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심연의 무림회: 천하제일비무전

1장: 나락으로 향하는 길

오만과 비명, 그리고 숙명. 거대한 바위산 아래,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문은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표면에는 고대 무림의 영웅들이 남긴 듯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뒤엉켜 섬뜩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 문이 열릴 때마다 억겁의 세월이 갇혀 있던 듯한 서늘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고, 수천의 무림인들이 모여든 광장에는 숙연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때 강호의 영웅들이 칼끝을 겨누던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는 사라지고, 이제는 모두의 시선이 저 거대한 ‘심연의 나락’ 입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죽음을 부르는 던전이 아니었다. 천 년에 한 번, 강호의 운명을 결정하는 ‘천하제일비무전’이 열리는 유일한 장소였다. 나락의 가장 깊은 곳에는 천하의 향방을 결정할 ‘천명지보(天命至寶)’가 잠들어 있다고 전해졌다. 그것을 손에 넣는 자, 강호의 패권은 물론이고 대륙 전체의 명운까지도 거머쥐게 되리라.

남궁천은 차분한 눈빛으로 심연의 문을 응시했다. 그의 손에는 ‘청풍검’이라 불리는 푸른빛 검이 들려 있었다. 검날은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주변의 음산한 기운을 밀어내는 듯했다. 그는 강호에 이름이 드높은 ‘청풍검’ 남궁천이었다. 종남파의 지존이라 불리는 그였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자만심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함만이 존재했다.

“드디어 열리는군.”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그의 옆에서 들려왔다. 화산파의 장문인, 매화검존 이설이었다. 새하얀 도포자락이 서늘한 바람에 흩날렸지만, 그의 몸에서는 불꽃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더 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번 나락은 쉬이 허락하지 않을 듯합니다.”

이설이 옅게 웃었다.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허나, 이번은 다르지. 마교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으니.”

그들의 시선이 광장 한쪽으로 향했다. 검은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 마치 어둠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살기로 번뜩였고, 그들의 기운은 주변 공기를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교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 자리에 발도 붙일 수 없었겠지만, 천명지보를 둘러싼 혼돈 속에서 이제는 그들조차 대놓고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마교의 교주, 흑룡왕(黑龍王)이 직접 나섰으니 말 다했지. 그 늙은이가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건… 그들이 천명지보에 대해 뭔가 확신하는 게 있다는 뜻이야.” 이설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남궁천은 대답 없이 흑룡왕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흑룡왕은 거대한 덩치에 얼굴은 주름투성이였지만, 그의 눈빛은 뱀처럼 번뜩이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의 어깨에는 언제나처럼 검은 용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강철 도끼가 짊어져 있었다.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심연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 ‘우드드득!’ 하는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빛 한 점 없는 심연 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터져 나왔고, 그 기운에 닿은 바닥의 돌멩이들이 서걱거리며 마른 재처럼 부서졌다.

“자, 입장하시오.”

사방이 흔들리는 가운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그것은 강호의 공정성을 지키는 무림맹주의 목소리였다.

“나락의 심층부에 도달하여 천명지보를 얻는 자, 강호의 패자가 될지니! 허나 명심하라! 나락은 오직 강하고, 지혜로우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만을 허락하리라!”

맹주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무림인들의 눈빛이 광기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서로를 견제하는 시선들 속에서, 누군가가 먼저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것은 혈검문(血劍門)의 문주, 혈사검(血蛇劍) 우명이었다. 피 냄새를 풍기는 붉은 검을 움켜쥔 채, 그는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뒤를 이어 각 문파의 고수들이 경쟁하듯 나락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도 지체할 수 없지.” 이설이 남궁천을 바라보았다.

남궁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푸른 검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는 강호의 평화와 질서를 지키는 정파의 거두로서, 마교가 천명지보를 손에 넣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싸움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남궁천의 발걸음은 굳건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나락의 입구로 들어서자, 외부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직 차가운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스쳤다.

나락의 내부는 상상 이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검은 복도. 사방의 벽은 매끄러웠으나, 닿는 순간 오싹한 한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발밑에는 이름 모를 생명체들의 뼈들이 뒹굴고 있었고, 그 뼈들은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며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것이… 나락의 첫 번째 시험인가.”

누군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복도를 울렸다. 이미 앞서 들어간 무림인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척이 점차 멀어져 갔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복도 저편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람 소리도, 짐승의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수천 마리의 독사가 한꺼번에 기어가는 듯한, 뼈를 저미는 소리였다. 이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수백, 수천의 눈동자들이 마치 거대한 유성우처럼 복도를 가득 메웠다.

“망령?”

누군가 경악하며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망령보다 훨씬 더 실체가 있는 존재들이었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구렁이의 형상을 한 괴물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시뻘건 독액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가장 먼저 들어섰던 몇몇 무림인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괴물들에게 휩쓸렸다. 그들의 몸은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락의 첫 번째 시험은, 대결 상대가 아닌 압도적인 공포와 마주하는 것이었다.

남궁천은 차분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심연에서 솟아나는 괴물들은 그의 푸른 검빛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락이여, 과연 네가 얼마나 깊은 공포를 품고 있는지… 내가 직접 시험해 보마.”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고, 청풍검에서 푸른 검강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나락의 첫 번째 격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