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망각의 속삭임
카인은 목구멍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폐허가 된 고대 도시, 모두가 ‘망각의 심장’이라 부르며 가까이하길 꺼리는 저주받은 땅. 그곳의 퀴퀴한 흙먼지와 부패한 냄새가 섞인 공기를 허겁지겁 들이마셨다. 젠장, 더 이상은…
그의 등 뒤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묵직한 발굽 소리,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포효, 그리고 섬뜩하게 날아드는 추적 마법의 휘파람 소리. 그저 굶주린 들짐승들이 아니었다. 분명, 그들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고, 잔혹할 정도로 영리한 ‘사냥꾼’들이었다.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다리가 천근만근, 폐는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황혼 속에서, 고대 유적의 무너진 벽들은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 그림자 너머에, 사냥꾼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젠장!”
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을 헛디뎠다. 몸이 기우뚱하며 그대로 가시 덤불 속으로 고꾸라졌다. 팔뚝에 날카로운 가시에 긁힌 길고 붉은 상처가 새로이 생겨났지만, 그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아픔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방이 온통 미로 같았다. 넝쿨에 뒤덮인 돌기둥들이 숲처럼 솟아있고, 무너진 건축물들의 잔해가 길을 막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망각의 심장에 발을 들인 것이 최악의 실수였다. 호기심이 부른 참사였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아치형 입구 뒤에 숨겨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좁은 틈새였다. 간신히 몸을 욱여넣어 비집고 들어가자, 거친 돌벽이 피부를 긁어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좁은 통로를 따라 나아갔다.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고대의 썩은 향이 코를 찔렀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사냥꾼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곳이리라.
얼마나 헤매었을까. 통로는 갑자기 넓게 터져 나오며 원형의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졌다. 머리 위, 돔형 천장의 뻥 뚫린 구멍을 통해 희미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온 달빛은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 알갱이들을 신비롭게 비췄다.
방의 벽면은 정교하지만 색이 바랜 조각들로 가득했다. 하늘의 별자리, 그리고 카인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형상의 존재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쩐지 모를 불편하고 압도적인 기운이 온 방을 채우고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단이 올려진 제단 위에 놓인 검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 그의 팔뚝만 한 크기의 날카로운 조각이었다. 마치 흑요석 같기도,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심연의 빛을 담은 듯한 조각이었다. 달빛을 반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빛마저 빨아들이는 듯했다. 조각의 중심부에서는 아주 미세하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고동이 느껴졌다.
*이건 대체 뭐지?*
카인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조각 주변의 공기는 묘하게 따뜻했고, 소리 없는 에너지가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그는 손을 뻗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이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젠장, 만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살이 닿는 순간, 순수한 에너지가 그의 몸을 꿰뚫는 듯한 맹렬한 전류가 전신을 강타했다. 조각에서 뿜어져 나온 에테르 같은 보랏빛 섬광이 방을 가득 채웠고, 그의 시야는 순식간에 눈부신 빛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의 귀가 아닌, 그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소리 없는 비명. 고대 언어로 속삭이는 수많은 목소리의 합창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이한 느낌에 휩싸였다.
눈앞에는 이미지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빛으로 지어진 거대한 도시들, 별빛에 감싸인 존재들, 대격변,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모든 것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사라졌다.
털썩,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조각은 이제 제단 위에서 몇 인치 떨어져 공중에 떠 있었고, 격렬하게 보랏빛 기운을 뿜어내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빛은 카인의 격렬하게 뛰는 심장 박동과 동조하듯 진동했다.
그리고 그의 팔뚝에, 벽에 새겨져 있던 기묘한 문양 중 하나가 보랏빛으로 타오르며 선명하게 새겨졌다.
바깥에서는 땅이 울렸다. 뒤쫓던 사냥꾼들이 승리와 공포가 뒤섞인 듯한 절규를 내질렀다. 그들이 그를, 아니, 이 거대한 마법의 파동이 뿜어져 나온 근원지를 찾아낸 것이었다.
카인은 바닥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이 힘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너무나도 거칠었다. 마치 그의 영혼 자체가 산산이 찢어지고 다시 벼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대의 마법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저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되어가는 듯했다. 땅속을 흐르는 에너지 라인, 공기 중의 마나 흐름, 심지어 멀리 떨어진 바깥 생명체들의 심장 박동까지도… 그 모든 것이 감각을 통해 밀려들어왔다.
동시에,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유적의 돌멩이들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마치 그를 향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듯했다.
“드디어… 깨어났는가, 망각 속의 씨앗이여.”
카인은 밀려드는 압도적인 감각을 밀어내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증폭될 뿐이었다.
고대의 구조물이 신음하듯 거칠게 흔들렸다. 먼지와 작은 돌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갑자기, 방의 한쪽 벽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는 어둡고 룬 문자가 새겨진 갑옷을 입은 세 명의 거구의 존재가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흉측한 가면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악의적인 핏빛 광채가 번뜩였다. 그들은 카인과 격렬하게 고동치는 조각, 그리고 그의 팔에 새겨진 빛나는 문양을 번갈아 응시했다.
“저것이군.”
한 존재가 으르렁거렸다. 뒤틀리고 비인간적인 목소리였다.
“고대의 심장을 깨운 자.”
카인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시야는 흐릿했고,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의 존재의 깊은 곳에서, 그 거칠고 보랏빛 힘의 한 줄기가 점화되었다. 작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반항심이었다.
그는 이 힘이 무엇인지, 혹은 그 대가가 무엇일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섬뜩할 정도로 확실했다. 그의 삶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추격자들은 더 이상 그저 그를 쫓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그가 의도치 않게 소유하게 된 그 ‘힘’을 사냥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