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이세계의 눈, 낯선 숲의 심장
사무실 빌딩의 답답한 공기를 벗어나자마자, 찬 바람이 뺨을 스쳤다.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어깨를 으쓱하며 지후는 퇴근길 인파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하다 지쳐버린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저 따뜻한 집과 푹신한 침대만을 갈망할 뿐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데, 옆 차선에서 굉음과 함께 질주해 오던 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브레이크 밟는 소리도 없이, 그저 아득한 소용돌이와 함께 세상이 흔들렸다. 눈 깜박할 새,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끔찍한 충격과 함께 의식이 아득해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섬광처럼 터져 오르던 파란색 불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축축하고 푸른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기어이 들어 올리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아니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나뭇가지 사이로는 기이할 정도로 붉은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숲속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알 수 없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는 낯설면서도 어딘가 섬뜩했다.
“…여기가 어디지?”
지후는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온몸이 쑤셨지만, 놀랍게도 부러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바닥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키자, 축축한 이끼와 나뭇잎이 손에 달라붙었다. 입고 있던 양복은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제 몸에 걸쳐져 있었다.
꿈인가? 아니, 이런 생생한 감각은 꿈일 리 없었다. 뺨을 꼬집어보니 욱신거리는 통증이 전해졌다. 이건 현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분명 트럭에 치였는데.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적인 생각이 앞섰다. 지후는 방향 감각도 없이 그저 숲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발아래 밟히는 풀들은 평생 본 적 없는 짙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가끔씩 땅에서 솟아난 버섯들은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목은 타들어 가고, 허기는 아득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길을 잃거나, 아니면 낯선 짐승에게 잡아먹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때였다.
나무와 넝쿨로 뒤덮인 작은 언덕 너머에서,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단순히 숲의 기운과는 다른,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한 묵직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지후는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을 오르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마치 거대한 건축물이 땅속에서 솟아난 듯한 거대한 석조 구조물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이끼와 덩굴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웅장함과 정교함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돌기둥들은 부러져 쓰러져 있었고, 그 사이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힘든 거대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지?”
지후는 홀린 듯 구조물에 다가갔다. 손을 뻗어 차가운 돌벽을 만지자, 손끝으로 희미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돌벽 속에서 어떤 존재가 속삭이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 *찾아라… 잊혀진 심장을…*
환청에 지후는 움찔하며 손을 뗐다. 착각일까? 며칠 밤낮을 굶고 헤매다 보니 헛것이 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단순히 배고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거대한 유적은 숲의 심장부에 깊이 숨겨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니, 최소한 그가 알던 인류의 문명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때, 그의 시선이 땅에 떨어져 있던 낡은 양피지 조각에 닿았다.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집어 들자 손바닥만 한 양피지 위에 그려진 희미한 그림과 글자들이 드러났다.
그림은 이 거대한 구조물의 전체를 나타내는 듯한 거친 지도였고, 중앙에는 거대한 지하 공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지후는 그 문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림의 형태를 통해 그것이 이곳의 ‘지하 유적’을 나타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가장 크게 그려진, 마치 심장처럼 보이는 문양 옆에는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듯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크라토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이 지후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동시에 뇌리를 스치는 생각.
‘여기서 나가려면… 이 유적을 탐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존 본능과 함께,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그를 유적 안으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어쩌면 이곳에 이 세계에 대한 단서가, 아니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예감이 들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지후는 결심했다. 이대로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는 천천히, 양피지 조각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덩굴과 부서진 돌들이 엉켜 있는 거대한 입구가 그의 앞에 드러났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지후는 심호흡을 했다.
“젠장, 어차피 죽을 목숨. 한번 해보자.”
그의 발걸음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유적의 차가운 돌벽에서 다시 한번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 *환영한다, 새로운 계승자여…*
지후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저 어둠 속으로 한 발짝 내딛을 뿐이었다. 그 문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이곳이 그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만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