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잿빛 행성, 첫 번째 조각
리안은 익숙하게 망가진 잔해 더미를 기어 올랐다. 매캐한 먼지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거친 기침을 유발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산소 공급 마스크 안으로 겨우 숨을 몰아쉬며, 황폐해진 도시의 앙상한 뼈대 위로 몸을 일으켰다. 시안 행성은 한때 ‘푸른 심장’이라 불리던 찬란한 개척지였다. 하지만 대균열 이후, 이곳은 그저 거대한 무덤일 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잿빛 지평선 아래, 뒤틀린 금속과 깨진 강화 유리 파편들이 저물어가는 붉은 태양빛을 받아 불길하게 반짝였다. 한때 하늘을 찌르던 마천루들은 이제 이빨 빠진 거인의 턱처럼 위협적으로 솟아 있었다. 그 사이를, 폭풍에 깎여나간 흙먼지와 잔해들이 쉼 없이 휘몰아쳤다. 리안은 황량한 풍경을 훑는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희망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그런 허황된 기대를 놓지 않고 이곳에서 5년째 생존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스캐너가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에너지 잔량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에너지를 보충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동사하거나, 아니면 굶어 죽을 터였다. 리안은 낡고 헤진 방호복 틈새로 파고드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가운 조각들을 걷어냈다. 끈질기게, 매일 반복되는 생존의 의식이었다.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그의 낮은 중얼거림은 고요한 폐허 속으로 허무하게 흩어졌다. 스캐너는 줄곧 낮은 신호음만을 냈다. 그가 찾는 것은 에너지 셀, 아니면 하다못해 썩지 않은 보존식품 깡통 하나라도 좋았다. 죽은 문명의 껍데기 속에서, 삶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꼴이라니. 비참했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그때였다. 스캐너가 짧고 날카로운 경고음을 냈다. 리안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익숙한 낮은 신호음이 아닌, 무언가에 반응하는 소리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함선 격납고의 잔해였다. 한때는 우주를 누비던 함선들이 정비받던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거대한 쇳덩이의 무덤이었다. 격납고의 한쪽 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 그 밑에 거대한 함선의 일부가 깔려 있었다. 아마도 행성이 파괴되던 그 날,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이 무덤 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리안은 조심스럽게 잔해 속으로 발을 디뎠다. 스캐너의 신호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무언가, 강력한 에너지 반응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종류의 흥분이었다. 어쩌면 대박을 건질 수도 있었다. 혹은, 함정일 수도 있었다. 이 폐허 속에는 살아남은 자들보다, 잊힌 기술의 경계 시스템이나 변이된 생명체가 더 위험했다.
격납고 깊숙한 곳, 무너진 천장의 콘크리트 파편과 뒤엉킨 강철 빔 사이에, 기이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리안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가 본 것은, 거대한 함선의 조종석 일부였다. 함선의 대부분은 파괴되었지만, 조종석 주변만은 기적적으로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푸른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조종석 콘솔은 먼지와 잔해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리안은 낡은 다용도 도구로 주변의 잔해를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콘솔 한가운데 박혀 있는 작은 데이터 크리스탈이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운 검은색. 그 안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균열 이후, 이 정도의 온전한 기술을 발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대개는 모두 녹아내리거나, 박살 나거나, 기능이 정지된 지 오래였다.
“이게… 아직 작동한다고?”
리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크리스탈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과 먼지투성이의 잔해 속에서, 크리스탈은 놀랍도록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가 크리스탈을 건드리자, 푸른빛이 더욱 선명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의 스캐너가 격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단순한 에너지 반응이 아니었다. 강력한 데이터 흐름을 감지하는 소리였다.
크리스탈을 뽑아내자, 콘솔의 푸른빛은 이내 꺼져버렸다. 리안은 크리스탈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그의 낡은 데이터 리더는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방호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휴대용 데이터 리더를 꺼냈다. 손때 묻고 군데군데 녹슬어 작동할지도 의문스러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크리스탈을 리더 슬롯에 조심스럽게 삽입했다. 리더는 잠시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작은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화면에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이내 익숙한 문자가 떠올랐다.
`[데이터 로그 – 기록 일자: 대균열 직전]`
`[발신: 미확인 항성계 – 코드: X7-델타]`
`[수신: 모든 생존자]`
리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생존자. 이 폐허 속에서 그 단어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화면을 아래로 스크롤하자, 음성 기록 파일이 나타났다. 그는 지체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서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들립니까? 누가 듣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는 탈출했습니다. 이곳은… 이곳은 시안이 아닙니다. 하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목소리는 불안정했지만, 또렷했다. 리안은 숨을 들이켰다.
— “미확인 항성계… X7-델타. 이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좌표는… 좌표는 이곳의 핵심 시스템에 숨겨져 있습니다. 제발… 찾아주세요. 우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이내 뚝 끊겼다. 리안은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의 뇌리 속에는 오직 한 단어만이 맴돌았다. ‘탈출’. 그리고 ‘희망’.
그는 크리스탈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시안을 벗어날 수 있다고? 이 죽은 행성에서 살아남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있다고?
그 순간, 멀리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땅이 낮게 울렸다. 리안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격납고 밖, 잿빛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먼지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모래폭풍이 아니었다. 그의 귀에 희미한 굉음이 들려왔다. 저것은, 다른 스캐빈저들의 이동 수단이 만들어내는 소음이었다.
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발견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 작은 크리스탈에 담긴 희망은, 동시에 그를 거대한 위험 속으로 밀어 넣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메시지의 진위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전에, 눈앞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는 크리스탈을 다시 방호복 안주머니에 단단히 넣고, 스캐너를 켰다. 진동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이 격납고까지 올지도 몰랐다. 리안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크리스탈이 안내하는, 혹은 저 너머의 우주 어딘가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미지의 여정을 향해, 폐허 속으로 다시 몸을 던졌다.
과연, 이 작은 조각이 그를 잿빛 행성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혹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끌까. 리안은 아무도 없는 폐허 속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