 닫힌 공간이 품고 있는 수수께끼를 기다렸다.
대붕괴 이후, 인류는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곳, 새벽 보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