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잿빛 먼지가 가득한 하늘 아래, 세상은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삐걱거리는 고층 빌딩의 앙상한 뼈대만이 한때 문명이라 불리던 것들의 흔적을 증명하듯 솟아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녹슨 철근들이 으스스한 비명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그 소리는 나의 심장을 갉아먹는 칼날 같았다.

나는 쓰러진 버스 잔해 옆, 축축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간신히 몸을 웅크렸다. 왼쪽 옆구리에서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축축한 감촉이 덧대어 감은 찢어진 천 조각을 순식간에 적셨고, 끈적한 피는 이미 바닥에 검붉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내 몸이 얼마나 처참한 상태인지 똑똑히 보였다. 갈비뼈 몇 개는 부러진 것이 분명했고, 오른쪽 다리는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고통을 토해냈다.

젠장. 온몸의 신경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터져 나왔다. 곧 죽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단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이선우.

“크윽…!”

신음과 함께 찢어진 입술 사이로 피 섞인 침이 흘러나왔다. 배신감과 증오, 그리고 억울함이 뒤섞여 맹렬한 불꽃처럼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았다. 녀석의 얼굴. 웃는 얼굴. 비열하게 뒤통수를 치던 그 순간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 *

“진우야, 이쪽으로 와봐! 여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을 거야!”

무너진 마트 건물의 지하 주차장. 우리는 녀석의 말만 믿고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섰다. 텅 빈 공간에 스며든 어둠은 우리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손전등 불빛이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도 함께 춤을 추었다.

“선우야, 좀 으스스한데? 굳이 이렇게 깊이 들어올 필요가 있었냐? 밖에도 식량 창고는 많잖아.”
나는 괜히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둘러봤다. 썩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는 정체 모를 액체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어허, 진우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이 못 찾는 곳을 찾아야 하는 법 아니냐? 내가 어릴 때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니까. 분명 깊숙한 곳에 비상용 창고가 있었어. 분명 유통기한이 긴 통조림 같은 게 있을 거야!”

선우는 흥분한 목소리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앞서 걸어갔다. 나는 그의 확신에 찬 말에 내심 안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선우와 나는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다. 부모님을 잃고 홀로 남겨진 대재앙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여기까지 버텨왔다. 녀석이 나를 속일 리 없었다. 나에게 선우는 가족이자 유일한 동지였다.

한참을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까.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 선우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이쯤인데… 분명 여기에 비밀 창고가 있었는데 말이지.”

녀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머리 뒤쪽에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이게… 무슨 짓이야?”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을 때, 나는 선우의 손에 들린 녹슨 쇠 파이프를 봤다. 그리고 그 쇠 파이프가 바로 내 등에 박혀 있음을 깨달았다. 날카로운 파이프 끝은 내 몸을 꿰뚫고 심장 부근을 짓눌렀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미안하다, 진우야.”

선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과였지만, 그의 표정은 잔혹할 정도로 무심했다. 녀석의 눈빛에는 우리가 함께 나눴던 수많은 추억도, 서로를 향한 신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탐욕과 서늘한 계산만이 가득했다.

“미안하긴, 뭘…?”
고통 속에서도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겨우 구한 식량이랑 물, 그리고 이 귀한 연료까지… 네가 있으면 다 나눠야 하잖아. 혼자면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는데. 안 그래?”

녀석의 입술이 비틀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선우라는 이름의 가면 아래 숨겨져 있던 괴물의 본모습을 봤다.
“너는 너무 물러. 이런 세상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거야? 착해 빠진 네 성격으론 오래 못 버텨. 그러니… 여기까지다, 진우야.”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정신의 고통이 나를 집어삼켰다. 선우는 쇠 파이프를 비틀며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동시에 나는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축축하고 차가운 바닥에 피가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네 몫까지… 아니, 네가 가진 모든 것까지 내가 잘 쓸게.”

그는 마지막으로 비열한 웃음을 남긴 채, 내 배낭을 풀어 헤치고 품속의 소중한 물건들을 챙겼다. 구호물품에서 겨우 구한 구급상자, 유일한 식량인 육포 몇 조각, 그리고 이 폐허를 헤쳐나갈 작은 나이프까지. 모두 녀석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하 깊은 곳에 홀로 남겨진 나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다.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격통과 배신감에 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기어 나왔고, 수 시간의 사투 끝에 겨우 지하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결국, 쓰러진 버스 옆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 * *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오직 선우의 얼굴이었다.
선우. 이선우. 이 빌어먹을 배신자 새끼.

“죽어… 죽어버려야 해… 네놈은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목소리는 쉰 소리가 나며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심장은 격렬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복수심. 그것만이 내가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내 눈은 흐릿하게 주변을 응시했다. 무너진 버스 잔해 아래, 먼지에 뒤덮인 채 굴러다니는 작은 조약돌 하나가 보였다. 손을 뻗으려 했지만, 손가락 끝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아직 죽을 수 없다. 절대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 내 팔을 겨우 움직였다. 손가락 끝이 차가운 조약돌에 닿았다. 그것은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날카롭게 깨진 유리 파편이었다. 빛이 바랜 붉은색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긴급 구호 상자’.

상처 입은 옆구리가 욱신거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겨우 몸을 뒤척여 버스 잔해 안쪽을 살폈다. 유리가 박혀있던 곳은 버스 창문이 있던 자리였다. 그리고 그 안쪽, 찌그러진 좌석들 사이로 작은 구호 상자가 삐져나와 있었다. 아마 대재앙 직후, 급하게 배치되었던 구호 물품 중 하나일 것이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복수심이라는 이름의 연료로 간신히 움직였다. 한 손으로 버스 잔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 겨우 몸을 지탱했다.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상자 쪽으로 기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수천 개의 칼날 위를 걷는 듯했다.

드디어 상자 코앞에 도착했다. 낡고 녹슨 철제 상자. 굳게 잠긴 자물쇠가 보였다.
“젠장…!”
나는 애꿎은 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부러진 갈비뼈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상자 옆면에 붙어 있는 작은 쪽지. 먼지에 가려져 있었지만, 손가락으로 닦아내자 희미하게 글씨가 보였다.

‘자물쇠 번호는… 이 세상을 구한 날의 숫자.’

이 세상을 구한 날? 나는 짧게 생각했다. 대재앙이 터지고 나서 인류를 구원하겠다며 온갖 프로젝트가 진행됐었지. 그중 가장 대대적이었던 건 바로…

‘인류 재건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 대재앙으로부터 1년 뒤,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그날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물쇠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이 시려웠지만, 차가운 금속 숫자판을 더듬어 번호를 입력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나는 기적적으로 열린 상자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뚜껑을 열자, 그 안에서 빛바랜 비닐봉투에 싸인 작은 병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낡은 붕대, 소독약, 그리고… 작은 총 한 자루.

총. 권총이었다. 실탄 몇 발과 함께.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상처의 고통은 여전했지만,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것이 내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
이것이 내가 기필코 녀석을 찾아가야 할 수단.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죽어가던 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나는 듯했다. 병에 든 약을 망설임 없이 삼키고, 능숙하지 않은 손으로 상처를 다시 동여맸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피가 멎는 느낌이 들었다.

내 눈은 더 이상 흐릿하지 않았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 하늘은 여전히 무심하게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절망스럽지 않았다.

“이선우… 기다려라.”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또렷하고 강렬했다.
“반드시 찾아갈 거야. 그리고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갚아줄 테니까.”

내 손에 든 차가운 금속 권총의 감촉이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제, 사냥의 시간이다.
나는 폐허가 된 도시를 향해, 복수라는 이름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기필코 그를 죽일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유일한 목적이었다.
나 강진우는, 오늘부터 배신자를 쫓는 사냥개가 되기로 맹세했다.
살아남아서, 죽여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꾸는 유일한 꿈이자, 저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