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도시의 유령은 옷 정리를 좋아한다
이은하 씨의 완벽한 아침은 늘 정해진 루틴을 따른다. 알람 시계가 정확히 7시 정각에 ‘따르릉’ 울리면, 그녀는 5분 안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꼼꼼한 세안과 스킨케어 후, 아침 식사는 시리얼과 과일, 그리고 신선하게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옷은 전날 밤 미리 골라둔 오피스 룩으로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리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진행되어야만, 이은하는 하루를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케팅팀 팀장으로서 그녀의 삶은, 그 어떤 예상치 못한 변수도 용납하지 않는 정교한 기계와도 같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어…? 내 차 키 어디 갔지?”
출근 준비를 거의 마쳤을 무렵, 그녀의 시선이 거실 테이블 위를 훑었다. 늘 제자리에 놓여있어야 할 자동차 키가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퇴근하자마자 습관처럼 내려놓았던 기억이 선명했다. 은하는 당황했지만, 이내 ‘어제 너무 피곤해서 내가 다른 데 뒀나?’라고 합리화하며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쇼파 아래, 신발장 위, 심지어 냉장고 문까지 열어보았지만 키는 온데간데없었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던 그때, 그녀의 눈에 문득 거실 한쪽 벽에 걸린 그림 액자 위가 들어왔다.
“이게 뭐야?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은하의 자동차 키는 보란 듯이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복제화 액자 모서리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누가 저기에 올려두었단 말인가? 액자의 높이는 은하의 키보다 훨씬 높았고, 그녀는 어젯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내던지듯 놓았을 뿐이었다.
“내가 어제 밤에 잠결에 미술 작품을 감상이라도 했나? 별일이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겨우 키를 꺼내든 은하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짧은 비명과 함께 현관으로 달려갔다. 지각이다. 완벽한 루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은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기이한 풍경이었다.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현관 바닥의 신문지가, 마치 누군가 깔끔하게 접어 올려둔 것처럼 가지런히 신발장 위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그녀가 아침에 마셨던 커피 잔이 깨끗하게 설거지되어 거꾸로 엎어져 있었다.
“내가… 설마 잠결에 청소하고 나갔나?”
피곤함에 헛것이 보이나 싶어 은하는 눈을 비볐다. 분명히 아침에는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문을 잠그고 나갔으니 도둑은 아닐 터. 혹시 누가 자기 집에 들어온 건가 하는 생각에 섬뜩했지만, 집안은 너무나 평온했고 어떤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은하는 찝찝함을 애써 무시하며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은 더욱 가관이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 늦잠을 잔 은하는 허둥지둥 침대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뻗었지만, 휴대폰은 늘 있던 침대 옆 협탁이 아닌, 침대 아래 숨바꼭질하듯 들어가 있었다. 겨우 휴대폰을 찾아 알람이 왜 안 울렸나 확인해보니, 알람이 무려 세 시간이나 뒤로 설정되어 있었다. 누가 장난이라도 친 걸까? 혼자 사는 집에?
“대체 이게 무슨…….”
혼란스러운 머리를 붙잡고 시리얼을 먹으려 부엌으로 갔을 때, 은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시리얼 상자가 선반 맨 꼭대기 칸에, 그것도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그녀의 키로는 발꿈치를 들어도 겨우 손끝이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였다.
“귀… 귀신인가? 설마, 폴터가이스트?”
은하의 등골을 오싹한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그녀에게 유령의 존재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난 이틀간 벌어진 일들은 도저히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을 둘러봤다. 텅 빈 거실, 고요한 부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웃기시네. 내가 너무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거야. 피곤하면 헛것이 보일 수도 있지!”
애써 이성을 붙잡으며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심장은 이미 쿵쾅거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으스스한 느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은하는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출근길은 마치 도망치는 발걸음 같았다.
점심시간, 은하는 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도 어제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가장 친한 동료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박 대리, 혹시 말이야, 집에 혼자 있는데 뭔가 물건이 막 저절로 움직이거나… 그런 경험 있어?”
박 대리는 숟가락을 든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팀장님, 꿈이라도 꾸셨어요? 아니면 혹시 연애하세요? 설마 집에 몰래 남자친구 숨겨두신 건 아니죠?”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니고! 그냥, 가끔 물건이 제자리에 없거나… 누가 치워놓은 것 같거나… 뭐 그런 경험.”
“음, 저는 건망증이 심해서 제가 치워놓고 까먹는 일은 많지만, 누가 저 대신 치워주는 일은 없던데요. 부럽다! 팀장님 혹시 요정이라도 고용하신 거 아니세요?” 박 대리가 낄낄대며 웃었다.
은하는 더 이상 이야기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거라 판단하고 입을 닫았다. 그래, 내가 예민한 걸 거야.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잠자리가 바뀌어 그런 걸 수도 있고.
그날 저녁, 은하는 퇴근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향했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으로 ‘폴터가이스트 현상’, ‘귀신이 물건을 옮겨요’ 등을 검색해보았지만, 나오는 결과는 대부분 괴담이나 심령 카페 글뿐이었다.
“아니, 이걸 믿으라고? 정신 나간 소리.”
검색창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가운을 걸친 채 침실로 향했다.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싶었다. 침대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려는 순간, 그녀의 시선이 옷장으로 향했다.
은하의 옷장은 그녀의 자존심이나 다름없었다. 색깔별, 종류별, 계절별로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어떤 옷이 어디에 걸려있는지 그녀는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배열은 그녀의 삶의 질서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옷장의 모습은 그녀의 완벽한 질서를 조롱하는 듯했다.
“세상에… 이게 대체 뭐야?!”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은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정성스레 걸어둔 블라우스들이 한데 엉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말끔히 접어둔 스웨터들이 마구잡이로 구겨져 있었고, 심지어는 속옷 서랍이 활짝 열린 채 내용물들이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끼는 코트가 뒤집어진 채로 옷걸이에 걸려 있고, 아끼는 명품 스카프는 침대 모서리에 매듭지어져 마치 고양이가 장난친 것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순간, 은하의 머릿속에서 모든 이성이 증발했다. 그녀는 더 이상 이것을 피곤함, 건망증, 혹은 환각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야! 거기 누구 있어? 나와! 당장 나와!”
은하는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두려움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가, 왜, 이 완벽한 삶에 자꾸 태클을 거는가. 그것도 내 옷장 정리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너, 네가 뭔데 내 옷장을 이렇게 만들어?! 패션 테러리스트 유령이야? 당장 옷 정리 다시 해놔!”
그녀의 절규는 텅 빈 아파트에 메아리쳤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녀는 분명히 어떤 존재의 시선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그 시선은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한, 혹은 은하의 반응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옷장 앞에 선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대체 이 아파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이상한 존재는 왜 하필 ‘정리벽’이 있는 자신의 옷장을 타깃으로 삼는 걸까.
새로운 아파트에서의 밤은, 이제 더 이상 평화롭지 않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