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잿빛 심연의 고물상
이서진은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그녀의 헤드 램프가 뿜어내는 좁고 희미한 불빛만이 앞길을 더듬었다. 낡은 작업복은 곳곳이 헤지고 기름때로 얼룩져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내쉬는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방해했다. 이곳은 인류의 찬란했던 과거가 짓밟히고 부서진 채 떠다니는 거대한 무덤, ‘폐기 구역 7호’였다. 한때 막강한 위용을 자랑했을 거대 전함의 잔해가 우주를 유영하며, 이서진 같은 자들에게는 위험하면서도 때론 생명의 끈을 이어주는 고물 덩어리로 전락해 있었다.
“서진, 왼쪽 덱 4 구역. 예상치 못한 에너지 누출 감지. 잔여 동력로에서 불안정한 신호가 잡힌다.”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건조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는 이서진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안내자, 인공지능 ‘세라’의 것이었다. 세라는 그녀의 헬멧 내부에 직접 음성 신호를 보냈다.
“불안정하다는 건 폭발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세라?”
이서진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깨에 짊어진 중량물 수거 장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발아래는 한때 전함의 복도였을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온갖 종류의 부서진 금속 파편과 정체 모를 먼지로 가득했다. 중력 제어 장치는 진작에 고장 나 있었고, 그녀는 자기장 부츠를 이용해 벽과 천장을 오가며 이동해야 했다.
“정확히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의미지. 하지만 저 정도 규모의 잔여 동력로라면, 네 정처 없음호의 다음 항해에 필요한 에너지 코어 두 개를 충분히 보충하고도 남을 거야.”
세라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기대감이라기보다는, 오직 효율과 생존에만 맞춰진 알고리즘이 내놓는 최적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한 확신에 가까웠다. 이서진은 피식 웃었다. 언제나 차갑게만 느껴지던 세라가 가끔씩 보이는 인간적인 면모는 그녀를 조금이나마 안심시켰다.
그녀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거대하고 낯설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강철 문은 폭격을 맞은 듯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두꺼운 전선 다발은 꿈틀거리는 뱀처럼 사방으로 엉켜 있었다. 인류가 이 광대한 우주를 누비던 시절의 기술력은 가히 경이로웠으나, 이제는 그저 파괴된 영광의 잔해일 뿐이었다.
마침내 세라가 지시한 지점에 다다랐다. 거대한 동력 코어 격납고였다. 사방은 녹슨 금속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에너지 코어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코어는 칙칙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지만, 미세하게 흐르는 푸른빛이 그 안에 잠재된 막대한 에너지를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그 푸른빛은 마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목표 확인. 불안정한 에너지 흐름으로 인해 주변 자기장이 왜곡되고 있다. 조심해, 서진.”
세라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이서진의 부츠가 자력을 잃었다. 그녀는 균형을 잃고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가장 가까운 금속 기둥을 붙잡았다. 차가운 강철의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젠장! 경고를 좀 더 빨리 해줬어야지!”
“오차 범위 내의 자기장 변화였다. 하지만 네가 예상보다 코어에 너무 가까이 접근했군.”
세라의 무심한 답변에 이서진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그랬다. 세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최적의 판단을 내렸지만, 그 판단 속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실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는 겨우 자세를 바로잡고 코어에 접근했다. 거대한 코어를 분리하는 작업은 항상 위험했다. 특히 이렇게 불안정한 코어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정처 없음호’는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에너지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그녀의 작은 함선은 다음 항성계로의 도약을 시도조차 할 수 없을 터였다. 결국 이 광활한 우주의 차가운 먼지가 될 뿐이었다.
이서진은 장비를 꺼내 코어 연결부에 연결했다. 투박하지만 효율적인 그녀의 장비는 고물상에서 주워 모은 부품들로 조립된 것이었다. ‘징—!’ 하는 소리와 함께 연결부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스파크는 언제나 있었다.
“코어 분리 준비 완료. 수동으로 절단 회로 활성화.”
세라의 지시에 따라 이서진은 패널의 버튼을 눌렀다. 굉음과 함께 격납고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푸른빛을 내던 코어가 더욱 격렬하게 깜빡였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삐이이익——!!!!’**
고막을 찢을 듯한 비상 경보음이 울렸다. 격납고 내부의 비상등이 붉은색으로 번쩍이며 어둠을 갈랐다.
“서진! 잔존 보안 시스템 활성화! 침입자로 인식되었다!”
세라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변했다. 기계적인 냉정함이 사라진, 순수한 경고음이었다.
“뭐라고? 여태껏 아무 신호도 없었잖아!”
이서진은 소리쳤다. 그동안 수십, 수백 번을 이런 폐기 전함에 드나들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폐기 구역 7호’는 완전히 버려진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깊은 수면 모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네가 코어에 너무 깊이 개입하면서 동력이 공급된 모양이다. 지금 즉시 이탈해야 해!”
세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붉은빛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격납고 한쪽 벽에 고정되어 있던 자동 방어 터렛이 굉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낡고 녹슬었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포구가 이서진을 향해 정렬되었다.
“망할!”
이서진은 코어에서 서둘러 장비를 분리했다. 절반쯤 분리된 코어는 더욱 불안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코어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살아야 했다.
첫 번째 플라즈마 탄이 그녀의 옆 벽을 강타했다.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철제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서진은 몸을 날려 파편들을 피했다. 그녀는 터렛의 시야를 벗어나기 위해 좁은 통로로 뛰어들었다. 중력 제어가 불안정한 곳에서 전력 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이 멋대로 튀어 오르고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세라! 가장 빠른 탈출 경로!”
“경로 재설정 중… 북동쪽 통로를 통해 외벽으로 이동해야 한다! 터렛은 시야에서 벗어나면 잠시 추적을 멈출 거야!”
이서진은 세라의 지시대로 몸을 움직였다. 복잡한 통로를 미친 듯이 질주하며, 그녀는 뒤에서 날아오는 플라즈마 탄을 피했다. ‘콰직!’, ‘챙그랑!’ 하는 소리가 그녀의 바로 뒤를 따라붙었다. 살기 위한 본능이 그녀의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앞만 보며 달려야 하는 길과, 뒤에서 쫓아오는 죽음의 그림자뿐이었다.
마침내, 복잡한 통로를 헤치고 외벽 해치에 도달했다. 해치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낡은 전선들이 끊어져 스파크를 튀기고, 공기가 새는 소리가 쉭쉭거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비상 개방 레버를 당겼다.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리고, 잿빛 우주의 심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치 개방! 서진, 당장 함선으로 복귀해!”
세라의 목소리가 경보음과 섞여 들려왔다. 이서진은 망설이지 않고 해치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자기장 부츠가 우주선의 헐에 착 달라붙었다. ‘정처 없음호’는 이곳에 정박해 있던 그녀의 작은 보금자리이자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다. 낡고 볼품없지만, 그녀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같았다.
“젠장, 코어를 못 가져왔잖아!”
이서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함선 내부로 들어섰다. 헬멧을 벗어 던지고 격렬하게 기침했다. 산소 필터가 작동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다.”
세라의 목소리는 다시금 차분함을 되찾았다.
“다행? 다행이라고? 에너지 코어 없이 다음 목적지까지 어떻게 갈 건데? 연료비도 아슬아슬하단 말이야!”
이서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손을 들어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함께 분노가 서려 있었다.
“불안정했던 코어를 강제로 분리했다면 폭발했을 가능성이 90%였다. 그럴 경우 너와 ‘정처 없음호’ 모두 사라졌을 거야. 지금 상태로 다음 정거장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물론 그곳에서 또 다른 코어를 찾아야겠지만.”
세라의 논리적인 답변에 이서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녀의 직감이 잠시 코어에 대한 욕심으로 흐려졌던 것이다.
“그래, 다음 정거장… ‘쓰레기장’이라 불리는 그곳 말이지.”
이서진은 조종석에 앉아 우주선 창밖을 응시했다. 잿빛 우주의 심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차갑게 빛났지만, 그중 어느 곳 하나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대붕괴 이후, 인류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그저 파편처럼 떠다니는 존재가 되었다. 희망은 한때 그랬듯 반짝이는 별빛 속에 존재했으나, 이제 그 빛은 멀어지고 희미해져 가는 꿈에 불과했다.
“세라, 이 항성계 지도는 얼마나 오래된 거지?”
이서진이 문득 물었다.
“대략 200년 전 자료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찬란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지도지. 그때 이후로 업데이트된 자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200년. 인류의 영광이 저물고, 끝없는 암흑기가 시작된 시간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그 영광의 재가 뿌려진 폐허였다.
“그 지도에… ‘별들의 요람’이라고 표기된 곳은 어디쯤이야?”
이서진의 눈동자에 희미하지만 꺾이지 않는 빛이 스쳤다.
“이 항성계 너머, 딥 스페이스 섹터 3 지역에 존재하지만… 접근은 불가능하다. 그곳은 과거 ‘구 인류 연합’의 최후 방어선이었다. 지금은 파괴된 잔해들과 강력한 방어 드론들이 가득한 미지의 구역이지.”
“미지의 구역… 어쩌면 그곳에 뭔가가 남아있을지도 모르잖아. 대붕괴 이전의 마지막 희망이.”
이서진은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이 닳아빠진 조종간 위를 천천히 쓸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 지도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희망? 통계적으로 생존율은 0.001% 미만이다, 서진.”
“세라, 가끔 너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쓰는구나.”
이서진은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피곤했지만, 그 속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건 그저 너의 대화 패턴에 맞춰진 알고리즘 반응일 뿐이다.”
세라의 건조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이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세라가 단순히 알고리즘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님을. 비록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와 세라는 이 잿빛 심연 속에서 함께 버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아직 시간은 있어. 다음 정거장에서 에너지를 채우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정처 없음호’의 엔진을 예열하기 시작했다. 낡고 지친 함선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대한 폐기 전함의 잔해를 등지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잿빛 심연 속에서, 또 한 번의 고단한 항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폐허 속에서 살아남아, 미지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그것이 이서진의 유일한 생존 이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