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묵룡회귀(墨龍回歸)

**제11화: 핏빛 그림자, 깨어나다**

한 줄기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량한 봉우리. 수억 년 세월에 깎여나간 바위들은 흉물스러운 괴수의 등뼈처럼 앙상하게 솟아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검은 강물은 마치 저승의 핏줄 같았다. 그 모든 풍경 위에, 한 사내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검은 이미 녹슬 대로 녹슬어 본래의 광택을 잃었지만, 그것을 쥔 손목의 힘줄은 강철처럼 팽팽했다. 축 늘어진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등은 거친 풍파를 견뎌낸 나무껍질처럼 단단했으며, 듬성듬성 난 굳은살은 수많은 고난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하아….”

사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 속에는 차가운 새벽 공기와 함께, 지난 세월의 응축된 고통이 서려 있는 듯했다. 그의 이름은 무영(無影). 한때 강호의 젊은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나,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해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남자였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 불현듯 그의 뇌리를 스쳤다.

* * *

강물이 흐르는 소리, 억수같이 쏟아지던 빗소리가 귓가에 아련했다.
“무영! 형제여! 이 천하를 우리 손으로 바꿉시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던 강혁(剛爀)의 얼굴이 떠올랐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뜨겁게 정을 나누었던 벗. 강호의 모든 악폐를 뿌리 뽑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던 꿈에 부풀었던 나날들. 그들은 서로의 등을 맡기고 수많은 전투를 헤쳐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지독한 환상이었다. 강혁의 칼날은 결국 무영의 심장을 향했다.
“형제…!”
“미안하다, 무영.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네가 걸림돌이 되는구나.”
강혁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피로 얼룩진 칼날이 무영의 몸을 꿰뚫는 순간, 강혁의 뒤편에 펄럭이던 거대한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새롭게 바뀐 ‘천하패도문(天下覇道門)’의 깃발이었다. 그 깃발 아래, 강혁은 천하를 발밑에 두는 패왕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식는 듯한 배신감. 심장을 꿰뚫는 칼날보다 더 아픈 것은, 믿었던 사람에게 짓밟힌 영혼의 고통이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까지, 무영은 강혁의 싸늘한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 * *

“강혁….”

무영의 입술에서 핏빛 저주 같은 이름이 낮게 읊조려졌다. 지난 5년간,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황량한 땅에서 자신을 단련했다.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며, 그는 껍데기만 남은 육신에 새로운 그림자를 심었다. 그의 검은 더 이상 화려하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만을 위해 존재했다. *복수.*

멀리 아래로 펼쳐진 어둠 속, 희미한 불빛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강혁이 이끄는 천하패도문의 최전방 감시초소였다. 산맥을 넘어 강호를 잇는 유일한 길목에 자리한 요충지. 이곳을 장악한 강혁은 이제 자신의 권세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었다.

무영은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바위틈을 오르내리는 움직임은 마치 한 마리의 흑표범과 같았다. 고요한 밤의 장막 아래, 무영의 눈빛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초소 근처에 다다르자, 무영은 몸을 바짝 엎드렸다. 서너 명의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어슬렁거렸다. 그들의 갑옷에는 번쩍이는 천하패도문의 문양이 선명했다. 무영의 손이 무심한 듯 허리춤의 검집으로 향했다. 스르륵, 낡은 검이 뽑혀 나왔다. 검날은 달빛을 반사해 희미하게 빛났다.

“하암… 망할, 이곳은 올 때마다 기분 나쁘단 말이야.”
병사 하나가 투덜거렸다.
“쉿, 조용히 해. 소문 못 들었어? 이 근처에 귀신이라도 나온대잖아.” 다른 병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귀신? 푸하하! 천하패도문의 감시 아래 귀신이 발호할 리가 있겠냐?”
병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빠른 움직임.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시야를 스쳤다.
“뭐… 뭐지?”
병사들이 의아한 듯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무영의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쉬이이익!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병사들의 목에서 붉은 선이 그어지고, 고통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쿵, 쿵, 쿵. 육중한 갑옷이 땅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어둠 속을 갈랐다.

무영은 쓰러진 병사들을 굳은 얼굴로 응시했다. 그의 검에서는 한 방울의 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완벽하게 꿰뚫린 목덜미. 그의 ‘무영검법(無影劍法)’은 지난 세월 동안 더욱 날카롭고 잔혹하게 변모했다. 그림자처럼 다가가,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검술.

“…쓰레기들.”

그는 낮게 읊조렸다. 이들은 강혁의 손발이 되어 강호를 짓밟는 무리였다. 동정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초소 안으로 들어선 무영은 조용히 움직였다. 안에는 대여섯 명의 병사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감시병들의 죽음도 모른 채 웃고 떠들기에 바빴다.

“어이, 주군께서는 요즘 밤마다 미녀들을 품에 안고 즐기신다더군. 우리는 이렇게 허허벌판에서….”
“닥쳐! 목숨을 걸고 주군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도리 아니겠는가!”

그들의 대화는 무영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이 초소를 무너뜨리는 것, 그리고 강혁에게 자신의 귀환을 알리는 것이었다.

콰앙!
별안간 초소의 문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박살 났다. 문을 부수고 들어선 무영의 모습에 병사들은 얼어붙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

“누, 누구냐!”
병사들이 허둥지둥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무영의 눈에는 마치 정지화면처럼 보였다.

스르륵.
무영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칼날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크아악!”
“내, 내 팔이…!”
고통에 찬 비명들이 초소 안을 가득 채웠다. 무영은 그들의 공격을 손쉽게 피하며, 오직 급소만을 노렸다. 그의 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병사들의 목덜미와 심장을 꿰뚫었다.

몇 합이 오가지 않아 모든 병사들이 차가운 주검으로 변했다. 초소 안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무영은 숨조차 거칠어지지 않은 채, 그제야 검을 거두었다.

그는 초소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 초소의 지휘관이 머무는 방이 있었다.
철컥.
낡은 문을 열자,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옷에는 역시나 천하패도문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무영은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크읍!”
잠에서 깨어난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발버둥 쳤지만, 무영의 손아귀는 강철 같았다.
“강… 강혁에게… 전해라.”
무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무영이… 돌아왔다고.”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영’이라는 이름에 공포가 스쳤다. 설마 죽었을 줄 알았던 그가…!

무영은 사내의 목을 놓아주었다. 대신 그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반으로 쪼개진 낡은 옥패였다. 과거, 강혁과 무영이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며 나누어 가졌던 물건이었다.

“이것을… 전해라.”
옥패를 사내의 손에 쥐여준 무영은, 다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쿵!

초소는 이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무영이 떠나기 전, 초소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그의 그림자가 봉우리의 절벽 끝에 다시 나타났다. 멀리서 들려오는 불길과 함께 번져나가는 연기가 밤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강혁.
이제부터, 너의 천하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무영의 눈빛 속에서, 죽음보다 더 차가운 복수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 *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