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새벽 3시, 이상한 방문객**
도시의 불빛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법이다. 스물여섯, 서진우는 늘 그 불빛 속에서 자신만의 밤을 쌓아 올렸다. 그의 공간은 서울 외곽의 낡은 오피스텔 7층. 창밖으로는 희미하게 고가도로의 불빛이 이어졌고, 안으로는 그의 열정과 함께 너저분하게 널린 공구들과 전자 부품들이 그의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책상에 코를 박고 있었다. 삐딱하게 걸친 안경 너머로 작은 회로 기판 위를 정교하게 움직이는 납땜 인두가 위태롭게 빛났다.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거실 벽걸이 에어컨의 희미한 냉방 소리만이 적막을 깨트리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복잡한 회로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며칠째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그가 개발 중인 소형 유인 드론, 코드명 ‘천둥새’는 아직 자율 비행 알고리즘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보였다.
“젠장, 또 오류야?”
진우는 작게 중얼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쨍그랑, 금속과 플라스틱이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책상 모서리에 놓여있던 작은 드라이버 세트가 ‘딸각’ 소리를 내며 제 스스로 옆으로 한 뼘 정도 밀려났다.
진우는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회로도에 집중했다. 하지만 곧 어딘가 불편한 기시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분명, 저 드라이버 세트는 자신이 방금 펜을 던지면서 흔들렸거나, 아니면 잠시 정신이 몽롱했던 탓이리라.
“하아… 역시 밤샘은 몸에 안 좋아.”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어두웠지만,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희미한 윤곽을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 안으로 차가운 액체가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때였다.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액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미세하게 기울었다. 진우는 음료수를 마시던 동작을 멈췄다. 저 액자는 그가 이사 온 이래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었다. 못을 단단히 박아둔 탓에 웬만한 지진에도 끄떡없을 거라 확신했다.
“…뭐지?”
진우는 천천히 액자 쪽으로 걸어갔다. 액자는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다. 누가 건드린 흔적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액자를 똑바로 고쳐 걸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액자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음료수를 마시려는데, 이번에는 주방 선반에 놓여있던 유리컵 하나가 ‘덜그럭’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
밤의 정적이 깨지는 섬뜩한 소리였다. 진우는 얼어붙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가 침입했나? 아니, 문은 잠겨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컵의 잔해들만이 바닥에 흩어져 섬뜩한 경고처럼 빛나고 있었다.
“누… 누구 있어?”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허공으로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서둘러 부엌 조명을 켰다. 환한 빛이 쏟아져 내리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깨진 유리 파편을 치우기 위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왔다.
유리 파편을 쓸어 담으려 몸을 굽힌 순간, 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작업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닫혀 있었던 문이었다. 문은 낡았지만, 헐겁지 않았다. 게다가 열린 정도가 마치 누군가 발로 걷어찬 것처럼 활짝 젖혀져 있었다.
진우는 빗자루를 떨어뜨릴 뻔했다. 오싹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는 작업실 문이 열린 채로 자신의 책상을 응시했다. 책상 위, 그가 아끼던 소형 유인 드론 ‘천둥새’의 프로토타입이 균형을 잃고 한쪽 날개가 부러진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고의로 망가뜨린 것처럼 보였다.
진우는 망연자실했다. 몇 달간 밤잠 설쳐가며 만든 프로젝트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작업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쿵, 쿵, 하고 울렸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작업실은 차분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가 쓰러진 ‘천둥새’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지직!’
갑자기 작업실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형광등은 거의 터질 듯한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겼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지지지직! 쾅!’
마침내 전등 하나가 폭발하듯 터져 버렸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작업실은 더욱 어두워졌다. 남아있던 전등마저도 미약하게 깜빡일 뿐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등 뒤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온몸의 털이 다시 한번 곤두섰다. 그는 공포에 질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작업실 한구석, 그의 공구 상자가 놓여있던 자리에서 묵직한 소형 로봇 팔이 흔들림 없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은 진우가 과거에 개발하다 중단했던, 무거운 부품을 정교하게 들어 올리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던 산업용 로봇 팔의 축소형이었다. 은색의 차가운 금속 표면은 희미한 잔광에도 번들거렸다.
그 로봇 팔은 마치 어떤 의지를 가진 듯,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손가락, 아니, 집게를 펼쳤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그 동작이 마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보였다.
진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눈앞의 광경은 현실이 아니었다. 환각이어야 했다. 그러나 눈앞의 로봇 팔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공중에 떠 있었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로봇 팔이 서서히 진우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마치 그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하는 것처럼. 진우는 바닥에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켰다.
“오… 오지 마…!”
그는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로봇 팔의 차가운 금속 집게가 그의 얼굴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멈춰 섰다. 마치 그를 빤히 응시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천둥새’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 삐빅!… 삐이이이익!’
부서진 드론에서 이상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오작동하는 기계음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알리려는 듯한 기묘한 신호 같기도 했다. 그 소리에 로봇 팔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전등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깜빡였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깜빡이는 불빛 사이로, 로봇 팔의 금속 표면에 아주 희미하게, 파란색 글자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경고: 침입… 감지… 비…상….]
글자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진우는 그것이 단순한 잔상이 아님을 직감했다. 로봇 팔이 내뿜는 섬광이 아니었다. 마치 팔 자체가 어떤 정보를 발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로봇 팔이 진우에게서 멀어지더니, 그의 책상에 놓여있던 그의 태블릿 PC를 향해 돌진했다.
‘탁!’
로봇 팔의 집게가 태블릿 PC를 거칠게 잡아챘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태블릿 화면을 진우에게 보이게 돌렸다.
[정체 불명… 존재… 접근… 시스템… 오염… 방어… 모드… 전환… 필요.]
화면에는 방금 로봇 팔에서 본 것과 같은 파란색 글자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기계적인, 그러나 절박한 경고 메시지였다.
진우는 눈앞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인가? 아니, 기계가 스스로 움직이며 경고 메시지를 띄운다고? 그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었다.
로봇 팔은 태블릿을 든 채로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천둥새’가 있던 자리에서 섬뜩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익! 시스템 오버로드! 위험! 위험!’
경고음과 함께 작업실의 모든 전등이 동시에 터져 버렸다.
콰아앙!
작업실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만이 공포스러운 침묵을 갈랐다. 진우는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오직 그의 귀에 맴도는, 기계가 발산하는 절박한 경고음과, 차가운 금속 로봇 팔의 존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귀신 들린 현상이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 찾아온 것은, 예측 불가능한 기계적 존재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제 그에게 경고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그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