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도시의 정적은 항상 나를 짓눌렀다.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과거의 번영을 조롱하는 거대한 기념비처럼 서 있었다. 희미한 햇살조차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은 시체 썩는 냄새와 먼지가 뒤섞인 공기로 가득했다. 폐부를 찢는 듯한 불쾌한 공기를 들이쉬며,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운동화 밑창이 깨진 유리 조각 위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주변의 침묵을 갈랐다.
내 이름은 이진우. 스물여덟. 한때는 꽤 괜찮은 건축회사에 다니며 평범한 삶을 꿈꾸던 남자였다. 지금은, 그냥 살아남은 남자. 그뿐이었다.
식량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라곤 사흘 전 발견한 곰팡이 핀 비스킷 조각 몇 개가 전부였다. 위장은 쓰라리게 비명을 질렀고, 머리는 둔탁하게 울렸다. 이런 상태로 계속 움직이는 것은 위험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옥 같은 세상이었다.
오늘의 목표는 딱 하나였다. 뭔가, 먹을 만한 것을 찾는 것.
어제 탐색했던 상점가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약탈자들이 쓸어가고, 좀비들이 헤집어 놓은 흔적만 가득했다. 이제 남은 곳은 주택가뿐이었다. 그러나 주택가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방 안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청객들, 그리고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생존자들. 다른 생존자들은 때로는 좀비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젠장….”
나지막이 욕설을 뱉었다. 내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까 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낡은 벽돌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창문은 대부분 깨져 있었고, 문은 뜯겨 있거나 굳게 잠겨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섬뜩한 신음 소리에 심장이 다시 한번 내려앉았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소리는 들을 때마다 온몸의 피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골목의 끝에 다다르자, 다른 집들보다 비교적 온전해 보이는 2층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안쪽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허리에 찬 녹슨 칼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한때는 과도였던 그것은 이제 내 유일한 보호막이자 무기였다. 칼자루를 쥔 손에 땀이 흥건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하아….”
작게 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대문을 통과했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퀘퀘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미세한 먼지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뒤집어진 신발장과 깨진 화분이 나뒹굴었다. 거실 쪽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며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뒤집어진 소파와 부서진 가구들, 그리고 바닥에 흩뿌려진 종이 조각들. 누군가 급하게 도망치거나, 혹은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흔적이었다. 나는 주위를 경계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좀비의 흔적은 없었다.
가장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식량을 찾기 위해서였다. 부엌은 거실보다 더 처참했다. 깨진 접시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냉장고 문은 활짝 열린 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안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형체를 알 수 없는 썩은 음식물뿐이었다.
‘이런 젠장.’
좌절감이 밀려왔다. 또 헛수고인가.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때, 싱크대 아래쪽 수납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문들은 모두 열려 있었지만, 그곳만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혹시,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샘솟았다.
나는 무릎을 굽혀 수납장 문을 열었다. 퀴퀴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두 개의 통조림을 발견했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지만, 찌그러지거나 녹슨 곳은 없었다. 라벨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내용물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정성과 운에 맡겨야 했다.
“찾았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작은 환호였다. 손이 떨렸다. 통조림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 순간의 안도감이 너무 커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작은 통조림 두 개가 앞으로 며칠을 더 버티게 해줄 생명줄이었다.
통조림을 가방에 넣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탐욕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탐욕은 곧 경계심으로 변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2층은 아직 탐색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찾을 수도 있었다.
‘조심해야 해.’
나는 속으로 되뇌며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은 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했다. 2층 복도 역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방문들이 닫혀 있었다.
첫 번째 방문을 열었다. 침실이었다. 엉망진창으로 흩어진 옷가지들과 뒤집어진 서랍장, 깨진 거울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방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칼끝으로 조심스럽게 문틈을 찔러보았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안에 뭔가 있어.’
나쁜 예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혹시 살아남은 누군가가? 아니면, 좀비가?
나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돌려보았다. 잠겨있던 문은 예상외로 부드럽게 열렸다. 틈새로 보이는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형체가 보였다.
“크으으윽….”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였다. 그것은 문 바로 뒤에 숨어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늦었다. 썩어가는 손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살갗을 뚫고 들어올 것 같은 악력에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젠장!”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놈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시체 썩는 냄새가 내 코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놈의 얼굴은 이미 반쯤 썩어 있었고, 텅 빈 눈동자는 갈증으로 이글거렸다. 놈의 입에서는 피 섞인 침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놈의 썩은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녹슨 칼날이 놈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고깃덩어리를 가르는 불쾌한 감촉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놈은 잠시 휘청거렸지만, 끈질기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놈의 손톱이 내 어깨를 할퀴었다. 얇은 점퍼 위로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칼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놈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마침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축축한 소리와 함께 썩은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고였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발광하듯 뛰었다. 어깨에서는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점퍼를 걷어보니, 길게 찢어진 상처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놈의 손톱에 긁힌 상처였다.
‘아니야, 괜찮아. 살짝 긁힌 것뿐이야.’
나는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좀비의 공격에 직접 물린 것이 아니라 긁힌 것뿐이라면,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다. 감염은 순식간이었다. 이 작은 상처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었다.
나는 놈이 쓰러진 방 안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침대 밑에서 낡은 배낭 하나를 발견했다. 놈이 죽기 직전까지 움켜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배낭을 꺼내 들었다. 무게가 느껴졌다.
배낭을 열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깨끗하게 포장된 물병 하나와, 마른 육포 몇 조각, 그리고 작은 구급상자였다. 구급상자 안에는 소독약과 붕대가 들어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구급상자를 열어 소독약을 꺼냈다. 따가운 소독약이 상처 부위에 닿자 고통이 엄습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어쩌면 이 배낭이, 이 작은 희망이, 나를 살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깨의 상처를 대충 치료하고 육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질긴 육포가 씹히는 동안, 나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고독감과 함께, 다시 한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창밖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해는 기울고 있었고, 곧 어둠이 찾아올 터였다. 어둠은 좀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사냥터였다. 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중얼거렸다. 어깨의 통증과 허기,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가 나를 짓눌렀지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내일은 또 다른 지옥이 나를 기다릴 테지만, 나는 기필코 그 지옥을 뚫고 지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