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균열

이현우는 아침을 신성시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하루 중 유일하게 통제 가능한 시간이었다. 해가 완벽하게 뜨기 전, 동이 트는 푸른빛이 희미하게 창을 가로지르는 그 시간. 그는 언제나 알람이 울리기 5분 전, 묘한 예감으로 눈을 떴다. 정적 속에서 침대에서 내려와, 굳이 발소리를 죽여 거실로 향했다.

1004호. 고층 아파트의 10층.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숫자는 현우에게 꽤나 안도감을 주었다. 주변의 복잡한 건물들 사이에서, 이 작은 공간만큼은 그의 견고한 섬이었다. 차분하게 커피를 내리고, 어젯밤 읽다 만 책을 펼쳤다. 종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커피 향만이 존재하는 시간. 세상의 소음이 시작되기 전, 고요의 장막이 그를 감싸는 순간.

하지만 그 장막은, 아주 미세한, 실금 같은 균열을 품고 있었다.

처음 균열을 느낀 건 지난주였다. 출근 전 현관에서 지갑과 스마트폰, 그리고 열쇠를 챙기려는데, 열쇠가 없었다. 분명 어젯밤 식탁 위에 올려두었는데.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아, 어제 자기 전에 습관처럼 코트 주머니에 넣었나?’ 하고 생각했다. 현우는 종종 그랬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자부했지만, 가끔 이런 작은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코트 주머니를 뒤지자, 예상대로 열쇠가 만져졌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어넘겼다.

이틀 뒤, 퇴근하고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늘 그래왔듯,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거실의 스탠드 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꽤나 길게.

“젠장, 또 전압 문제인가.”

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아파트가 지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가끔 노후된 전선 문제로 이런 일이 생기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 뉴스 기사가 오늘따라 유독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분명 침실 문을 닫았는데, 희미하게 ‘덜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문이 살짝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듯한 소리. 그는 피곤해서 헛들었나 싶어 뒤척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귓가에 얇은 실타래 같은 속삭임이 맴도는 것 같았다. 의미 없는, 형태 없는 소리. 마치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같기도 했다. 신경이 곤두섰다. 이 아파트에서 이런 소리가 난 적은 없었다. 그는 벽에 귀를 대봤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낡은 아파트가 내는 미세한 마찰음이 전부였다.

다음날 아침, 현우는 평소보다 10분 늦게 일어났다. 개운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갔다. 텅 빈 싱크대 한가운데, 전날 마시고 그대로 두었던 머그컵이 엎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물기가 흥건했다.

“내가 씻어두는 걸 깜빡했나? 아니, 엎어놓지는 않았는데….”

현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싱크대에 놓았을 뿐, 엎어놓지는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머그컵을 바로 세웠다. 어쩐지 등골이 서늘했다.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고, 헛것이 들리는 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착각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날 저녁, 찝찝함은 서서히 공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현우는 퇴근 후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무심하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들던 순간, 식탁 맞은편 의자가 스르륵 뒤로 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현우는 순간 동작을 멈췄다.

“뭐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분명 그가 의자를 그렇게 빼놓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 의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의자는 현우의 시선이 닿자마자 멈췄다. 마치, 누군가 밀다가 들킨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현우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의자를 응시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었고, 진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고요함만이 짓눌러오는 압력처럼 느껴졌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젠장, 피곤해서 별걸 다 보네.”

자신에게 하는 변명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이미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로 다가갔다. 의자의 다리 부분을 손으로 잡고 천천히 원래 자리로 당겼다. 아무런 저항도, 이상한 점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밥을 먹으려 했다.

그때였다.

화장실 문이 ‘쾅’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현우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젓가락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가 현관문을 닫을 때나 날 법한 육중하고도 소름 끼치는 소리.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화장실 문을 바라봤다. 분명 아까 퇴근하고 들어왔을 때, 화장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아무도 없다. 이 집에는 나 혼자다.

현우의 이성이 경고음을 울렸다. 그 어떤 합리적인 설명으로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노후된 아파트? 그건 전등이나 가끔 말썽을 일으키는 수압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문이 저절로 닫히는 건, 그것도 저런 폭력적인 소리를 내면서 닫히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머릿속에서 ‘도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곧바로 지워졌다. 문이 저렇게 닫힐 리가 없지 않은가. 도둑이라면 숨죽이고 조용히 움직일 테니. 그리고 애초에 창문은 다 닫혀 있었고, 현관문도 그가 잠갔다.

심장이 발작하듯 뛰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소리마저 거슬릴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문에 다다르자, 그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소름 끼쳤다. 천천히 돌렸다. ‘끼이익’ 하는 경첩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텅 비어 있었다.

세면대, 변기, 샤워부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현우는 숨을 들이켜자마자, 묘한 한기를 느꼈다. 평소보다 훨씬 차가운 공기. 마치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냉기가 아니었다. 피부에 닿는 순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깊고 불쾌한 한기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시선. 그것은 벽 너머에, 혹은 허공 속에, 어쩌면 그의 등 뒤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확신이 엄습했다.

현우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화장실 불을 켰다. 환하게 빛나는 전구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기와 시선은 여전히 그곳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문을 닫았다. 이번에는 아주 조용히, 천천히.

밥맛이 싹 가셨다. 그는 저녁 식사를 그대로 남겨둔 채 거실 소파에 앉았다. 텔레비전 화면 속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렸다. 이젠 더 이상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이 1004호에, 그가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와 있었다. 혹은,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이제야 그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뿐.

밤은 깊어지고, 아파트의 다른 집들은 하나둘 불빛을 잃어갔다. 현우는 불을 켜놓은 채, 소파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귓가에는 아까 화장실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형태 없는 속삭임이 아스라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거실 중앙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서, 그의 스마트폰이 스르르 움직였다.

아주 느리게, 마치 실에 매달린 것처럼 부드럽게. 액정이 아래로 향한 채로, 탁자 끝을 향해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현우는 숨을 멈췄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그 기괴한 움직임을 응시했다. 스마트폰은 탁자 끝에 닿았다. 그리고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 떨어뜨리려는 듯, 끄트머리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툭.’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액정이 깨지는 소리 대신, 둔탁하고 깊은, 마치 진흙 덩어리가 웅덩이에 빠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액정은 깨지지 않았다. 멀쩡했다.

그러나 현우는 보았다. 스마트폰이 떨어져 나간 탁자 끄트머리, 그곳에 짧은 순간,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 마치 구멍처럼, 허공에 한 조각 찢어져 있는 것을.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비현실적인 각도로 뒤틀린, 무언가 차가운 것이, 그를 향해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이 좁은 아파트 1004호에, 이제껏 잠들어 있던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