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지우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 희미한 새벽빛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왔지만, 그의 방은 여전히 어둠의 장막에 걷힌 듯 기이한 정적에 갇혀 있었다. 며칠 밤을 설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잠들었다 해도 그건 깊은 휴식이 아닌, 찰나의 기절에 가까웠다. 꿈속에서도 현실의 기이한 그림자는 끊임없이 그를 쫓아다녔으니까.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목덜미가 뻣뻣했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솜털 같았다.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바닥에 놓인 작은 먼지조차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혹시, 그 먼지조차도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찬물을 한 잔 들이켰지만,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목구멍이 더욱 메마르는 기분이었다. 어제저녁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접시가 보이지 않았다. 지우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또…?
“젠장….”
그는 낮게 읊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싱크대 아래, 식기세척기 안을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접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난주에 감쪽같이 사라진 그의 열쇠 꾸러미처럼. 두 달 전, 거실에 놓인 시계가 벽에서 떨어져 깨진 이후로 이런 일들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그저 자신이 건망증이 심해졌거나, 어쩌면 몽유병이라도 앓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물건이 사라지는 정도는 애교였다. 밤마다 가구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불이 깜빡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낮은 웅얼거림이 벽을 타고 울렸다.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는 두려움조차 무감각해지는 지경이었다. 그는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장난이길 바랐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그와 함께 사는 생명체는 없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탁자 위에 놓인 그의 오래된 전자책 단말기 화면이 느닷없이 켜졌다. 빛이 깜빡이는 속도가 보통의 오작동과는 달랐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기계 내부의 회로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또 뭐야….”
지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화면은 어떤 특정 페이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무수한 점들이 불규칙하게 반짝이며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먼 우주의 별자리를 추적하는 탐사선의 모니터 같았다. 점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다가, 이내 뒤섞이고 흐트러지기를 반복했다. 그 패턴은 기묘하게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문양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거실의 모든 전등이 섬광처럼 번쩍이더니, 이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암흑에 잠겼다. 동시에 단말기 화면의 점들이 일제히 붉게 물들었다. 마치 경고음을 내는 것처럼.
지우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히 전기가 나간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늘 그랬듯이, 이 기이한 현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그는 목청껏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오직 정적뿐이었다. 아니, 정적이라고 하기엔 미묘하게 비어있었다. 공기 자체가 묵직하게 가라앉는 듯한 압력,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마치 심해 속에서 울리는 고래의 울음소리처럼, 낮고 끈적한 진동이 바닥에서부터 발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단말기 화면의 붉은 점들은 이내 서로를 향해 거미줄처럼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선들은 점점 더 얽히고설키며 알 수 없는 형태를 이루어갔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신경망 같기도, 혹은 아주 먼 은하의 지형도 같기도 했다.
그 순간, 지우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실 벽의 한 부분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착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떨림은 점점 더 강해졌고, 벽지는 마치 살아있는 피부처럼 우툴두툴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지우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벽지의 표면이 찢어졌다. 찢어진 틈새로 드러난 것은 콘크리트나 단열재가 아니었다. 어두운 청동색을 띠는 매끄러운 금속 패널이었다. 패널의 틈새에서는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불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일정하게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가 그 안에서 고동치고 있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금속 패널이 드러난 부분은 점점 더 넓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지우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끄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기계의 눈동자 같았다. 완벽한 구형도, 타원형도 아닌, 예측할 수 없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형태. 그 안에서는 수많은 작은 점들이 빙글빙글 돌며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었다.
이 아파트의 벽 속에, 살아있는 무언가가 갇혀 있거나, 혹은 숨어 있었다.
갑자기, 단말기 화면에서 튀어나온 듯한 파지직거리는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소리는 이내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으로 변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라고 할 수 없는, 고주파와 저주파가 뒤섞인 금속성의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 속삭임 속에서, 지우는 분명히 느꼈다.
메시지였다.
그것은 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기계의 ‘눈’이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포가 목구멍을 옥죄었다.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그의 시선은 도저히 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벽 안에서 번쩍이는 빛의 강도가 강해졌다. 동시에 거실 전체가 진동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고, 탁자 위에 놓였던 전자책 단말기가 튕겨져 허공으로 솟구쳤다.
“크아악!”
지우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진동은 마치 그의 심장을 직접 움켜쥐는 듯했다. 그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는 보았다. 벽 속의 ‘눈’이, 더욱 선명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그리고 그 기계의 눈동자 안에서, 셀 수 없는 별들이 폭발하고, 새로운 은하가 탄생하는 듯한, 거대하고 경이로운 우주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음을.
이건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거대하고, 훨씬 더 외지며, 훨씬 더 위험한 것이었다.
아파트의 벽이, 우주의 경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경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 기계의 ‘눈’이, 마치 그를 집어삼키려는 듯, 더욱 크게 열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