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열세 번째 마탑 지하, 금기를 엿보다

“이안! 또 너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던 자세 그대로 움찔,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푹신한 마법 깃털 베개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바닥에 이마를 박았을지도 모른다. 눈도 뜨지 않은 채 투덜거렸다. “아, 세레나… 아침부터 무슨 비명이야. 미모에 주름이라도 생기겠어.”

“미모? 주름? 이 한심한 작자 같으니!”

젠장,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어린 시선에 슬그머니 한쪽 눈만 떴다. 역시나, 세레나였다. 은빛 머리카락은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교칙에 맞는 단정한 제복은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완벽한 얼굴 위에는 나를 향한 지독한 경멸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빛나는 양피지 두루마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법의 서광이 심상치 않았다.

“또 지각했지? 그것도 교수님의 첫 수업에! 그리고 이게 뭐야? 마법진 기초 이론 시간에 마법 베개를 소환해서 숙면을 취해? 간도 크다, 정말!”

“하암… 어쩌겠어. 어젯밤에 달빛 마법 연구하느라 밤을 새워서 말이지.”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세레나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녀는 나처럼 흔한 평민 출신이 아니었다. 이 드높은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개교 이래 역대 최고 천재로 불리는, 귀족 중의 귀족. 게다가 학년 수석에 학생회장까지 겸하는 그야말로 완벽 초인. 나와는 그야말로 물과 기름, 천상과 지하였다. 그녀의 기준에서 ‘달빛 마법 연구’는 최소한 12권의 고대 마법서를 독파하고 논문을 써야 겨우 연구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달빛 마법 연구? 네가? 곰팡이 핀 양말이나 연구했겠지! 교수님께서 너에게 특별 과제를 내리셨어.”

그녀가 들고 있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쫙 펼치자, 섬뜩한 붉은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안 학생. 잦은 지각과 수업 태만, 그리고 마법진 기초 이론 시간에 마법 베개를 소환하는 기행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금주 토요일, 열세 번째 마탑 지하 ‘폐쇄 구역’의 대청소를 명합니다. – 고블린 교수.’

“열세 번째 마탑 지하 폐쇄 구역…?”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에는 무려 열세 개의 마탑이 있었다. 그중 열세 번째 마탑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음침하며, 가장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특히 그 지하 폐쇄 구역은 ‘금기’라고 불리며 학생들은 물론이요, 교수들조차 발걸음을 잘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뭐, 내가 그런 소문에 신경 쓸 리는 없었지만.

“그래. 폐쇄 구역. 왜 폐쇄되었는지도 모르는 곳을 청소하라고 하니, 교수님께서 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겠군.” 세레나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뭐, 네게 딱 어울리는 벌이겠지.”

나는 이마를 긁적였다. “에이, 아무렴. 폐쇄 구역이라고 해봐야 그냥 낡은 지하실 아니겠어? 먼지 좀 털어내고, 거미줄 좀 걷어내면 끝이지.”

“헛소리 마! 그곳은 단순한 지하실이 아니야. 학원 설립 초창기부터 내려오는 기록에도 ‘절대 개방해서는 안 될 곳’이라고 명시되어 있다고! 무슨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을지 몰라!” 세레나가 손가락을 휘저으며 경고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내가 이미 그 금기를 어긴 것처럼 비장했다.

“끔찍한 금기라니, 설마 지하에 몬스터라도 키우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전설의 마왕 봉인석이라도 굴러다니나?” 나는 능글맞게 웃었다. “그럼 내가 가서 마왕이라도 봉인 해제시켜 볼까?”

“이안! 말조심 못 해?!” 세레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네 경박함은 정말… 아르카나 학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지름길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쩌겠어. 이미 내게 임무가 떨어졌는데. 그럼 다녀올게, 세레나.”

그렇게 나는 세레나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토요일, 열세 번째 마탑 지하로 향했다. 낡고 오래된 마탑은 낮에도 햇빛 한 줄기 들지 않아 음침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공기마저도 몇십 년은 묵은 듯 축축하고 차가웠다.

‘폐쇄 구역’이라는 이름답게, 굳게 잠긴 철문 앞에는 강력한 봉인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어째서인지 봉인 마법은 오래전에 풀려 있었다. 녹슨 빗장이 덜렁거리는 것이, 누군가가 이미 들어갔다 나온 흔적 같았다. 고블린 교수님이 나에게 ‘특별 청소’를 시킨 이유가 어쩌면… 이걸 풀고 들어간 걸 들켰기 때문인가? 설마.

나는 문고리를 잡고 힘껏 당겼다. ‘끼이이익-!’ 귀를 찢을 듯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꺼내들고 ‘루미노스!’ 하고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 끝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제야 어둠의 장막이 걷혔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랍게도 ‘폐쇄 구역’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낡고 부서진 마법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거나, 해골들이 나뒹구는 음산한 곳을 예상했지만, 이곳은 의외로 넓고 텅 비어 있었다. 거대한 원형 공간. 그리고 그 중앙에는 마치 거대한 제단처럼 보이는 육중한 돌덩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돌덩이 위에는 겹겹이 쌓인 먼지가 마치 눈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지팡이로 톡톡 건드려봤다. 그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거기 누구야?!”

날카로운 목소리.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다. 혹시 정말 몬스터라도 있는 건가?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빛이 닿는 순간, 나는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세레나?!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내 눈앞에는 경계 가득한 표정을 한 세레나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완벽한 마법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그 끝에는 금방이라도 마법을 쏠 기세로 푸른빛이 번뜩였다. 그녀의 뒤로는 마치 미행이라도 하듯 숨어 있던 몇 명의 학생회 정예 부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혹시라도 쓸데없는 짓을 할까 봐 감시하러 왔다!” 세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쩌면 네가 이미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하지만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군!”

“와, 나 감시하러 여기 금기 구역까지 오다니. 너 나한테 관심이 많구나?” 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닥쳐! 망상병 환자! 나는 그저 아르카나 학원의 소중한 유적지를 네가 함부로 훼손하는 걸 막으러 온 것뿐이야!” 세레나가 격렬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붉어진 얼굴은 내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음… 그럼 이 안에 뭐가 있는지 아는 거야?” 나는 중앙의 제단 같은 돌덩이를 가리켰다.

세레나는 잠깐 망설이더니 시선을 돌렸다. “그, 그건… 학원 설립 초창기부터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야. 구체적인 내용은 극소수의 최고위층 교수님들만 알고 있지.”

“흐음… 그래?”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돌덩이로 다가갔다. 정말로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다면, 곰팡이 핀 양말이 아니라 이 안에 있어야 할 터였다. 손가락으로 두꺼운 먼지를 쓱 걷어내자, 돌덩이 표면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이 드러났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이안! 만지지 마!” 세레나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마법진에 손을 대는 순간, 돌덩이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희미했던 빛은 점점 강렬해지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먼지가 흩날리고, 고대 마법의 기운이 지하실 전체를 감쌌다.

“이게… 뭐야?” 세레나와 학생회 부원들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마법진의 빛이 절정에 달했을 때, 돌덩이 위에서 뭔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액체가 끓어오르듯, 검은색의 흐릿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태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때로는 거대한 촉수가 튀어나왔다가, 때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짐승의 모습으로 변했다. 끔찍한 검은 안개와 함께, 지하실은 고대 마법의 악몽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금기가… 봉인 해제되고 있어!” 세레나가 경악하며 외쳤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들어 마법을 시전하려 했다. “모두 공격 준비! 최대한 봉인을 유지해야 해!”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지하실은 거대한 검은 그림자에 잠식되고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는 이제 제단 위에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존재는 너무나 거대하고, 너무나 끔찍해서 모두가 얼어붙었다. 마법 학교 최고의 엘리트들조차도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지팡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저, 저게… 학원의 금기라고?” 학생회 부원 하나가 벌벌 떨며 물었다.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마왕 봉인석? 몬스터? 농담 삼아 던진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거대한 검은 그림자 속에서, 희미한 빛이 한 점 나타났다. 마치 어둠 속의 등대처럼, 따뜻하면서도 신비로운 빛이었다. 그 빛은 점점 커지더니, 검은 그림자를 밀어내며 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예상했던 끔찍한 마왕이나 괴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엥?”

검은 그림자가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동물이었다. 새까만 털을 가진 솜뭉치 같은 몸. 크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귀는 토끼처럼 길게 솟아 있었고, 꼬리는 마치 구름처럼 몽글몽글했다. 그것은 마치 최상급 마법 재료로 만들어진 고급 인형처럼 완벽하게 귀여웠다.

‘끔찍한 금기’라고 불리던 존재의 실체는,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닌 ‘초큐트 솜뭉치’였다.

“꾸잉…?”

작은 솜뭉치는 갸우뚱거리며 고개를 꺾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총총 걸어와서 내 바짓가랑이를 툭, 툭, 건드렸다. 맑고 투명한 눈은 마치 ‘간식 줄 거야?’ 하고 묻는 듯했다.

“이게… 학원의 금기?” 세레나의 목소리는 경악을 넘어선 허탈함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지팡이는 이미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저, 저 솜털 덩어리가… 몇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학원의 끔찍한 금기라고?!”

나는 솜뭉치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푹신하고 따뜻한 감촉. 이마를 비비적거리는 통통한 머리는 마치 날개 돋친 아기 천사 같았다. 이 어이가 없는 반전 속에서, 솜뭉치는 나를 올려다보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 귀여운 녀석이 ‘끔찍한 금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 귀여움이 너무나도 치명적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생각은 곧 현실이 되었다.

“꾸잉!”

솜뭉치가 짧은 앞발을 휘저으며 발버둥 쳤다. 그리곤 내 품에서 튕겨져 나가는 동시에, 솜뭉치의 몸에서 무지개색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빛은 지하실 전체를 뒤덮더니, 우리의 몸을 감쌌다.

“으악! 이게 뭐야?!” 학생회 부원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시야도 뿌옇게 흐려졌다. 온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 마치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어지러움 속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세레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경악과 혼란, 그리고 미묘한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안! 이 망할 녀석!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그리고 그 목소리는, 시공간의 뒤틀림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의식을 잃기 직전, 솜뭉치의 해맑은 미소를 다시 한번 보았다.

*젠장, 이 귀여운 녀석, 엄청난 사고뭉치였잖아…?!*

그렇게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끔찍한 금기’는 봉인에서 풀려났고, 나와 세레나, 그리고 학년 수석 엘리트들이 예측 불가능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 ‘초큐트 솜털 덩어리’는 단순히 봉인되어 있던 금기가 아니라,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