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거인이 잠든 도시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아레스 중공업’의 최상층 연구동은 섬뜩할 정도로 고요했다. 천재 탐정 류강은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트렌치코트 깃을 올린 채 비상구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그의 뒤를 따르던 김형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류 탐정님, 꼭 이렇게 걸어 올라가셔야 합니까?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류강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묵묵히 말했다. “숨이 가빠야 정신이 맑아지는 법이지. 자네도 느껴보게, 이 답답한 기운을.”
답답한 기운이라니. 김형사는 자신의 폐가 더 답답하다고 생각했지만, 류강의 괴팍한 천재성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곧 문제의 현장에 도착했다. 복도 끝, ‘프로젝트 스피어헤드 코어 개발실’이라고 적힌 육중한 강철 문 앞에는 이미 아레스 중공업의 관계자와 경찰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류 탐정님 오셨습니까.”
긴장한 얼굴의 아레스 중공업 이사, 강동원이 류강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곁에는 수석 연구원 박수진 박사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들어가시죠.” 류강은 짧게 답하며 문을 가리켰다.
강동원의 지시에 따라 특수 장비로 문을 열자, 마치 미지의 생명체처럼 웅장한 크기의 메카닉 프레임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강철 거인의 앙상한 갈비뼈 사이로 수많은 케이블과 센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거인의 그림자 아래, 중앙 제어 콘솔에 기댄 채 차갑게 식어버린 몸. 피해자는 이 연구실의 총책임자이자 메카닉 코어 기술의 권위자, 한민준 박사였다.
“사인은… 목 부위의 예리한 절단입니다.” 김형사가 낮게 읊조렸다. “하지만 어떤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방은 완벽한 밀실입니다.”
류강은 말없이 방 안을 훑었다. 방은 밖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창문은 특수 방탄 강화유리로 되어 있었고, 문은 내부에서 잠겨 있었다. 모든 환기구와 통풍구는 사람 한 명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사건 발생 시각은 어젯밤 9시 30분경입니다. 한 박사가 평소처럼 혼자 야근을 하던 중이었죠. 경비 시스템 로그상 문이 열린 기록은 전무합니다. 내부에서 외부로 나간 기록도 없습니다.” 강동원이 침통하게 설명했다. “아무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완벽한 밀실 살인입니다.”
류강은 한 박사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목의 상처는 마치 레이저로 정교하게 잘라낸 듯 깨끗했다. 주변에는 핏자국 외에 어떤 흐트러진 흔적도 없었다. 그는 시신 주변의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메카닉 프레임 아래, 바닥에 난 아주 작은, 검게 그을린 점을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긁어보자 미세한 재가 묻어났다.
“이게 뭔가요?” 김형사가 다가왔지만, 그을린 흔적은 너무 작아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흔적.” 류강은 짧게 답했다. 그는 다시 방 전체를 둘러보았다. 메카닉 프레임 옆에는 작은 부품들을 가공하는 고정밀 공작기계가 있었고, 그 옆으로 여러 종류의 테스트 장비들이 줄지어 있었다. 벽면에는 다양한 크기의 패널들이 박혀 있었는데, 대부분은 전선이나 냉각수 파이프가 지나가는 통로였다.
그는 문득 한 벽면의 패널에 시선이 멈췄다. 다른 패널들과 달리, 이 패널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보이지 않는 틈새가 있었다. 마치 어떤 통로를 가리기 위해 임시로 막아둔 것처럼. 그는 그 틈새에 손가락을 넣어 살짝 흔들어보았다. 미동도 없었다.
“이 방의 모든 시스템 기록을 가져다주십시오. 특히 전력 사용량, 공기압 변화, 그리고 이 메카닉의 모든 진단 로그까지요.” 류강이 요구했다.
곧 한 박사의 연구실 모든 기록이 태블릿으로 전송되었다. 류강은 쉴 새 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김형사는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답답해했다.
“혹시 주변에 원한 관계가 있던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김형사가 강동원에게 물었다.
“한 박사는 워낙 일에만 몰두하는 분이셨습니다. 다만… 프로젝트 스피어헤드 코어 개발이 거의 완료 단계였고, 다음 주에 최종 보고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저희 회사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다른 기업의 견제나 질투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강동원이 말했다.
“박수진 박사님은 어떻습니까? 한 박사와 경쟁 관계는 아니었나요?” 김형사가 박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수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와 한 박사는 오히려 협력 관계였습니다. 제가 부품 설계와 제어를 담당했고, 한 박사가 코어 시스템을 전담했죠. 경쟁이라기보다는… 완벽한 조화였습니다.”
류강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완벽한 조화가 깨지면, 그 반동은 더 큰 법입니다. 사건 시각, 박수진 박사님의 알리바이는 어떻습니까?”
“저는 제 연구실에 있었습니다. 저 역시 새벽까지 코어 시스템의 테스트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죠. 제 연구실은 여기에서 직선거리로 1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메카닉 부품 개발동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죠.” 박수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류강은 문득 태블릿을 덮었다. 그리고는 방의 한쪽 벽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뭔가요?”
강동원이 다가와 설명했다. “아, 저곳은… 미세 부품 이송관입니다. 초정밀 가공된 작은 부품들을 외부에서 연구실 안으로 직접 투입하거나, 테스트 후 발생한 폐기물을 외부로 배출하는 통로입니다. 평상시에는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고, 필요할 때만 제어실에서 원격으로 개방합니다.”
“열어볼 수 있습니까?” 류강이 물었다.
강동원이 망설이는 동안, 류강은 태블릿을 박수진에게 내밀었다. “박수진 박사님. 여기 이 로그 기록이 흥미롭군요. 어젯밤 9시 32분, 한 박사 연구실의 전력 사용량이 순간적으로 급증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미세 부품 이송관이 0.5초 동안 개방되었다가 다시 밀폐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그 전력 패턴은… 박사님의 개인 연구실에서 개발 중이던 초소형 정밀 수술 로봇 ‘미라지’의 에너지 방출 패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박수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한 박사는 자신의 코어 개발이 완료되면, 가장 먼저 특허를 출원하고 회사에 보고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아직 코어의 핵심 기술을 완성하지 못했죠. 그래서 한 박사의 데이터를 훔치려 했지만, 그는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와 단절한 채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박사님의 초소형 정밀 로봇, 미라지는 메카닉 부품의 결함을 미세하게 수리하거나, 초정밀 절단을 위해 개발된 물건이죠.”
류강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박사님은 미세 부품 이송관이 열리는 극히 짧은 순간을 노렸습니다. 미라지를 그 이송관을 통해 한 박사의 연구실로 들여보낸 겁니다. 아니, 어쩌면 미라지는 이미 한 박사의 연구실에 대기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박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 로봇의 초정밀 레이저 커터로 목숨을 앗아갔죠. 그리고 범행 후, 다시 이송관을 통해 외부로 로봇을 빼돌리거나, 혹은 연구실 내부에 있는 폐기물 처리 시스템으로 로봇을 보내 자폭시킨 겁니다.”
김형사가 놀라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로봇이 그렇게 정교하게…?”
“미라지는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메카닉의 신경망에 직접 접속하여 오류를 수정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합니다.” 류강은 박수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젯밤, 박사님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미세 부품 이송관의 개폐 시스템에 접속했고, 미라지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한 박사의 연구실에 있던 미라지는 목을 절단하고, 잠시 열린 이송관을 통해 탈출했거나 혹은 폐기물 처리 시스템으로 들어가 완벽하게 소멸했겠죠. 이송관이 잠시 열리며 발생한 미세한 공기압 변화는, 한 박사의 연구실에 설치된 초민감 환경 센서에 포착되었고, 로봇의 레이저 발사로 인한 전력 급증은 중앙 시스템에 기록되었습니다. 바닥의 미세한 그을림은 아마도 로봇이 레이저를 작동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일 테고요. 이 모든 것은 박사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박수진은 끝내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한 박사가… 제가 완성하지 못했던 코어의 핵심 알고리즘을 혼자서 완성했습니다. 그가 먼저 발표하면… 제 모든 연구가 물거품이 될 터였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그랬습니다…”
류강은 한숨을 쉬었다. 강철 거인의 그림자 아래, 인간의 욕망은 너무나 작고도 추악했다. 메카닉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류강은 빗소리에 묻혀 사라질 듯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밀실 살인이란 없지. 인간의 손으로 만든 모든 것에는, 반드시 틈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는 다시 트렌치코트 깃을 올리고, 메카닉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연구실을 나섰다. 그의 뒤로 김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류 탐정님은… 천재십니다.”
하지만 류강은 이미 다음 사건의 실마리를 찾듯, 폭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진실을 향한 단 하나의 질문만이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이번 메카닉은, 어떤 인간의 욕망을 품고 태어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