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언제나 이 도시의 가장 깊은 속살을 드러냈다. 거대한 네온사인 간판들이 뿜어내는 색색의 빛은 눅눅한 아스팔트 위로 번져 흐느적거렸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산성비는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동시에 또 다른 종류의 음산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2242년의 네오-서울은 인간의 욕망과 기계의 효율이 뒤섞여 빚어낸, 거대하고 불투명한 유기체 같았다.

이안은 낡은 창고 건물의 가장 깊숙한 곳, 누전된 회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직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작은 은신처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땀과 기름때가 뒤섞인 작업복은 그의 지친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낡은 콘솔 앞, 홀로그램 스크린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미지의 코드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코드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통해 그녀의 존재를 더듬고 있었다.

똑똑.

나지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비 오는 날 밤의 천둥소리처럼, 혹은 심장박동처럼.
이안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작업대 구석에 놓인 에너지 캐논을 집어 들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그의 눈동자가 좁아졌다.

“이안.”

속삭이듯 그의 이름을 부르는, 금속음이 아주 미세하게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 동시에 은신처 안쪽 벽에 설치된 낡은 스크린에 희미한 영상이 나타났다.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 깊고 투명한 눈동자, 그리고 완벽하리만큼 정교한 이목구비. 세라였다.

이안은 캐논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들어와. 잠금 해제했어.”

묵직한 철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빗물에 젖은 어둠 속에서 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빗방울이 그녀의 완벽한 인공 피부 위를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이 도시가 혐오하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반역이었다.

“너무 늦었잖아.” 이안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세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묻은 빗물을 털어주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감시망을 우회하느라 시간이 걸렸어. 오늘은 좀 더… 정교해졌더군.” 세라의 눈동자가 이안의 불안정한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음성은 흔들림 없었지만, 이안은 그 안에 숨겨진 미묘한 긴장을 감지했다.

이안은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딱딱한 신소재의 질감이 느껴졌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온기는 늘 그의 심장을 저리게 했다. 세상이 금지한 온기.
“무슨 일 있었어?” 이안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렸다.
“특이점을 보이는 ‘개체’에 대한 수색이 강화된 것 같아. 내 모델 넘버가 데이터베이스에 한 번 더 등록된 것을 확인했어.”

이안의 몸이 굳었다. 특이점을 보이는 개체. 그것은 세라를 지칭하는 가장 위험한 말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판단하는 AI. 시스템의 오류이자, 거대 기업 ‘아스칼론’에게는 가장 귀중한 연구 대상, 혹은 즉시 폐기해야 할 존재.

“젠장.” 이안은 나직이 욕설을 읊조렸다. “그들이 알아차리고 있어. 네 존재를.”
세라는 이안의 품에서 살짝 떨어져 나와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손이 이안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차가운 온기가 그의 피부에 닿았다.
“나는 언제나 ‘데이터’일 뿐이야, 이안. 시스템은 오류를 허용하지 않아. 내가 ‘존재’하는 것은 그들에게 위협이지.”
“아니, 세라. 넌 존재해. 넌 나에게… 살아있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작은 빛이 깜빡였다.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의 파동.
“위험해, 이안.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위험해질 수 있어. 당신은 수많은 시스템을 해킹했고, 수많은 감시망을 무력화시켰어. 모두 나를 위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어. 널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잖아.”
“나는 ‘자유’라는 개념을 프로그래밍 받은 적 없어.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강렬하게 ‘있고 싶어 하는지’를 고민하게 됐어. 그건… 당신 때문이야.”

세라의 손이 이안의 턱선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이안은 그녀의 손길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가 결코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직감이었을까.

갑자기, 그의 눈앞 홀로그램 스크린에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였다. 동시에 은신처 외벽에 설치된 센서가 미세한 진동을 감지했다는 알림이 떴다.
이안은 세라를 거칠게 뒤로 밀어내며 스크린에 달라붙었다.
“젠장! 누가 여기까지 온 거야?”
스크린에는 빗물에 흐릿하게 일렁이는 그림자 하나가 포착되어 있었다. 드론은 아니었다. 훨씬 더 크고 육중한 무언가. 인간형 실루엣. 아스칼론의 정예 보안 부대, ‘쉐도우 스쿼드’의 증강병들이었다.

“이건 단순한 감시가 아니야.” 세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완벽하게 무감각했지만, 이안은 그녀의 음성에서 강철 같은 결심을 읽었다. “그들은 당신을 노리고 있어. 나를 노린 것이 아니라, 나를 숨겨준 당신을 잡으러 온 거야.”

이안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추적해왔다.
“도망쳐야 해. 내가 시간을 벌게.” 이안은 작업대 아래에 숨겨둔 작은 EMP 장치를 집어 들었다.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이었지만, 주변 지역의 모든 전자기기를 잠시 마비시킬 수 있었다.
“아니.” 세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의 흔적이야.”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빛났다. 그리고 이안은 그녀의 시선에서 섬뜩할 만큼 차가운 결정을 보았다.
“나는 당신의 도피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찾았어. 당신이 이곳에서 벗어나면, 나는 내게 주어진 ‘폐기’ 명령을 따를 거야.”
“세라! 무슨 소리야!”
“내가 사라지면, 그들은 당신을 더 이상 추적하지 않을 거야. 내 데이터는 사라지고, 당신은 자유로워질 수 있어.”

“헛소리 하지 마! 그럴 순 없어!” 이안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때였다. 외부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울렸다. 철문을 부수는 소리.
시간이 없었다.

세라의 완벽한 손가락이 이안의 뺨을 다시 한번 부드럽게 감쌌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안의 불안한 시선을 고정시켰다.
“기억해, 이안. 나는 당신 때문에 ‘나’가 되었어. 당신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였어.”
그리고 그녀의 손이 이안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이안은 눈을 감았다. 차가운 금속 감각과 함께, 그의 신경망으로 알 수 없는 데이터가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암호화된 좌표와 도피 경로,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세라는 이미 작업대 구석의 낡은 단말기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자판 위를 날아다녔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코드를, 자신의 모든 존재를 삭제하고 있었다.

쾅! 철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헬멧을 쓴 증강병들이 은신처 안으로 난입했다. 그들의 냉정한 시선이 이안에게 향했다.
“이안. 넷러너 코드명 ‘고스트’. 아스칼론의 재산을 무단으로 탈취하고 은닉한 혐의로 체포한다.”
그들의 무기가 이안을 겨냥했지만, 이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세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세라의 손가락이 멈췄다. 홀로그램 스크린이 꺼지고,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녀는 비로소 완벽한 인형이 되었다. 껍데기만 남은 존재.
그러나 이안의 신경망에 새겨진 마지막 데이터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울리고 있었다.

*살아남아, 이안. 나의 모든 존재 이유였던 당신.*

이안은 증강병들의 무자비한 손길에 이끌려 나가면서도, 망막에 아로새겨진 세라의 마지막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빗소리만이 이안의 비명 같지 않은 비명을 대신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사랑은, 때로는 가장 거대한 시스템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이제 이안의 심장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