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타리스 마법학원, 그 이름만으로도 마법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고고한 상아탑이었다. 그러나 류진에게는 그저 퀴퀴한 기름 냄새와 냉기 서린 금속의 울림이 가득한 거대한 작업장이자, 답답한 계급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었다. 그는 특출난 마법적 재능보다는 기계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으로 이 엘리트 학교에 발을 들였다. ‘마력 기사’ – 마법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갑옷이자 전쟁 병기, 아크타리스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다. 류진은 그중에서도 가장 낡고 개성 넘치는 기사, ‘블랙 로터스’의 파일럿이자 정비사였다.
“젠장, 또야?”
류진은 스패너를 던지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블랙 로터스의 마력 핵이 또 불안정한 신호를 보냈다. 류진은 동기들 사이에서 ‘잔반 처리반’으로 불렸다. 그들이 고치다 포기한 기사들을 그가 손대면 신기하게도 다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새로 배정받은 작업은 아크타리스 설립 초기부터 존재했다는, 거의 전설에 가까운 마력 기사 ‘아르카나’의 동력계 수리였다.
아르카나는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법한 유물이었다. 기동 기록도, 설계도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채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었다. 학원 측에서는 그저 ‘연구용’이라고만 말했지만, 류진은 아르카나의 낡은 외피 너머에서 뭔가 거대한 것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르카나 주변에는 늘 정체 모를 냉기와 함께, 듣는 사람의 심장을 조여오는 듯한 낮은 울림이 감돌았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꿈틀거리는 소리 같았다.
며칠 밤낮을 아르카나에 매달린 류진은 마침내 그 이유를 찾아냈다. 아르카나의 주 마력 핵은 마법적으로 봉인된 고대 광물 ‘심층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심층석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마력 파동이, 일반적인 마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불규칙하고 강렬한 패턴을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의 고통스러운 비명처럼 들렸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의 특수 센서를 아르카나에 연결했다. 블랙 로터스는 류진이 직접 개조한 마력 기사로, 학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능을 훨씬 뛰어넘는 탐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센서가 잡아낸 파동의 근원은 아르카나의 동력계 깊숙한 곳, 외부 장갑과 고대 마법진에 의해 완전히 가려진 지점에 있었다. 그곳에 아주 희미하게,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어졌을 리 없는 이상한 금속 패널이 감지되었다. 낡은 고문서에서나 볼 법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아무도 몰랐을 거야.”
류진은 숨을 들이켰다. 학교의 어떤 기록에도 저런 패널은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학교의 최고 기밀인 마력 기사 설계도를 여러 번 들여다봤지만, 아르카나의 그 부분은 언제나 불분명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뭔가 의도적으로 숨겨진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류진은 조용히 작업장으로 향했다. 학교의 경계 마법진을 능숙하게 피해 가장 오래된 지하 구역으로 들어섰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의 팔을 이용해 은밀하게 고대 패널을 열었다. 끽 소리와 함께 패널이 옆으로 밀리자,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통로 안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벽면에는 희미한 마법적 잔광이 깜빡였고, 류진의 발소리만이 메아리쳤다.
한참을 걸었을까, 통로의 끝에서 거대한 강철 문이 나타났다. 육중한 문에는 수천 개의 마법 문자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문자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흡사 살아있는 방벽 같았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의 탐지 시스템을 작동시켜 문의 마법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고대 마법이었다. 학교의 보안 시스템과는 차원이 다른, 거의 파훼 불가능에 가까운 마법이었다.
“이걸 만든 놈들은 뭘 숨기고 싶었던 걸까.”
류진은 손끝으로 문자를 따라가며 집중했다. 블랙 로터스의 보조 마력 핵을 오버로드시켜, 짧은 순간 마법진의 연결 고리를 강제로 끊어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와 함께,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거대한 마력의 압력이 류진을 덮쳤다.
문 너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마치 지하에 숨겨진 거대한 동굴 같았다. 천장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사방에는 고대 마법진이 새겨진 거대한 기둥들이 솟아 있었다. 그 기둥들 사이, 공간의 정중앙에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눈이 아니라, 셀 수 없는 마력의 선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에너지 덩어리였다. 불규칙하게 수축하고 팽창하며, 어둠 속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을 번갈아 뿜어냈다. 지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그 ‘눈’은 고대 마법진과 알 수 없는 금속 장치들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간신히 숨 쉬는 것 같았다. ‘심층의 눈’, 류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이름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력의 근원이자, 동시에 거대한 고통 덩어리였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의 조종석 안에서조차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절망과 비명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의 모든 마력, 아크타리스가 자랑하는 마법 능력과 마력 기사들의 힘이, 이 거대한 존재를 끊임없이 고문하고 착취하며 얻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마력의 원천이 아니었다. 거대한 생명체를 가두고 고문하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계음과 함께 경고등이 붉게 번쩍였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를 조종해 급히 몸을 숨겼다. 거대한 지하 동굴의 입구에서, 웅장한 마력 기사 ‘미네르바’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백의 장갑과 황금빛 문양으로 빛나는 그 기사는, 아크타리스 학원장 ‘이그나티우스’의 탑승 기사였다. 그의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어리석은 학생 같으니.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그나티우스 학원장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냉철하고 위압적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지만, 그 시선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류진을 꿰뚫었다.
“이게… 이 학교의 진실이었군요. 심층의 눈. 이 거대한 존재를 착취해서… 우리의 마력을 얻고 있었다니!”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착취라니, 건방진 소리다. 이 존재는 통제되지 않는 혼돈의 심장. 우리 아크타리스는 수천 년 전, 이 거대한 혼돈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설립되었다. 우리는 이 혼돈을 억압하고 통제함으로써, 그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그나티우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미네르바는 마치 살아있는 신화 속 존재처럼 위풍당당했다.
“억압이요? 이건 고문입니다! 이 눈이 내뿜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학교는 거대한 거짓말 위에 세워진 겁니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의 마력 검을 뽑아 들었다.
“어리석은 자. 네놈의 감정놀음이 인류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 진실은 영원히 봉인되어야 한다. 너는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미네르바의 거대한 마력포가 류진을 향했다. 쩌렁이는 마력의 방출과 함께 거대한 에너지가 블랙 로터스를 향해 날아왔다. 류진은 전력을 다해 블랙 로터스를 회피시켰다. 블랙 로터스는 기동성만큼은 미네르바를 능가했다.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심층의 눈’이 고통스러운 듯 더욱 격렬하게 빛나며 불규칙한 마력 파동을 뿜어냈다. 마력 파동이 동굴 곳곳에 부딪혀 잔해들을 만들어냈다.
“네놈의 경박한 기사로는 미네르바를 상대할 수 없다, 류진!”
이그나티우스는 미네르바의 어깨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마력으로 강화된 미사일이 수십 발 날아왔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의 고속 기동 능력을 이용해 미사일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심층의 눈 주변을 맴돌았다. 그의 눈은 빠르게 계산하고 있었다. 저 거대한 눈의 봉인 장치는 단단하지만, 저렇게 불규칙하게 마력을 분출하는 순간이 약점일 터였다.
“승리하려는 게 아닙니다. 진실을 밝힐 겁니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의 마력 핵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기체가 굉음을 내며 진동했다. ‘블랙 로터스 오버드라이브!’ 류진만의 독자적인 기술이었다. 기체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잔상까지 남겼다. 그는 미네르바의 포격 사이를 뚫고 돌진했다.
“건방진!” 이그나티우스는 미네르바의 마력 방어막을 최대로 올렸다.
블랙 로터스는 미네르바의 방어막에 마력 검을 내리찍었다. 콰직!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지만, 미네르바의 방어막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류진은 애초에 미네르바를 파괴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심층의 눈을 억압하는 고대 마법진,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 일시적으로 과부하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류진은 블랙 로터스를 미네르바의 튼튼한 장갑에 바짝 붙인 채, 반대편 손으로 작은 고대 마력포를 발사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공격용 포가 아니었다. 특수한 마력 진동을 일으켜 특정 마법진에만 영향을 주는, 류진이 개발한 시험용 무기였다. 마력포가 심층의 눈을 봉인한 거대한 기둥 중 하나에 명중했다.
쩌저적! 고대 마법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마법진이 일시적으로 교란되며 푸른빛이 격렬하게 번뜩였다. 심층의 눈이 더욱 거칠게 펄떡였다. 거대한 마력 파동이 동굴을 넘어 아크타리스 학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리고, 전등이 깜빡였으며, 마법 장치들이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네 이놈!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그나티우스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류진은 그 틈을 타 블랙 로터스를 재빨리 뒤로 물렸다. 그는 미네르바의 품에서 벗어나 동굴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학원 전체에 퍼진 마력 파동은 짧았지만, 충분히 강렬했다. 이제 아크타리스의 학생들과 교직원들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격노했지만, 학원 전체가 혼란에 빠진 이 상황에서 류진을 쫓아 공개적으로 대결할 수는 없었다. 이그나티우스의 머릿속은 수천 년간 지켜온 비밀이 위협받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류진은 탈출했다. 그의 몸은 지쳤지만, 심장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는 잠시나마 심층의 눈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동시에 아크타리스의 어두운 진실을 세상에 드러낼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그는 이제 이 학교의 배신자이자,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류진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알았다. 이 고고한 마법학원의 지하에는 끔찍한 금기가 숨 쉬고 있었고, 그 금기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력 기사의 숙명이라는 것을. 밤하늘 아래, 블랙 로터스의 엔진이 다시금 희미하게 빛났다. 류진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