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아틀라스’호의 함교는 언제나 차가운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무한의 암흑 속을 유영하는 거대한 강철 고래. 내 이름은 강윤호. 계급은 보안팀 소위. 임무는 이 지루하고 드넓은 감옥 같은 우주선에서 무언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물론, 무언가 생기면 그게 더 골치 아프겠지만.
우리 함선은 인류가 발을 딛어본 적 없는 심우주, 일명 ‘망각의 바다’를 탐사 중이었다. 보급선도, 지원 함대도 없이 오직 우리뿐이었다. 벌써 지구 시각으로 2년째. 지겹도록 이어지는 검은 풍경과 알 수 없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조금씩 마모되기 마련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밤마다 꿈에서 지구의 푸른 하늘을 보는 동료들도 분명 있을 테지.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루한 당직 근무 중이었다. 새벽 3시, 코를 고는 동료들 사이에서 홀로 시스템 로그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메인 모니터 한구석에 깜빡이는 작은 빨간 점. 처음엔 센서 오류인 줄 알았다. 심우주에서는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이상했다. 패턴이 없었다. 불규칙하면서도, 끈질기게 자기 존재를 알리는 그 점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했다. 경고창이 팝업되었다. ‘미확인 물체 감지. 거대 에너지 반응 감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이런 경고는 난생 처음이었다. 내가 이 함선에 탄 이래로.
“윤호 소위, 무슨 일인가?” 뒤에서 캡틴 이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눈을 붙인 줄 알았는데, 예민한 양반은 역시나.
“캡틴, 미확인 물체입니다. 엄청난 에너지 반응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보고했지만, 내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캡틴은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좌표를 확인해. 그리고… 탐사팀을 소집해.”
몇 분 후, 박지훈 박사가 눈을 비비며 달려왔다. 그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캡틴! 웬일이십니까? 설마….”
“그래, 박사. 드디어 뭔가 흥미로운 게 나타난 모양이네.” 캡틴의 얼굴에 기대와 긴장이 교차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건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일세.”
수 시간 후, ‘아틀라스’호는 미지의 물체 앞 정지 궤도에 진입했다. 메인 스크린에 포착된 물체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게 대체… 뭐야?” 김민준 상병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보안팀 소속이다.
거대한 암흑 속에서 떠다니는, 기하학적 형태의 구조물. 마치 수천 개의 검은 유리 조각을 이어 붙인 듯했지만, 빛을 머금는 순간, 그 내부에 잠들어 있던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섬뜩하게 빛을 발했다. 검은색이지만, 그 어떤 검정보다도 짙은, 우주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색채였다. 어떤 면에선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심장을 얼어붙게 할 만큼 기괴했다.
“인위적인 구조물인가요, 캡틴?” 박 박사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 자연적으로 형성된 물질은 분명 아닐세. 이건… 문명의 흔적이야.” 캡틴의 눈은 탐욕스러운 빛으로 반짝였다. “탐사팀 편성. 윤호 소위, 자네는 보안팀장으로서 박 박사를 보조해.”
나와 박 박사, 그리고 김 상병은 소형 셔틀 ‘스콜피온’을 타고 유물에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전파가 통신을 방해했다.
“지휘본부, 스콜피온입니다. 유물 표면에 착륙 준비 중. 통신 상태 불량.”
“…수신 상태 좋지 않다! 주의해!” 캡틴의 목소리가 지지직거렸다.
표면에 착륙한 우리는 조심스럽게 셔틀에서 내렸다. 유물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거대한 산맥처럼 시야를 압도했다. 표면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만져보니 뼈대가 느껴지는 듯한 기이한 감촉이었다.
“온도 -150도, 대기 없음. 구성 성분 미확인. 박사님, 이것 보세요!” 김 상병이 레이저 스캐너를 들이대며 외쳤다. “스캐너가 완전히 먹통입니다! 이런 물질은 처음 봅니다!”
박 박사는 광란에 가까운 눈빛으로 유물의 표면을 어루만졌다. “경이롭군! 이건… 미지의 금속이야. 이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봐. 이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야. 어떤… 정보야.”
그는 손가락으로 유물 표면의 복잡한 문양을 훑었다. 문양들이 박 박사의 손길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검은 표면 아래에서 푸른 빛이 맥동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박사님, 너무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경고했지만, 그는 이미 유물에 완전히 매료된 상태였다.
“윤호 소위, 저 안을 봐요! 저 안에… 뭔가 있어!”
박 박사가 가리킨 곳은 유물의 한 면에 깊숙이 파여 있는, 흡사 문과 같은 형태였다. 그 문은 표면과 마찬가지로 짙은 검정이었지만, 그 안쪽은 더 깊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열립니다!” 김 상병이 외쳤다.
우리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박 박사는 그 문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유물 전체가 끔찍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박사님! 돌아오세요!” 내가 소리쳤지만 늦었다.
유물의 문이 닫히기 직전, 박 박사의 몸에서 섬뜩한 푸른빛이 번쩍였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문은 굉음과 함께 닫혔다.
“박사님!” 김 상병이 달려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떤 수단으로도 열리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박 박사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은 피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피부 아래로 알 수 없는 푸른 선들이 마치 혈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눈은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숨… 숨이… 으으윽….” 그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김 상병, 박사님을 셔틀로 옮겨! 빨리!” 나는 패닉에 빠진 김 상병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간신히 박 박사를 셔틀에 싣고 유물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유물 전체에서 강렬한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렸다. 수천, 수만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내 귀에 속삭이는 듯한 환청. 고통스러웠다. 두통이 뇌를 찢는 것 같았다.
간신히 ‘아틀라스’호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함선 전체의 시스템이 먹통이 되었다. 비상등만 깜빡거리는 함교는 아수라장이었다.
“캡틴! 통신 두절! 주 전력 계통 문제 발생!”
“비상 전력으로 전환해! 윤호 소위! 박 박사는 어떻게 됐나?”
박 박사는 의무실 침대에 누워 사지를 비틀고 있었다. 그의 피부를 뒤덮은 푸른 선들은 더욱 짙어져, 마치 살아있는 문신처럼 꿈틀거렸다. 그의 눈은 풀려 있었고, 입에서는 의미 없는 신음만이 흘러나왔다.
“의무관!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다급히 물었다.
“모릅니다! 알 수 없는 독소에 감염된 것 같습니다. 신체 모든 장기가 급속도로… 괴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살아있는 세포가… 죽어가는 동시에 다시… 자라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의무관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의 말은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죽어가면서 다시 자란다니.
“박사님! 제 말 들립니까!” 내가 그의 뺨을 때려보았지만, 그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눈동자만 휘둥그레 뜬 채 천장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목에서 끔찍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때, 박 박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내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으… 으아아아악…!”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동시에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의 손아귀에 잡힌 내 피부가 시뻘겋게 변하며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간신히 그의 손을 뿌리쳤다. 내 손목에는 다섯 개의 푸른색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유물의 문양처럼.
“이게… 이게 대체….”
그때, 박 박사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는 완전히 검게 변해 있었고, 입에서는 이빨이 길게 튀어나와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그는 짐승 같은 포효와 함께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손은 이미 괴물처럼 변형되어 있었고, 손톱은 칼날처럼 길게 자라나 있었다. 의무관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박 박사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피가 튀는 소리와 함께 뜯어냈다.
“젠장! 박 박사가 미쳤어!” 김 상병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권총을 뽑아 들었지만, 내 손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우리가 알고 있던 박지훈 박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저건… 괴물이었다.
방금 전까지 우주선의 ‘두뇌’였던 남자가, 이제는 피에 굶주린 짐승이 되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미지의 유물이 뿜어냈던 푸른빛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함선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경고음과 함께, 의무실 문이 육중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총을 겨눈 채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미지의 유물에서 ‘무엇인가’를 가져온 게 아니었다.
그 유물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심어놓은 거였다.
이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무엇인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