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악!”
한밤중, 아르카나 마법 학원 서관 깊숙한 곳에서 나의 비명 소리가 길고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아, 망했다. 분명 금지 구역이라고 경고가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이 희귀한 고대 마법학 서적은 낮에는 절대 대출이 불가능하고, 밤에만 잠시 풀리는 신비한 규칙이 있었다. 나 같은 열정 넘치는 학구파 마법사에게는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기회였지.
“젠장, 젠장, 젠장!”
애써 조용히 하려 했지만, 이미 손에서 미끄러진 잉크병은 고대 마법학 서적의 가장 중요한 페이지에 검은 얼룩을 성대하게 남기고 말았다. 심지어 이 책은 마법 복원이 잘 안 되는 특수 재질 종이였다! 내일 교수님께 등짝 스매싱을 예약한 건 둘째치고, 이 중요한 마법의 흐름이 끊겨버렸잖아!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흐읍.”
손으로 잉크를 닦아내려다 오히려 더 번지게 만들고는 허둥지둥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게다가 금지 구역에서 소란을 피울 이유는 없을 텐데요, 한소리 학생.”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 목소리는…! 온 학원의 희망이자, 모든 여학생의 선망, 그리고 내게는 그저 ‘얼음 왕자’로 불리는 학원 최고의 수재, 류이한 선배였다. 4년 내내 수석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그 전설적인 존재. 하필이면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일 때 딱 걸리다니! 나는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책장 너머, 달빛 한 조각이 스며들어 그의 은빛 머리카락을 신비롭게 비추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완벽하게 빚어낸 듯한 콧대와 턱선. 분명 인간의 조형미가 아니었다. 젠장, 이러니까 로맨스 소설 남주인공 같잖아.
“선배, 선배는 또 왜 여기에…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그의 시선이 나의 손에 들린, 잉크 범벅이 된 고대 서적으로 향했다.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귀한 고대 서적을 훼손한 것치고는 변명이 너무 길군요.”
“훼손이라뇨! 제가 실수로… 곧 복원 마법으로 고칠 거예요!”
“이 구역은 마법 사용도 허가가 필요합니다. 복원 마법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지 않을 텐데요.”
그의 칼 같은 지적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잘 알고 있었다. 학원 내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비밀스러운 이 구역은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그럼 선배는 왜 여기 계신데요? 선배도 자정을 넘겼잖아요!”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미쳤나 봐 한소리! 이런 상황에 대꾸라니! 그의 차가운 시선이 더욱 날카롭게 나를 향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순간,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마치 숨겨진 거대한 존재가 이 도서관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개인적인 연구 때문입니다.”
그의 대답은 딱 잘라 말하는 듯했지만, 어딘가 미묘한 틈이 느껴졌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시선. 그 시선은 내가 서 있는 책장 뒤편, 어두운 벽에 닿아 있었다.
그때였다.
쿵.
발소리 같은, 아니, 더 묵직한 울림이 지하에서부터 올라왔다. 도서관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책장 위의 오래된 먼지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방금… 뭐였죠?”
내가 속삭이듯 물었다. 류이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졌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가 서 있던 책장 뒤편, 어두운 벽을 향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환청이겠죠.”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냉정함과는 다른,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확신했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쿵. 또 한 번. 이번에는 더 크게, 더 가까이서 들렸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환청이라구요? 선배도 들었잖아요!”
내가 그가 보던 벽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류이한이 쏜살같이 다가와 내 팔목을 낚아챘다. 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두운 도서관 안,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의 눈에는 경고와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쪽으로 가지 마십시오!”
“왜요? 뭔가 있어요?”
내 호기심은 이미 통제 불능이었다. 그의 손을 뿌리치고 벽을 살폈다. 오래된 책장 뒤, 텅 비어 있어야 할 벽돌 사이로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벽돌 하나가 미세하게 들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닫아놓은 것처럼.
“이게 뭐죠?”
내가 손을 뻗어 벽돌을 만지려 하자, 류이한이 다시 내 팔을 잡아당겼다.
“손대지 마십시오!”
이번엔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그의 눈빛은 경고를 넘어선 절박함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푸른빛이 새어 나오던 틈새가 순식간에 ‘스르륵’ 하고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와…줘….”
얇고 흐릿한,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동시였다. 벽 틈새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하고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의 실루엣이 번뜩였다. 거대한 눈동자, 핏빛으로 번뜩이는.
“으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류이한이 급히 나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반대쪽 손에서 서늘한 마력이 응집되는 것이 느껴졌다.
“선배! 저건… 저게 뭐예요!”
내 눈에 들어온 건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분명, 벽 안쪽에서 기어 나오는 듯한 기괴한 형상이었다. 류이한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틈새를 노려봤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한소리.”
그의 말은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 시선은 그 틈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핏빛 눈동자가 나를 향해 깜빡이는 것을 똑똑히 봤다. 동시에 벽 틈새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찾았어….”
문이 스르륵 다시 닫히는가 싶더니, 마지막으로 섬뜩한 비명이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망…칠 수 없어…!”
그리고 모든 것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류이한의 손은 여전히 내 팔목을 꽉 잡고 있었다. 그의 심장 소리가 내 등 뒤에서 격렬하게 울렸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선배… 저게 뭐예요?”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깊고 차가웠지만, 그 속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고 음습했다.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진지해서,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한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내가 만지려 했던 벽돌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 벽 뒤에,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것의 봉인을 건드린 것이다.
다음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