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잿빛 새벽의 그림자

숨 쉬는 것조차 사치였다. 폐허가 된 도시의 새벽 공기는 먼지와 재, 그리고 썩어가는 시체의 달큰한 악취로 가득했다. 지아는 낡은 운동화 밑창이 닳아 구멍 난 것을 애써 무시하며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햇빛은 빌딩 숲에 가로막혀 겨우 꼭대기만을 비출 뿐, 그녀가 걷는 거리는 영원한 황혼처럼 어둑했다.

옆구리에 찬 식칼의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녹슨 칼날 위로 비치는 핏자국은 그녀가 지나온 지옥 같은 시간들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어제, 간신히 찾은 통조림 한 조각을 삼키면서도 목구멍이 타는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오늘은 반드시 마실 물을 찾아야 했다.

“흐읍… 큭…”

목에서 끓어오르는 기침을 억눌렀다. 작은 소리 하나도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 거대한 무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규칙은, 소리 내지 않는 것. 눈에 띄지 않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

낡은 상점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삐걱거렸다. 유리창은 깨져나가고, 내부에는 약탈당한 흔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아의 눈은 냉정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 구석진 진열장 뒤편, 혹은 계산대 아래. 누군가 급하게 도망치면서 놓친 생존품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둠 속을 더듬어 상점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 조각들이 신발 밑창에 밟히며 불쾌한 소리를 냈다. 지아는 몸을 한껏 숙여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묘하게 섞인 쇠 비린내가 역겨웠다.

“젠장…”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선반은 텅 비었고, 진열대는 부서져 나뒹굴었다. 이젠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는 절망감이 심장을 짓눌렀다. 이대로라면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결국은 끝을 맞이하게 될 테고.

그때였다.

작은 진열대 뒤편, 어둠이 깊게 드리워진 곳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아의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식칼을 꽉 쥐고 자세를 낮췄다. 숨소리마저 멈췄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적인 ‘그것들’의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인간일까? 아니면, 변이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숨기며 진열대 끝에 다다랐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확인하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체였다.

핏기 없는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했고, 앙상한 팔다리에는 검푸른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찢어진 옷은 너덜거렸지만, 뼈와 가죽만 남은 다른 좀비들과는 달랐다. 여전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텅 비어 있었다. 생기 없는 회색빛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메마른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끔찍한 상처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섬뜩했다.

일반적인 좀비라면, 이미 그녀의 존재를 감지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끔찍한 신음과 함께. 그러나 그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지아는 숨을 참고 그를 관찰했다. 이것은 일반적인 ‘변이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류의 변이체를 봐왔지만, 이토록 정적인 존재는 처음이었다. 위협적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이한 고요함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지아가 숨죽여 몸을 숨기고 있던 진열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울었다. 균형을 잃은 지아가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 조각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콰장창!**

그 소리에 웅크리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 눈동자가 느릿하게 지아를 향했다. 지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본능적으로 식칼을 치켜들었다.

“크르륵…!”

그러나 그가 내는 소리는 익숙한 좀비의 신음이 아니었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혹은… 고통에 찬 신음 같기도 했다. 그의 시선은 지아의 얼굴에 박혔다. 다른 좀비들처럼 굶주린 광기가 아니라, 그저… 텅 빈 호기심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지아는 칼끝을 떨었다. 이대로 죽일까? 아니, 어쩌면…

그때, 멀리서부터 익숙한 끔찍한 소음이 들려왔다.

“으어어어…! 으아아아아!”

떼 지어 몰려오는 ‘그것들’의 울음소리였다. 수십, 어쩌면 수백 마리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아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망했다. 이 상점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상점 안에는 그녀와… 그리고 저 이상한 존재만이 있었다.

그녀가 도망치려는 순간, 웅크리고 있던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키는 예상보다 훨씬 컸고, 마른 몸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곧 상점 입구로 향했다.

“크르륵…!”

무언가 긁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가 천천히 발을 옮겼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는 지아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었다. 상점 입구, 즉 ‘그것들’이 몰려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기 서…!”

지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살하려는 건가? 아니면…

그의 움직임은 느려 보였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묘한 속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내 그는 상점 입구에 다다랐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쿵! 쿵! 쿵!**

마침내,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유리창을 깨고 상점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썩어가는 육체에서는 역겨운 악취가 풍겼고, 굶주린 눈은 피와 살점을 갈구하는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들은 입구에 서 있는 그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끝인가? 저 이상한 존재는 좀비들에게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그녀의 차례였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끔찍한 신음과 함께 달려드는 좀비들 사이로, 그의 몸이 마치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 순간적인 움직임이었다. 육안으로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유려했다.

그는 맨손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짓 한 번, 발차기 한 번에 좀비들의 몸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거나, 목이 꺾였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그 피는 붉지 않았다. 검고 탁한 피가 그의 몸을 적셨다.

지아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드는 좀비들이었지만, 그에겐 닿을 수조차 없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잘 짜인 무용 같았다. 우아하고, 치명적이었다.

불과 몇 분 만에, 상점 안은 끔찍한 지옥으로 변했다. 수십 마리의 좀비 시체가 사방에 나뒹굴었다. 검은 피 웅덩이가 고였고, 썩은 살점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그는 서 있었다.

찢어진 옷자락에 검은 피가 낭자했지만, 그의 창백한 피부에는 단 하나의 상처도 없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마치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응시하는 거대한 조각상 같았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다시 지아를 향했다.

지아는 식칼을 든 채로 굳어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 하지만 그 공포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경외감과… 묘한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대체 무엇인가? 왜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나? 왜 다른 좀비들을 학살했나?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지아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거기에는 이제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후의 공허함, 혹은 무감각함.

그때, 지아는 그의 눈동자 가장자리에서 아주 미세하게, 핏빛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착각이었을까? 아니,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천천히 지아에게 다가왔다.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지아는 뒷걸음질 치고 싶었지만, 발이 땅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텅 빈 시선으로 지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감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아는 그의 시선 속에서 어렴풋이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잊혀진 기억을 더듬는 듯한,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었다.

그의 손이 느리게 올라왔다. 지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차가운 그의 손가락이 지아의 뺨에 닿았을 때, 그녀는 얼어붙었다. 끔찍한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은 부드럽게 지아의 뺨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아주 희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 아…”

인간의 언어였다. 메마른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그녀의 이름이었다. 지아는 눈을 번쩍 떴다.

“…누구… 니?”

그의 회색빛 눈동자에 다시 한번 핏빛 섬광이 스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지아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가 힘없이 비틀거렸다.

“어…?”

지아는 반사적으로 그의 몸을 지탱했다. 그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차갑고 가벼웠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그의 살갗은 얼음처럼 냉정했다. 그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며, 지아의 품에 쓰러졌다.

그의 눈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텅 비어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끝에는, 지아는 직감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외로움이 있었다.

지아는 품에 안긴 차가운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숨소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살아있었다. 다른 방식이었지만, 분명히.

식칼을 든 손이 힘없이 늘어뜨려졌다. 죽여야 한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재앙의 근원이며, 살아있는 시체일 뿐이다.

하지만 지아의 눈은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그 존재의 텅 빈 눈동자 속에서,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인간적인 따뜻함과 연민이었다.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차갑고 푸석한 머리카락이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금기를 지금, 그녀는 깨트려버린 것만 같았다.

잿빛 새벽이 붉게 물들어가는 가운데, 지아는 숨죽인 채 그녀의 품에 안긴 그를 안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이제, 그녀의 지옥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지아는 그를 ‘제로’라고 불렀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존재하지 않는 존재.

그리고 이 만남은, 종족을 뛰어넘는 금지된 사랑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