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화: 새벽 3시의 공명
지아는 노트북을 덮었다. 벌써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잠들었을 터였지만, 며칠 전부터 시작된 기이한 현상들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침대 대신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탁상 스탠드의 은은한 불빛에 의지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홀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만 같았다.
오늘 오후, 출근 전 분명히 식탁 중앙에 놓아두었던 머그컵이 퇴근 후에는 식탁 가장자리로 옮겨져 있었다. 어제는 화장실 세면대에 꽂아둔 칫솔이 욕조 안에 떨어져 있었다. 애써 ‘내가 깜빡했나?’, ‘혹시 내가 잠결에?’ 하는 식으로 합리화하려 했지만, 이젠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기 어려웠다.
그때였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플로어 스탠드의 불빛이 ‘팟’ 하고 깜빡였다.
지아의 심장이 발작하듯 쿵, 하고 떨어졌다. 침을 꿀꺽 삼켰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며칠간 이런 일은 셀 수 없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팟’ 하고 한 번 깜빡이던 것이, 이번에는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서서히 꺼졌다가 다시 느리게 켜졌다. 마치 전구의 수명이 다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아는 어딘가 오싹한 위화감을 느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뭐야…”
가느다란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지아는 숨을 참고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다. 거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바람 한 점 들어올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지금 이 방에, 자신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불길한 확신.
테이블 위에 둔 펜이 스르륵, 하는 마찰음과 함께 미끄러지듯 움직이더니 ‘탁’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아는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안았다. 이젠 합리화할 여지조차 없었다. 바람이 아니다. 우연도 아니다.
그 순간, 싸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방금 전까지 포근하게 느껴지던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털끝 하나 스치지 않았지만, 누군가 등 뒤에 바싹 다가와 서 있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전신을 옥죄었다. 피부가 쭈뼛거렸다.
“누, 누구 있어요?”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겨우 입 밖으로 내뱉은 소리였다. 정적만이 답했다. 하지만 그 정적이 모든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바로 그때, 주방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울렸다. 명백히 접시가 깨지는 소리였다.
지아는 비명을 삼키며 벌떡 일어섰다. 다리가 풀리는 듯했지만, 공포가 그녀를 주방으로 내몰았다. 식탁 위에는 접시 하나가 깨진 채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 순간, 지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냉장고 문이었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냉장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그 충격으로 냉장고 위에 놓여 있던 영양제가 ‘우르르’ 쏟아져 바닥에 굴러다녔다.
지아의 눈은 공포에 질려 사방을 헤매었다. 그때, 오븐의 디지털 시계가 미친 듯이 숫자를 바꾸기 시작했다. 12:35, 08:11, 23:59, 00:00… 순식간에 수십 개의 숫자가 무작위로 깜빡였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더 이상 주방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지아는 질겁하며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조금 전 자신이 덮어두었던 노트북이 저절로 켜져 있었다. 화면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흰색 바탕 위에 검은색 글자들이 스르륵, 하고 타이핑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처럼.
***
**나가…**
***
지아는 경악했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
**나가… 여기는…**
***
글자들이 끊겼다. 더 이상 타이핑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 화면 전체에 무수한 노이즈가 발생했다. 마치 오래된 TV의 채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을 때처럼, 화면 전체가 지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지아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노트북 화면 전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액체처럼 흐물거렸다. 마치 파문이 이는 물결처럼 변하더니, 그 너머에서… 뭔가 거무스름한 것이 솟아오르려는 듯이 요동쳤다. 형체는 없었다. 그저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며 만들어진 듯한, 순수한 어둠의 덩어리가 화면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은 마치 노트북 화면이 더 이상 평면이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통하는 통로가 된 것만 같았다.
지아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저것은 단순한 귀신이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저 차원을 넘어온 듯한 기괴한 존재였다.
그녀가 현관문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현관문이 닫혔다. 그리고 뒤이어 ‘철컥!’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갇혔다.
지아는 현관문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눈앞의 노트북 화면에서 검은 형체가 더욱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낮게 깔리는 기계음 같은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침입자…”
그것은 속삭임 같기도 했고, 삐걱거리는 기계의 마찰음 같기도 했다. 지아는 이제, 이 아파트가 자신을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